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마지막으로 저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무모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제가 그동안 해온 일련의 선택들에서 이미 느끼셨겠지만 말입니다."
그녀의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그 해 겨울, 유럽의 그 어느 그림 같은 도시로 떠났습니다. 벌써 햇수로는 2년이 되어가는 그때의 이야기, 거의 지워져 가는, 하지만 아직도 추상적으로나마 남아있고 (남겨두었다고 해야 솔직한 표현이겠지요), 앞으로도 그렇게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며 (아니, 남겨둘 것이며), 때로는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질 이야기 - 지난 2014년 초여름에 시작되어 가을을 지나 계절이 끝난 겨울에 끝난 그 이야기를 다시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독일 작가인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를 기억하시는 분들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소설 속 등장인물인 니나는 '만남' 이란 것에 대해 그녀의 친언니에게 이런 말을 건넵니다, "아, 난 그렇게 많은 것을 좋아해. 뭐든지 다. 그리고 이 지독하고 저주스러운 인생마저도." 이렇게 말을 한 후 그녀는 또 그녀만의 얽히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기 위해 떠나갑니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니나와는 달리 내성적이며 잔잔하게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던 의사 슈타인은, 니나를 진심으로 사랑한지만 그녀는 완벽하게 소유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고, "아, 이 안개 낀 아침, 나는 영원히 니나 곁을 떠날 결심을 했으나, 그러나 친절한 무관심보다는 차라리 증오가 더 달가울 것이다"라고 하며 나름대로의 이별을 준비합니다. 제 '장미' 도, 니나가 그랬듯이 이곳의 삶을 후회 없이 버리고,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이번 해 겨울이었지요.
유럽으로 떠나기 전까지 그녀는 지방 방송국의 기상캐스터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2014년 여름, M 방송사에 업무 모임이 있어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보도국 담당자인 신 PD와의 모임이었으며, 모임 후 lobby에서 인사를 하던 중,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신 PD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습니다. 제가 모임을 같이 한 신 PD 와 잘 아는 사람들로, M 방송사의 지방 방속국 보도국 소속 직원들이었습니다. 서울 본사에 업무가 있어 하루 일정으로 방문했다는 그들 - 때마침 시간이 점심 때라 같이 점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방 본부 보도국 소속 직원들로, PD 한 명과 사무직 남자 직원 한 명,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여성으로, 첫 눈에 보기에도 키가 매우 크고, 특별한 외모를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점심이 끝난 후 건네받은 명함을 통해 알게 된 그녀의 이름은 "수정"이었습니다. 수정이와의 이야기는 7월의 푸르른 어느 오후에 이렇게, 그다지 특별하지 않게, 그저 어느 하루의 일과 중 그나마 기억에 남을 정도의 인상을 남기며 시작되었습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