52세 중년의 부양 고통
“돈이 없으믄 아프지라도 말아야 되는디, 아들아, 미안하데이, 미안하데이”
핸드폰으로 연신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정막순 할머니. 80의 고령에 수술을 감당하느라 남아있는 힘은 겨우 대화만 가능할 정도였다. 그래도 미안하다고 말할 때는 수술한 부위에 힘을 잔뜩 실어서 또렷이 말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내가 알아서 한다카는데, 왜 그런 말을 해쏴!”
할아버지는 보청기가 고장이라도 난 듯 병실 사람들이 귀를 막을 정도로 큰 소리로 말했다. 경남 창원 어디쯤일까? 사투리에 악센트를 팍팍 넣을 때는 꼭 싸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 또 시작이다. 미치겠다 정말. 병실을 옮겨달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매정하게 조용히 통화해달라고 말도 못 하겠고.’
커튼 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 침대를 사용하고 있는 태식은 소음공해로 미칠 지경이었다. 이건 뭐 병을 고치러 와서 새로운 병을 얻을 기세였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알고 싶지 않은 남의 가정사를 듣는 것도 곤욕이었다. 핸드폰 너머 자식들도 아버지가 귀가 어두워서 그런지 높은 톤으로 말했다.
[아부지, 큰누나 전화 왔어요?]
[안 왔다.]
[제가 전화해도 안 받더라고요. 큰누나 전화 오면 저한테 꼭 연락해주라고 말해주세요.]
[알았다. 근데 큰애는 와 찿노?]
[병원비 때문에요. 아들이라고 저 혼자 감당하기가 좀 힘드네요. 형제들이 같이 나눠서 내자고요.]
[갸가 사는 게 그런데, 그기 되겄나?]
[아부지. 저도 힘들어요.]
[알았다. 고마, 들가거라. 끊는데이.]
휴우
할아버지의 한숨이 더 깊어졌다. 할머니는 침대에 가시를 깔아놓은 듯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릴 뿐이었다.
“미안해요. 나이 묵어가꼬 아프면 짐만 되는디……. 다 힘들게 만등께 그냥 빨리 죽고싶네요.”
“뭔 그런 소릴 해쏴? 병원비 모자라믄 집 팔먼 돼. 내가 알아서 한다카이.”
할머니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다. 링거 꽂은 팔은 축 늘어졌다. 다른 팔은 주먹을 쥐어 가슴에 대고 복받치는 설움을 문질렀다.
“어무이, 아부이 살아 계실 때까징 참 잘 살았는디, 복도 지지리도 없지. 자식들한테 짐만 되어가꼬 이리 누버있고. 저거들끼리 싸움만 하게 만든 애미가 돼버렸어요.”
“갸들도 힘 등께 그러지. 착한데, 먹고살기가 힘 등께 그렁거 아녀? 그렁거가꼬 서운해 말어.”
병실 사람들이 혹여나 아들, 딸 욕할까 봐 미리 쉘드를 치는 걸까?
태식은 이런 미주알고주알 가정사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들어야 하니 성질이 날만도 했다. 좋은 이야기라면 좋은 기운이라도 받겠거니 생각할 텐데 이건 뭐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태식이 귀를 막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찰나에 간호사가 들어왔다.
“김태식 씨. 통증 어떠세요?”
“너무 아파요. 무통 주사 좀 놔주세요.”
“오늘 한 번도 안 맞으셨죠?”
“네. 웬만하면 참아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요.”
“네. 놔드릴게요.”
“잠을 통 못 자서 그런데 수면제도 좀 넣어주세요.”
“그건 의사 선생님 회진 때 말씀하세요.”
“지금 확인해서 조치해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죽겠어요.”
간호사가 링거줄 연결 부위에 무통주사액을 넣었다. 마침 담당 의사가 회진을 돌며 병실로 들어왔다.
“김태식 씨. 좀 어떠세요?”
“통증이 심하고요. 잠을 못 자요.”
“잠을 못 잘 정도로 아프다고요?”
“아니요. 그게. 그러니까. 통증보다 그냥 잠을 못 자요. 다른 이유로요.”
태식은 옆 침대 노부부가 시도 때도 없이 싸우고, 울고, 달래고 하는 소리 때문에 미치겠다고, 그래서 잠을 못 잔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모님 얼굴이 떠올라서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삼켜버렸다. 나름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다른 이유라고 말해버렸다.
“네. 그럼 무통 주사하고 수면제를 조금 처방해드릴게요. 수면제는 식사 후 약으로 드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태식은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신경과민일까?’ 오른쪽 눈 아래가 가볍게 떨렸다. 피곤하고 신경 많이 쓸 때, 스트레스가 심할 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래 잠을 청해보자. 잠을 자면 괜찮아질 거야.’ 애써 심호흡을 하며 머릿속에 생각들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그때였다. 잠잠하던 옆 노부부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볼륨 최대, 통화음 최대. 막 잠이 들려고 했는데……. 또 핸드폰 너머 아들 목소리, 할아버지 고함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번에는 핸드폰 너머 아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는 게 들렸다.
“아부지. 큰누나는 사람도 아니에요. 병원비 보태서 내라고 작은누나 돈하고 같이 보냈는데 써버렸데요. 그것도 주식에 투자해서 날렸데요. 이런 미친년이 어딨어요. 전화 오면 받지도 마세요. 분명히 집 팔아서 도와달라고 할거에요. 절대 받지 마세요. 병원비는 제가 어떻게 다시 해볼게요.”
“그기 무신말이고. 영숙이가 병원비를 써 버맀다고? 니 지금 참말하는 거 맞나?”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들의 목소리는 더 흥분돼서 욕하는 소리까지 들렸다.
“아부지한테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 가시나 완전히 미쳤어요. 지가 주식에 투자한 것도 아니고 매형이, 아니 그 새끼가 돈 구해오라고 하니까 병원비까지 손 댄거에요.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요. 엄마 병원비를 날리는 년이 인간이에요? 앞으로 절대 보지 않을 거에요.”
“아이구. 이를 우짜노. 이를 우짜노. 그 돈이 어떤 돈인디.”
할아버지는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빠졌다.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간병인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태식은 귀를 쫑긋 세우고 노부부의 소리에 집중했다. 이번에는 통화 소음 스트레스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있던 할머니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죽일년이여. 내가 아픙께 이런 일이 다 생기고. 아이고. 흐흑, 아이고.”
할머니의 울음소리는 병실이 떠나갈 듯 커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병실 입구 문 쪽에 있던 1번 침대 박 씨 아저씨가 소리를 질렀다.
“씨발, 병원 전세 냈어? 한두 번도 아니고 사람 돌아버리겠네.”
‘저 새끼가 뭐라는 거야. 할머니 할아버지보고 욕을 하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모뻘 되는 사람한테 욕을 해? 이런 싸가지 없는 놈.’
태식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껏 노부부의 소음공해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저러다가 두 분 다 쓰러지시는 거 아닌가? 충격이 크시겠는데!’ 태식은 머리맡에 있는 비상 호출 버튼을 눌렀다. 김 간호사가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에요?”
김 간호사는 태식의 커튼을 젖히면서 물었다.
“아니, 제가 아니고 저보다 옆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괜찮으신지 봐주세요. 조금 전에 엄청나게 충격을 받으신 거 같아요.”
“그래요? 왜요?”
김 간호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자세한 건 할아버지한테 물어보시고 빨리 가보세요.”
김 간호사가 할머니 침대의 커튼을 젖히자 침대에 누워있던 할머니는 꺽 꺽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할아버지는 넋을 잃고 멍하게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숨을 크게 쉬어보세요. 천천히, 천천히.”
할머니는 김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서너 번까지는 중간에 꺽 하며 호흡이 끊겼지만 다섯 번째부터는 한 번에 천천히 내쉬었다. 할머니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김 간호사는 할아버지의 두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할아버지. 제 손 잡고 일어나 보세요.”
“어어. 흑.”
할아버지는 김 간호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괴상한 소리만 내고 팔만 들어 올린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김 간호사의 작은 체격으로 할아버지를 힘으로 일으켜 세울 수는 없었다. 태식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일어나서 김 간호사를 도우려고 했다. 그러자 김 간호사가 손사래를 치며 간호사실에 다른 사람을 데려와달라고 말했다. 태식은 링거가 걸린 거치대를 들고 뛰었다.
“여기요. 1230 병실에서 김 간호사님이 도와 달래요. 빨리요.”
간호사실에 있던 간호조무사 1명과 다른 병실 담당 간호사 1명이 하던 일을 멈추고 병실로 뛰어갔다.
“무슨 일이에요?”
“어, 송간은 할머니 호흡 좀 봐줘. 이 선생은 할아버지 일으키는 거 도와주고.”
태식은 그 모습을 본 후에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1번 침대 박 씨 아저씨가 커튼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빼꼼히 쳐다보고 있었다. 태식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커튼 안으로 자라 머리 감추듯 머리를 집어넣었다. 태식의 눈에서 이글거리며 발사되고 있는 레이저에 버틸 양심이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정상 호흡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간병인으로 와 있던 할아버지 상태가 이상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어어. 흑. 어어.’ 정도의 소리만 내고 있었다. 김 간호사와 이 선생이 겨우 간병인 침대에 눕혀서 안정을 찾도록 천천히 호흡을 유도했다.
“할아버지. 정신이 드세요? 이름이 뭐예요?”
태식은 할아버지가 대답을 못 하자 ‘제발 말하세요. 어서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안타까움과 조금이라도 미워했던 마음이 죄책감으로 엉켜서 복잡한 심경이었다. 다행히 호흡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혈압은 높아서 계속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말은 여전히 하지 못했다.
잠시 후 담당 의사가 들어왔다. 할머니 상태와 할아버지 상태를 차례로 확인하더니 보호자 연락처를 물었다. 할머니는 핸드폰을 건네며 아들한테 연락해보라고 했다. 김 간호사가 핸드폰을 받아들고 ‘아들 정호’라고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띵디딩딩, 띵디딩딩.
신호음이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할머니. 다른 전화번호 없어요? 딸 전화번호.”
“어. 영숙이. 영숙이.”
김 간호사는 저장된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태식은 영숙이라는 이름에 귀가 번쩍 뜨였다. ‘큰딸 영숙이가 병원비를 날리는 바람에 이 난리가 난 건데 영숙이한테 전화한다고?’ 태식은 얼른 작은딸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오지랖이었다.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띵디딩딩, 띵디딩딩.
큰딸 영숙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하기야 사람이라면 전화를 받지 못하지. 어머니 병원비를 날렸는데 무슨 양심으로 전화를 받을 수 있겠어!’ 태식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나서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다른 자식은 없어요?”
“정숙이. 둘째 딸. 정숙이.”
띵디딩딩. 띵디딩딩.
“어. 엄마.”
“여보세요. 정막순 할머니 따님이시죠?”
“네. 그런데요. 어디세요?”
“네. 병원 간호산데요. 할아버지 상태가 좀 안 좋으세요. 의사 선생님 바꿔드릴게요.”
“아, 잠깐만요. 저한테 말하지 말고요. 남동생한테 말해주세요. 지금 제가 좀 바빠서요.”
띵
둘째 딸이 전화를 끊었다. 함께 듣고 있던 모든 사람이 동시에 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할머니가 다시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이게 무신 창피야. 아이고. 한 개도 제대로 된 놈이 없네. 선상님. 원래는 참 착한 애들이라에. 저거가 못상께 그러지. 잘살먼 절대 안그랄 애들이라에. 아이고 돈이 원수네. 돈이 원수야.”
할머니는 할아버지 상태보다 자식들이 후레자식 취급 받을까 봐 더 걱정되는 듯했다.
담당 의사가 할머니를 진정시키면서 할아버지 상태를 설명했다.
“할머니. 일단 자식들하고 통화가 안 되니까 할머니한테 말씀드릴게요. 할아버지 지금 상태가 안 좋아요. 말씀을 못 하세요. 심하게 충격받으신 일이 있으세요?”
“아이고. 영숙이년이 돈을 다 써버리가꼬. 그 말 듣고 저리되삡는갑소. 영숙이년도 아는 원래 착한기라. 남자를 잘못 만나가 그리 되 삔 거지.”
“할머니. 알았고요. 할아버지 지금 입원 치료하셔야 해요. 안 그러면 위험하세요. 일단 중환자실로 옮겨야 해요. 아셨죠? 아들하고 다시 한번 전화 해보시고요.”
담당 의사는 할머니가 할아버지 보호자로 입원 절차에 동의하는 거로 해서 빨리 중환자실로 옮기라고 지시한 후 병실을 나갔다. 지원 의료인 두 명이 이동식 침대를 가져와서 할아버지를 눕혔다. 입에는 산소마스크가 씌워졌고 침대 기둥에 링거도 달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누운 채로 병실을 나가는 모습을 보며 ‘아이고 아이고’만 소리 내며 울었다.
태식은 할머니 상태가 걱정되어 침대에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다시 일어나서 할머니 침대 발치로 갔다.
“할머니. 아들한테 다시 전화해보세요. 바쁜 일이 있어서 못 받았을 거예요. 얼른 다시 해보세요.”
“아이고. 아이고. 나는 손이 떨려서 못하것소. 선상님이 좀 해주소.”
태식은 남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지만, 할머니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할머니 핸드폰을 받아들고 전화를 걸었다.
띵디딩딩. 띵디딩딩.
여전히 신호음이 가는데 받지 않았다. ‘이런 후레자식!. 아픈 엄마가 전화하는데 안 받아?’ 태식은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에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일단 문자를 남겨야겠다. 문자를 보면 바로 전화를 하겠지.’ 태식은 할머니에게 아들이 무슨 바쁜 일이 있는 것 같아서 문자로 남겨놓겠다고 말했다.
[아들아. 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의사가 위독하단다. 문자 보는 대로 전화해라.]
“할머니. 제가 문자 보냈으니까 금방 전화 올 거예요.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고맙소. 고맙소. 이리 착한 사람이 다 있능교. 참말로 고맙소.”
그날 밤. 태식은 마음이 무거웠다. 병실이 마치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조용했다. 잠도 오지 않았다. 복잡한 심경으로 누워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였다.
“여보. 통증은 좀 어때?”
“응. 괜찮아졌어. 걱정하지 마.”
“당신 목소리가 왜 그래? 진짜 괜찮은 거야?”
“괜찮대도. 그냥 잠을 좀 못 자서 그래.”
“옆 침대 할머니 할아버지 때문이지? 그래도 당신이 좀 참아. 아버님 어머님 생각해서.”
“그래야지. 그럴게. 당연히 그래야지.”
“이번 주 토요일에 코로나 검사받고 갈게. 힘들어도 잘 참을 수 있지?”
“아들, 딸 다 데리고 와라. 내가 꼭 할 말이 있어.”
“왜 그래? 다 바쁠 텐데.”
“내 말 들어. 다 데리고 와.”
“알았어. 그럴게. 참 약 먹었어? 내가 안 챙기면 당신 늘 빼먹잖아.”
“먹었어. 먹었다니까.”
“챙겨 먹어요. 당신이 그렇게 화내면 안 먹은 거야. 지금 약을 꺼낸다 실시. 호호호. 꼭 챙겨 먹어요.”
“알았어. 먹을게. 이만 끊어.”
태식은 약 먹는 걸 깜빡 잊었다. 오늘 저녁부터 수면제가 소량으로 들어간 약이었다. 상황적으로는 안 먹어도 될 듯했지만, 기분적으로는 오히려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셨다. 침대에 누워서 천천히 호흡하며 잠을 청했다. 조금씩 약 기운이 몸에 퍼지는 게 느껴졌다. 스르르 눈이 감기면서 잠이 들었다.
태식은 몸이 가벼움을 느꼈다. 허공에 둥실 떠 있는 기분이었다. 발 디딜 곳이 없어 불안하게 허우적거리는데 저 아래서 8남매가 모여 가족회의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태식은 팔을 휘저으며 아래로 내려가 자리에 앉았다. 태식의 형제는 딸 다섯에 아들 셋. 태식이 제일 막내였다. 제일 큰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막내가 지금 왔네. 그럼 다 모였으니까 시작할게. 내 나이가 지금 80이다. 젊었을 때 돈 좀 벌어서 내가 지금껏 아버지 어머니 부양했는데 이제 나도 너무 힘들다. 100살을 넘게 사실 줄 몰랐는데……. 좋기는 해도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체력도 달리고, 나도 이곳저곳 아프고, 너무 힘들다. 그래서 두 분 다 요양원에 보내는 게 어떨까 하는데 각자 생각을 말해봐라.”
넷째, 장남인 수식이가 말했다.
“요양원 비용도 만만찮을 텐데. 80 다 된 우리가 돈 나올 곳이 어딨어? 적어도 한 분당 100만 원, 매달 200만 원은 들 텐데. 그 돈이면 두 분 지금 한 달 생활비 100만 원 가지고 사시는데 두 배잖아. 솔직히 국민연금하고 노령연금 받고 생활하는데, 딸랑 집 한 채밖에 없는 사람은 5만 원도 벌벌 떤다. 자식들이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큰누나처럼 노후준비를 잘해 놓은 것도 아니고 좀 그러네.”
일곱째, 차남 정식이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은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아버지가 누구 때문에 전 재산을 날렸는데? 형님이 젊었을 때 잘했으면 우리 형제 자손까지 다 평생 먹고살 재산이었어. 내가 이제야 말하는데 형님은 그냥 가만히 있어. 그러면 원망은 안 들어. 형님보고 돈 내라는 소리 하지 않아. 평생을 연락도 안 하고 살다가 마지막 남은 아버지 재산이 딴 데로 갈까 봐 가족회의 참석한 거잖아.”
셋째, 희옥이가 정식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정식아. 네 말이 다 맞다. 그래도 오랜만에 참석한 형한테 그러면 안 돼. 하나씩 풀어나가자. 그러려고 모인 거잖아. 언니. 언니가 지금까지 아버지 어머니한테 참 잘해줘서 나머지 형제들이 큰 어려움 없이 조금씩 거들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그런데 요양원 보내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장남 수식은 동생한테 한 소리 듣자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일흔다섯의 나이에 아직도 담배, 술 없이는 못 사는 노인네다. 동생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더 속상했다. 이번에 장남 노릇 좀 하려고 했는데 살아온 행적이 허락해주질 않았다. 그냥 죽을 때까지 그렇게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하는 자신의 인생이 비참했다.
태식은 여덟 형제 한명 한명의 인생을 바라봤다.
첫째는 부동산으로 돈 좀 벌었다. 자식들도 자기 앞가림은 하고 산다. 손주가 결혼하는데 가구 선물 정도는 할 수 있는 재력도 있다. 자식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철저히 배제한 상태에서 노후준비를 했다. 국민연금, 노령연금, 보험연금, 월세 수입 구조를 만들어 놓았으면서도 몸이 허락하는 한 일을 했다. 그래서 늘 당당했다. 조카들도 그런 부모를 잘 따랐다.
둘째하고 다섯째는 노후자금으로 모아놓은 돈을 애물단지 자식들 때문에 모두 날렸다. 자식들도 부모를 돌보지 않았다. 그냥 각자 살길을 찾으며 노후를 힘들게 살고 있었다.
여섯째와 일곱째는 아직 돈에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캥거루 새끼 같은 자식이 한 명씩 있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취직도 못 했다. 처음에는 아직 젊으니까 자기들도 오죽 답답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부모 등에 얹혀살기를 30년. 70대 부모가 50대 자식을 아직도 키우고 있었다.
셋째는 노후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아직도 돈 들어갈 곳이 많았다. 딸 셋이 공부를 잘해서 대학원까지 보내는 바람에 빚이 많았다. 거기다가 부모님이 한 번씩 큰 수술을 하면 첫째가 반을 내고 나머지를 여섯째, 일곱째, 막내와 같이 부담했다. 30년 공직생활로 연금을 받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태식은 자신을 바라봤다. 그러자 갑자기 허공으로 몸이 치솟아 오르더니 52살의 나이로 돌아갔다.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하는데 둥실둥실 허공에 떠 있는 자신이 불안했다. 52살의 자신은 하늘에서 부모님이 잡아당기고, 땅에서 아내와 자식들이 잡아당기고 있었다. 어디든지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 죽을 거 같았다. 어떻게든지 버텨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땅에서 아들과 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자식이 중요하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삼촌하고 고모들이 있잖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이번에는 하늘에서 부모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불효자식을 봤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어미·아비 부양하는 게 그렇게 아까우냐?’ 태식은 차라리 귀를 막고 싶었다. 그러자 땅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우리 노후자금은? 당신 퇴직하면 뭐 먹고 살아? 비상금이라도 모아놓은 거 있으면 꺼내 봐.’ 태식은 하늘에서 당기는 부모님의 팔을 놓아버렸다. 땅에서 당기는 아내와 자식의 팔도 뿌리쳤다. 바람에 둥실둥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갔다.
“모두 나한테 왜 그래. 내가 ATM기도 아니고.”
태식은 세상이 떠나갈 듯이 큰소리로 외쳤다. 허공에 떠 있는 몸으로 다시 아래를 봤다. 가족회의를 하던 형제들의 모습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안돼. 결론을 못 내렸잖아.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 요양원에 보낸다는 거야? 내 의견은 말도 하지 않았는데. 다들 어디 가는 거야. 가지 마. 가지 마.”
태식은 울부짖었다. 허공에 떠 있는 자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괴로움을 벗어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외로움이 느껴졌다. ‘아버지, 어머니. 여보, 얘들아. 어딨어? 다들 어디 간 거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야 자신이 모두의 손을 놓아버린 걸 후회했다. 그리고 짐승처럼 울었다. 울음소리에 바람이 거세게 일더니 회오리가 되어 허공에 떠 있는 자신의 몸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상하게 다른 곳은 멀쩡하고 왼팔만 찢긴 듯이 아팠다. 오른손으로 찢긴 피부를 움켜쥐는 순간 밝은 빛이 자신을 비췄다.
“여보. 괜찮아?”
“아빠. 아빠. 정신 차려 봐.”
태식이 눈을 떴다. 눈앞에 아내와 아들, 딸이 보였다.
“어어. 여기가 어디야?”
“어디긴, 병원이지. 수정아 빨리 간호사 불러와라. 아빠가 침대에서 떨어져 링거주사가 빠졌다고. 피도 난다. 얼른.”
“알았어. 엄마.”
태식은 정신이 들었다. 심하게 악몽을 꿨다. 그것도 너무나 생생하게.
“여, 여보. 내가 지금 몇 살이지?”
“당신 왜 그래요? 52살이지.”
“으음. 52살 맞지?”
“잘 때는 침대 난간 올리고 자라고 했잖아. 난간이 없으니까 옆으로 떨어졌지. 하여튼 애도 아니고. 참 손이 많이 가는 남자야 당신.”
바닥에서 막 일어나는 순간 김 간호사가 들어왔다. 링거가 빠져서 피가 난다고 했는데 천천히 걸어왔다. 그것도 웃으면서.
“선.생.님! 주무실 때는 침대 난간을 세워두라고 말씀드렸죠? 병원 침대에서 떨어지신 분은 처음 봐요. 호호호.”
김 간호사는 링거주사를 다시 꽂았다. 다행히 수술 부위는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기분이 묘하게 이상했다. 옆 노부부 침대가 너무 조용했다.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 김 간호사님. 옆 할머니 어디 가셨어요?”
김 간호사는 링거 조절기를 아래로 조금 내리면서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새벽에 뇌출혈로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는 그 충격으로 중환자실로 옮겼고요.”
“네? 정말요? 어떻게 그렇게 되실 수 있어요? 아들하고 딸들은 연락되었고요?”
“아뇨. 아무도 전화를 안 받아서 문자로 남겼는데 아직 연락이 없나 봐요.”
“…….”
태식은 안타까움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런 태식에게 김 간호사가 한마디 더 붙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남기셨대요. 마지막으로 또렷한 정신으로요.”
“뭐라고요?”
“글쎄 집을 팔지 말라고 하셨다네요.”
“네? 유언으로요?”
“네……. 이제 다됐습니다. 수술 부위가 눌리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조심하시고요.”
김 간호사가 나간 후 태식은 옆 침대 커튼을 걷었다. 텅 빈 침대가 너무 쓸쓸하게 보였다.
그런 태식을 보며 아내가 물었다.
“이게 다 무슨 말이야?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거는 뭐고 집을 팔지 말라는 거는 또 뭐야?”
“자식 믿지 말고 돈을 믿으라는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