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詩 <함께 웃을 수 있을 윤동주를 만날 때까지 >는 1999년 8월 20일 초고를 썼다.
그때는 나의 나이도 스물여섯 푸른 청춘이었다.
내가 열두 살 때부터 좋아해 온 윤동주 시인은 1917년 12월 30일에 태어나서 1945년 2월 16일 차디찬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스물여덟 너무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결국 그는 단 한순간도 그가 사랑하던 조국의 자유를 맛본 적이 없었다.
단 하루도 자신의 나라가 자신의 것이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자유를 빼앗긴 억압의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숨이 막히는 것이었을까?
나는 그 사실이 늘 너무도 가슴 아팠다.
그래서 스물여섯에 나도 그를 그리워하며 이 詩를 썼다.
문학관에서 윤동주 시인의 詩를 직접 필사한 것
어제 5월 5일, 나의 결혼 21주년을 기념하며 조촐하게 서울 나들이를 다녀왔다.
진즉 가보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던 종로구 창의문로 119(청운동)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에 다녀왔다.
그의 생애가 길지 않았기에 전시할 자료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다른 문학관에 비해 그의 문학관은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윤동주 시인의 느낌 그대로 군더더기 없이 순수하고, 조금은 단출한 느낌이었다.
전시관은 너무도 소중한 친필 원고들과 윤동주 시인이 즐겨 읽었고, 소장하고 있었다는 책 표지를 판으로 새겨놓은 전시물이 있는 제1전시실과 영상을 시청하러 가는 통로로 그의 詩 <자화상>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하늘을 그대로 볼 수 있게 만든 제2전시실(열린 우물)과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그의 詩와 함께 짤막하게 엮어놓은 영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든제3전시실(닫힌 우물)로 구성돼 있었다.
그리고 전시 관람과 시청이 끝나고 윤동주 시인의 시를 직접 필사해볼 수 있는 야외 공간이 또한 작게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 들러서 나와 남편도 윤동주 시인의 詩를 필사하고 기념으로 그곳에 우리의발자국을 남겨두고 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詩는 <소년>인데 남편이 필사를 했고, 나는 그의 가장 대표작인 <서시>를 필사했다.
의미 있는 날 의미 있는 곳에 다녀와서 앞으로도 좋았던 추억이 하나 더 추가될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알고들 계시고, 진즉 다녀오셨겠지만 혹여 아직 다녀오지 않으셨다면 하루쯤 잠시 시간을 내서 시인에게 방문해보심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