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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Feb 14. 2022

로코코의 마지막 거장 프라고나르

<그네>와 <빗장>

<그네(1767)>

여인은 힘차게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그 바람에 치맛자락이 벌어져 속옷이 드러나고··· 로코코의 전형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 Honoré Fragonard, 1732~1806)의 <그네>다. 이도령이 수작을 걸 때도 춘향은 그네를 타고 있었다. 자고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인의 그네 타는 모습은 사내의 가슴을 벌렁거리게 하는 가 보다. 특히 18세기 여성들은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더욱 그러하다. (필립 드 몬테벨로/마틴 게이퍼드, <예술이 되는 순간>)

그림을 의뢰한 생 줄리앙 남작은 "사랑스러운 여인의 다리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자신을 그려 달라고 했다. 프라고나르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오른편 어두운 곳에서 그네를 밀고 있는 남자는 일부러 늙게 그렸다. 그녀의 아버지일 수도, 나이 차이가 큰 남편일 수도 있다. 최초 사제(司祭)로 그려 달라는 요청이었지만, 통속적인 프라고나르도 차마 그대로 들어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왼편 큐피드 조각상이 이 은밀한 비밀을 지키라는 듯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댄다. 간통과 기만에 대한 찬가로, 프랑스혁명 때 그림은 몰수되고 소유자는 단두대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반전은 벗겨져 달아나는 신발, 하이힐에 있다. 숲에 있는 연인에게 “당신, 거기 있었군요” 라며 던지는 은근한 유혹이다. 성(性) 해방을 암시한다. 하이힐은 스페인의 무어인 여자들이 신었던 나막신에서 시작됐다. 17세기 초 도로의 깊은 진흙탕을 건널 때 높은 굽이 환영받았다. 당시 유럽에서 돌을 깐 인도는 어디에도 없었고, 도시 뒷길은 쓰레기나 인분이 쌓여 있었다. 게다가 비라도 내릴라치면, 통상적인 신발을 신고서는 그 결과가 참혹했다. 최초 하이힐은 이런 실용적인 이유로 유행했다.

그런데 여성들은 하이힐을 신으면 몸의 굴곡이 강조된다는 점을 곧 깨달았다. 앞으로 넘어지지 않으려면 몸을 뒤로 젖혀야 하는데, 그 때문에 엉덩이가 튀어나와 풍만함이 두드러진다. 또한 무릎을 굽히지 않고 허리를 쭉 편 채 가슴을 불쑥 내밀면, 앞가슴은 터질 듯 도발적이 된다. 전체적으로 젊고 진취적으로 보인다. 어찌 하이힐에 대한 여성의 사랑이 오늘날까지 여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셰에게서 그림 공부를 한 프라고나르는 스무 살이 되는 1752년 왕립 아카데미 최고의 미술 경연대회인 로마상을 수상했다. 부상으로 5년간 로마 유학을 다녀왔다. 그는 명성을 얻었지만, 왕을 위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1765년 살롱전 <코레소스와 칼리오에> 출품을 마지막으로 역사화를 접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 와토가 개척한 '페트 갈랑트’에서 신화적 외피를 걷어내고 대담하게 현실 속의 연애 풍속화를 담았다. 그리고 개인 후원자를 위해 에로틱한 소규모 작품들을 완성했다. 경제적인 이유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는 퇴폐와 함께 우수가 스며들어 있다. 그는 신고전주의 시대에 활동했으면서도 ‘가장 로코코적인 화가’로 평가받는다. (NAVER 지식백과)

<빗장(1773?)>

로코코는 화려함과 쾌락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이 <빗장>이다. 여인을 강제로 끌어안으며 다른 한 손으로 문에 빗장을 잠그는 장면으로, 로코코의 욕망을 대신했다.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침대와 커튼의 형태를 여성과 남성의 성애를 암시한다. 차라리 인간의 욕구를 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솔직하다. 여성 누드화의 대가 르누아르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그의 두껍게 칠하는 그의 채색법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그를 후원했던 부유한 귀족계층이 사라졌다. 그의 화풍은 유행에서 급속히 멀어져 갔다. 계몽주의자의 신랄한 비판을 받은 그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고 파산했다. 그리고 1806년 일흔네 살에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그의 작품세계가 일방적으로 저급하게 받아들여질 안타까움에 그의 우아한 작품 <책 읽는 소녀(1776, 제목 그림)>를 한번 감상해 볼 것을 권한다. 

인간 사회에서 권력과 부(富)에 관한 한 ‘공평’이란 없다. 본능적인 속성일지 모른다. 따라서 귀족이 등 따습고 배부르면, 상대적으로 서민의 등골은 휘게 마련이다. 그러면 반동이 뒤따른다. 로코코의 화려함이 경박함으로 바뀌었고 잠시 유행으로 머물다 결국, 종말을 맞았다. 역사의 반복되는 패턴이다. 하지만 우매한 자들에게는 언제나 결과론적인 이야기였다. 그래서 시대의 격랑 한가운데서 중심을 잃지 않고 살기란 초인(超人)에게나 가능한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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