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이 캔버스에 시대의 아픔을 담을 때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 1878~1935)가 무(無)에 도전했다. <검은 사각형>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때였다. 그의 조국 러시아에서 레닌의 지도 아래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 할 즈음으로, 진보적인 예술가들이 서유럽 따라잡기에 나섰다. 여기에 삼십 대 중반의 말레비치도 있었다. 입체-미래파 작품을 선보이던 그는 1913년 가을,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오페라 <태양에 대한 승리>의 무대 디자인을 맡았다. 공연이 끝날 무렵, ‘흰색 배경에 검은 사각형 하나’를 그려 넣었는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여기서 엄청난 힘을 발견한 그는 1915년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합동 전시회 ‘마지막 미래주의 전시: 0,10’에 <검은 사각형>을 포함한 39점(35점, 혹은 36점이라고도 한다)의 비구상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나 피카소의 영향을 받아 ‘구축주의(구성주의)를 창시한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Evgrafovich Tatlin, 1885~1953)이 말레비치를 비판했다. 아마추어라며 프로페셔널 미술가를 위한 전시관에 작품 게시를 금지했다. 말레비치는 다른 전시실로 옮겼고, <검은 사각형>은 전시실 천장 아래 벽과 벽 사이 모서리를 가로질러 걸었다. 러시아 가정에서 통상 이콘(icon, 동방교회에서 발달한 예배용 화상)이 위치하는 자리다. 대표 작품임을 분명히 한 상징적 배치다. 선과 면, 색채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덮였다. 모든 빛을 흡수하는 색이 검정이다. 밤의 세계이며, 미술이 주는 아름다움조차 포기했다. 그는 순수한 감성은 어떤 모방이나 형태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외부 세계의 재현을 거부하고 형상마저 없애 버린 추상의 극단, 그래서 ‘절대주의’라고 한다. 그는 말했다.
“나는 예술에 있어서 순수한 감정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절대’란 순수한 감정이 핵심이지, 검은색만 고집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가시적 세계를 너머 존재하는 '본질'을 표현하며, 가장 단순한 형태인 사각형과 원 그리고 십자가를 기반으로 다양하게 구성했다. 그렇게 검은색 절대주의, 붉은색 절대주의, 백색 절대주의로 진화했다. 예를 들어 <절대주의(궁극)의 구성>의 부제는 ‘흰색 위의 흰색’이다. 첨단 테크놀로지에 매혹된 말레비치가 비행이 주는 초월성과 부유(浮游)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흰색을 선택했다. 그래서 경계 없는 흰색의 무한함에 대한 숭고한 비전만 존재한다. 다만 다른 작가들이 자연에서 추상적 감성을 끌어냈다면, 그는 처음부터 ‘비행’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자신만의 형태와 색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독창적이다. 따라서 ‘절대’라는 개념 속에는 자신의 예술이 자연의 형태보다 앞섰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스텔라 폴, <컬러 오브 아트>)
한편 전시회 이름 ‘0,10’도 복잡하다. 형태의 ‘제로’를 지향하는 참여 작가 ‘10명’이란 뜻인데, ‘0’이라는 개념 역시 매우 추상적이다. ‘영(零)’, 이탈리아 말 ‘제로 zero'가 유럽에 정착한 때는 14세기가 넘어서였다. 텅 비어 있지만 ‘무(無)’가 아니다. 예를 들어 3, 31, 321에서 ‘3’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위치에 따라 3, 30, 300으로 의미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 ‘0’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0'은 불교의 ‘공(空)’과 상통한다. 무(不在)와 유(實在)가 한자리에 있다. ‘없되 없지 않으며, 있되 있지 않은 상태’, 마치 원시 우주의 상태와 같다. 무의 빅뱅에서 광대한 우주가 탄생했으니까. 말레비치가 자기 작품을 일러 이렇게 말했다. (제목 그림; <파란 삼각형과 검은 사각형이 있는 절대주의(1915)>)
“서로 조화를 이루며 교차하고자 하고, 바탕의 공간 속에 부유하고 있는 기하학적인 형태들을 통해 우주의 형상을 재현하고자 하였다. (페데리코 폴레티, <아방가르드>)”
오늘날 0과 1만으로 복잡한 지적 체계를 갖춘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거꾸로 회화에서 대상을 0과 1처럼 단순하게 환원한 양식이 바로 추상이다. 하지만 <검은 사각형>은 불친절하다. 주제를 암시하는 어떤 힌트도 없다. 일종의 미니멀리즘(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일어난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인 흐름)의 극단이다. 이런 간결성은 그의 이전 작품에서도 그 경향을 눈치챌 수 있다. 노동 세계에 바친 <호밀 수확>에서는 기존의 미래파가 보여주는 역동성과 감정을 배제한 채 대단히 정적이다.
절대주의는 (0과 1 같은) 극단의 단순성으로 복잡한 물질세계를 벗어나 온전히 정신세계로 들어설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이런 맥락에서 말레비치는 현실에서 전쟁, 강요된 사회주의, 그리고 합리성에 대한 불신 등 길 잃은 이성을 표현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자 생각을 공유한 작가 전원이 작품 제목에서 인지할 수 있는 주제를 배제한 채 ‘추상의 궁극’ 절대주의에 동참했다. 결과적으로 절대주의는 예술적 경향이기보다 작품의 성격을 규정짓는 용어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말레비치는 고민했다. ‘절대’라는 말이 주는 부담감 때문이다. 절대는 궁극적 목적지라는 의미가 내포되었다. 따라서 이에 도전하는 어떤 새로움도 허용하지 않는다. 1917년 새로운 러시아가 탄생한 이후 1919년 12월, 제6회 국가 전시회에서 말레비치는 결국, 절대주의 운동의 종말을 선언했다. 그리고 한동안 정체성 문제로 붓을 놓았던 그가 자연의 재현, 즉 구상(具象)의 세계로 돌아왔다. 하지만 1935년, 암으로 사망하기 전 자신의 관 뚜껑을 검은 사각형과 원으로 디자인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는 역시 검은 사각형이었나 보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쓸데없는 한 생각이 떠올랐다. <검은 사각형>을 본 당신은 “이건 나도 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길 수 있다. 작품의 단순성 때문이며, 감상은 각자의 몫이라는 관점에서 이런 태도를 나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창조의 세계에선 이를 일러 작가의 독창성이라 한다. 마치 ‘콜럼버스, 아니 브루넬레스키의 달걀’과 같은 얘기다. 당신의 생각은 작가 다음 순서였다는 뜻이다. 앞서 휘슬러가 2시간 걸려 완성한 작품의 가격 200 기니를 ‘자신의 일생에 거쳐 축적한 지식에 대한 가치’라고 한 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라 했다. 풍자적인 말이다. 대중의 지닌 가벼운 인식은 현대 미술을 감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모적이다. 먼저 작가의 철학과 독창성을 찾으려는 관찰이 필요하다. 덧붙여 권위 있는 부연 설명에 귀 기울인다면, 문화를 보다 풍요롭게 향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