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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Nov 06. 2023

호기심과 ‘창백하고 푸른 점’의 나이

알브레히트 뒤러의 <코뿔소(1515)>


호기심이 많은 화가로 가장 먼저 꼽는 인물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그가 남긴 1만 3천 쪽에 달하는 노트를 보면, 레오나르도는 자연과학자(해부학, 천문학, 물리학)이자 과학 삽화가였고, 최고 수준의 미술가였다. 하지만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Düre, 1471~1528) 역시 만만치 않다. 그의 호기심은 비록 회화의 영역에 국한되었지만, 넓은 스펙트럼을 갖추었다. 기사 헬멧, 운석, 앵무새, 토끼, 그리고 잡초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뒤러의 <코뿔소(1515)>

1513년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1세는 인도로부터 처음 유럽으로 들어온 ‘리노케로스’라는 이름의 코뿔소를 선물로 받았다. 1515년, 왕은 코뿔소와 코끼리를 싸우게 했다. 코끼리가 도망가면서 싱겁게 끝났지만, 이야기가 부풀려졌다. 뒤러도 코뿔소의 모습이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친구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독일 상인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철갑 코뿔소를 그렸다. 

판화로 제작된 그의 <코뿔소(1515)> 연작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투구 장식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8쇄까지 인쇄되며 4,000~5,000점 정도가 유럽 전역으로 팔려 나갔다. 그 코뿔소 모습은 18세기 유럽인의 인식을 지배했다. 그리고 그가 ‘최초의 유럽화가’라는 명성을 얻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의 호기심은 56세를 일기로 죽음으로 내몰았다. 네덜란드 여행 중 썰물에 해변으로 떠밀려 온 고래를 보려다 급성 말라리아에 걸렸다.  



과학자의 호기심은 학문적 성과와 함께 미래 문명을 창출한다. 뉴턴의 호기심은 오늘날 인공위성으로 열매를 맺었다. 1990년 밸런타인데이(2월 14일)가 되자 보이저 1호가 태양계 쪽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그리고 사진 60장을 전송했다. 태양계의 첫 가족사진이다. 지구(대문 사진 참조)는 이때부터 ‘창백한 푸른 점’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런 발전에도 불구하고 지구 나이와 관련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무지했다. 불과 1세기 전까지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는 약 6천 년으로 계산된 지구 나이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1650년 아일랜드의 제임스 어셔 주교가 성서 기록과 유물을 신중하게 검토해서 <구약성서 연대기>를 썼고, 지구가 기원전 4004년 10월 22일 오후 6시(현지 시각)에 창조되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이어 영국의 신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윌리엄 휘스턴(William Whiston, 1667~1752)이 그해 11월 28일에 탄생했다고 살짝 교정했다.

 

나름 과학적인 접근 방법을 동원하여 지구 나이를 조금씩 늘여 나갔으나 영국의 켈빈 경,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 1824~1907)이 쐐기를 박았다. 그는 83년 생애에 걸쳐 69건의 특허와 661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스물두 살에 존경받는 글래스고 대학의 자연철학 정교수가 되었다. 한 마디로 영국 과학계에서 그의 명망과 권위가 대단했다. 전자기학, 열역학, 빛의 파동 이론에 관한 연구에서도 혁명적이었다. 특히 열(熱) 역학에서 절대온도의 단위 ‘캘빈(K)’이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런 그가 1862년 <맥밀란스>라는 대중 잡지에서 지구의 나이를 언급했다. 태양의 일부였다는 가정하에 지구가 현재 온도에 이르기까지 2,000만 년에서 4억 년 사이라고 추정하면서 9,800만 년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직전 1859년에 진화론을 발표한 찰스 다윈 입장에서는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반대 논리였다. 그의 계산이 정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지구 나이 1억 년은 종의 진화에 이르는 시간으로 절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질랜드 출신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방사성 물질의 시료가 붕괴하여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감기였다. 그는 역청 우라늄광 조각을 연구해서 그것이 7억 년이나 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캘빈 경의 계산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또한 동위원소의 붕괴로 지구에서 열이 계속 발생함으로써 캘빈의 생각보다 빨리 식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결국, 지구 나이와 관련된 그의 주장은 생명력을 잃었고, 오히려 과학자 경력에 흑역사로 둔갑했다. 

1946년에 영국의 지질학자 아서 홈스(Arthur Holmes, 1890~1965)가 우라늄이 납으로 붕괴하는 속도를 측정하여 지구 나이가 적어도 30억 년이 되었다고 발표했다. 1953년, 마침내 미국의 화학자 클레어 패터슨(Clair Cameron Patterson, 1922~1995)이 학술회의에서 45억 5,000만 년(±7,000만 년)이라고 정확하게 밝혔다.

 

한편 약 46억 년 전에 지구가 탄생한 것은 이곳 생명체에겐 행운이었다. 138억 년 전 빅뱅 이후 우주가 생명체에 필요한 원소, 즉 수소, 산소, 탄소, 질소 등이 다 갖춰진 뒤 태양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구엔 태양광선 중에서 유해한 전자기파를 반사하는 층이 생겨 산소 호흡을 하는 생명체의 탄생을 도왔다. 

게다가 다른 행성에 없는 특이한 지각을 지녔다. 10개 정도의 지판이 마그마 위에 올라앉아 아주 서서히 움직인다. 지판 틈 사이로 마그마가 올라와 화산이 되고, 미끄러지면서 지진과 해일을 일으키며 산맥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5,000만 년 동안 인도판은 매년 약 5cm의 속도로 북쪽으로 밀고 올라가 아시아판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히말라야산맥과 티베트고원을 솟아오르게 했다. 이러한 대기층과 지질구조판은 생명체를 만드는 매우 중요하다. ‘골디락스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동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에서 따온 말로, 어떤 결과를 이루는 '다양하고 필연적인 조건'을 강조할 때 쓰인다. 


38억 년 전쯤 되었을 때, 드디어 지구에 생명체가 출현했다. 생명체는 자기 증식 능력, 에너지변환 능력, 항상성 유지(외부 환경이 변하더라도 체온, 혈당량, 체액 농도 등 체내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성질)의 특징을 보인다. 이런 특성을 지닌 생명체가 등장하려면, 이에 걸맞은 서식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크게 세 가지다. 물(바다), 적절한 온도, 그리고 지질구조판. 이 세 가지 조건은 삼각대처럼 얽혀 있으며 이 중 하나가 빠지면, 다른 둘이 무너지는 구조다. 예를 들어 적당한 온도는 지질구조의 특성과 바다와의 관계를 함께 설명할 때 가능해진다. 

마찬가지로 인간과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도 서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일개 종의 절멸이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미래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인류가 타 생명체와 공생을 깊이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각오를 다져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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