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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Sep 28. 2024

15. 늦봄에 흰꽃들이 많이 피는 이유

<양재천 산책>


5월의 양재천은 흰꽃들의 축제장이다. 나의 사랑하는 귀룽나무를 위시하여 조팝나무, 백당나무, 이팝나무, 층층나무, 산딸나무, 병아리꽃나무, 가막살나무, 꽃사과나무, 아카시나무, 찔레꽃, 쥐똥나무, 마가목, 쪽동백나무, 클로버 등 읊기에도 숨이 찰 정도로 많은 꽃들이 핀다. 

    

나는 늘 4~5월경에 흰꽃들이 많이 피는 이유가 궁금하였다.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였고, 책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하였으나 견문이 짧은 탓인지 아직 그 답을 속시원히 찾지 못하였다. 그냥 나 나름대로 추측해 볼 뿐이다. 그것은 수분을 시켜줄 곤충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식물들은 대부분 봄에 꽃을 피운다. 그 이유는 수분을 담당하는 곤충들이 봄에 활발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더워지면 곤충들의 활동도 둔화되므로 식물의 수분에 불리하다. 또 다른 이유 하나를 들자면, 식물들은 강한 경쟁자를 피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식물은 광합성을 하여 영양성분들을 만들어내므로 햇볕이 강한 여름철이 광합성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름에 피는 꽃이야말로 식물계의 강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식물들이 강자는 아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식물들은 여름 꽃과의 경쟁을 피하려고 봄에 서둘러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봄의 막바지, 5월에 흰꽃을 피우는 식물들이야말로 머리를 짜내어 자기 나름의 생존전략을 마련한 나무들이 아닐까 하고 수긍하게 된다. 


봄의 대표적 곤충은 벌과 등에 그리고 나비이다. 

벌은 머리가 좋아 복잡한 꽃 모양에서도 꿀 채취가 가능하고, 한번 찾았던 꽃을 다시 찾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꽃의 수분에 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므로 꽃들은 벌에게 꿀의 위치를 가르쳐 주는 꿀 안내선(honey guide line)을 가지고 있다. 

벌도 몇 종류가 있는데 벌 종류에 따라 좋아하는 색이 다르다고 한다. 곤충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벌 중에서도 뒤영벌은 보라색 꽃을 선호하고 꿀벌은 노란색을 선호한다고 한다. 꽃가루 수정을 위해 꽃은 당연히 곤충이 좋아하는 색으로 진화한다. 그래서 산하에는 보라색 꽃도 피고 노란색 꽃도 피는 것이다. 

벌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벌보다 몸집이 작은 등에는 특히 노란색 꽃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데 등에는 머리가 나빠 민들레, 유체 같은 간단한 모양의 꽃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나비는 벌 다음가는 중요 수분 매개체이다. 나비는 꽃이 크고 색깔이 분홍, 남색 등 화려하고, 자기가 가 앉을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으며 향이 짙은 꽃을 선택한다고 한다. 화분은 먹지 않으므로 나비를 이용하는 꽃들은 화분보다는 꿀을 더 많이 생산하고 나비를 위한 꿀 안내선은 가지지 않는단다.


한편 벌은 붉은색에 색맹이므로 벌을 유혹하기 위하여 꽃들이 굳이 붉은색으로 치장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한 법이다. 그 대신 향기와 꿀로 벌을 유인하겠다고 결심한 것이 흰꽃들이다. 이들은 대개 강한 향기와 꿀을 가지고 있어 가까이 다가가면 진한 향기와 함께 달콤한 꿀 냄새를 피우고 있다. 아카시 꽃과 찔레꽃, 쥐똥나무 꽃 등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이 꽃들은 벌, 나비를 유혹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특히 아키시 꽃이 만발한 양재천을 걸을 때면 아카시 향기에 취해 아련한 추억의 시간을 더듬게 된다. 대학시절 5월의 캠퍼스에 아카시 꽃이 만발하였다. 학교축제를 준비하며 새벽에 교정을 거닐 때 느껴지던 강한 향기가 마음에서 되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화려한 벚꽃도 좋지만 흰꽃들이 품어내는 향기에 더 취한다. 


5월에 무더기로 피는 흰꽃들은 실속파라고 할 수 있겠다. 화장을 싹 지운 여인처럼, 그 대신 고혹적인 향기를 품고 몸에 꿀을 넘치게 담아 벌을 유혹하는 실용적 전략을 쓰는 현명한 식물인 셈이다.


그런데 벌이 자꾸 줄어든다니 걱정이다. 벌이 줄어들면 꽃들은 수분을 위하여 또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 지 궁금하다. 곤충들이나 인간들에게 지구 환경은  점점 살기 가혹해지는 것은 아닌가하고 걱정이된다. 


조팝나무      백당나무      이팝나무(좌로부터)
층층나무   병아리꽃나무   산딸나무꽃(좌로부터)


가막살나무   아카시나무    찔레꽃(좌로부터)


쥐똥나무   쪽동백나무   마가목(좌로부터)


벌들이 자꾸 사라지고 있다고 하여 걱정하시는 또 한 분이 계셨다. 엘지전자 앨라바마 공장을 이끄신 서평원 회장님이셨다. 서 회장님은 남편과 내가 시골에 작은 집을 지은 것을 아시고는 우리 집으로 꽃씨 한 가마니를 보내주셨다. 금계국이었다. 꽃씨를 한 가마라고 표현했는데, 좀 과장해서 말하면 경비행기로 뿌려도 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꽃씨와 더불어 회장님의 메모가 붙어있었다. 

“문교수! 생태계에 꼭 필요한 벌이 자꾸 죽어가고 있으니 꽃을 많이 심어 벌이 생존할 수 있게 해 주시오”라는 당부의 말씀이었다. 

나는 일단 우리 마당에 꽃씨 몇 개를 뿌렸다. 금계국은 놀라운 번식력을 자랑하였다. 온통 마당을 다 차지할 기세로 번져나가기에 일부는 솎아 내야 했지만, 회장님의 금계국은 우리 마당에서 노란 꽃을 피웠다. 하지만 마당에 심기에는 금계국의 번식력은 파괴적이었다. 이걸 어디다 뿌리나 고심하다 아직도 회장님의 꽃씨는 시골집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그 회장님께서 한국에 돌아온 이듬해 코로나에 걸려 돌아가셨다. 폐가 굳어지는 폐섬유증이 진행된 것이 결정적인 사인이라고 들었다. 나는 서평원 회장님의 명복을 빌며 올해는 꼭 회장님의 씨앗을 시골 들판에 뿌려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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