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산책>
양재천변을 걷다가 대치동의 선경아파트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선경아파트 담장 밖으로 손을 내민 사랑스러운 나무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나뭇잎이 하트 모양으로 동글동글하고 줄기가 길게 세로 문양으로 늘씬하게 발달한 모습이 영락없는 계수나무이다. 희한하게도 이 아파트의 담장을 따라 계수나무가 쭉 심겨 있다. 나는 이게 웬 횡재인가 하며 일부러 남의 집 담장 안을 들여다보며 눈호사를 즐긴다.
계수나무는 봄에 붉은 꽃이 피고 새잎이 돋는 것도 아름답고, 가을에 노랗게 단풍이 들 때도 아름답다. 그래서 봄, 가을이면 선경아파트 담장 길은 나의 제일의 산책길이 된다.
계수나무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달나라에 있다는 계수나무와 옥토끼의 전설이 떠오르고 어린 시절에 즐겨 불렀던 ‘반달’이라는 동요가 흥얼거려진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달나라에 심어진 계수나무가 얼마나 크길래 지구에서도 나무 그림자가 보이고 그 아래에서 토끼가 절구질하고 있을까? 어린 시절 달을 보며 늘 궁금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부터 계수나무의 모습이 알고 싶어 안달하였으나 계수나무를 실제 만나기까지에는 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실제 계수나무를 보았을 때 나는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아! 이게 그 계수나무로구나!” 달에 있을 정도로 신비하고 멋진 나무가 바로 계수나무였다.
어릴 때 ‘반달’이라는 동요를 부르며 자란 나 같은 세대의 사람이라도 실제 계수나무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선경아파트 담장 옆 길로의 산책을 권한다.
그런데 양재천을 걷다가 계수나무를 다시 만났다. 최근에 영동 3교 타워팰리스 쪽 공터를 재정비하면서 강남구청에서 새로 숲을 조성하였는데 거기에 계수나무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성아파트에서~영동 2교 쪽으로 계속 내려가며 살펴본즉 계수나무들이 제법 여러 그루 심겨 있었고 어떤 나무에는 이름표까지 붙어있었다.
아직은 옮겨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아 생육상태가 좋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이 나무들이 마음껏 자라 사랑스러운 하트모양의 잎으로 녹음을 만들어주고 가을에 노란 단풍으로 양재천 가을 단풍축제에 다양성을 부여해 줄 것이다. 그날을 상상하며 계수나무 아래에 조성된 황톳길을 걷는다.
그래서인지 계수나무가 즐비하다는 계림(桂林)에 가보고 싶었다. 계림은 ‘계수나무가 숲을 이룰 정도로 많은 곳’, ‘계수나무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란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로수로 키 큰 계수나무들이 즐비하게 심겨 있다고 하고 거리에는 온통 계수나무 향기가 넘쳐난다고 하니 나는 계림에 가서 계수나무 보기를 소원하였다. 계수나무는 중국의 유명 관광지인 장가계의 가로수로도 식재되어 있다는 기사를 보니 중국인들이 이 나무를 매우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래 달나라에 있는 옥토끼 설화나 동요 반달 속 계수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되었으므로 중국의 계수나무는 얼마나 멋질까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내가 계림을 보기를 소원한 또 다른 이유는 리강에서 가마우지를 이용하여 낚시를 한다는 어부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인류는 물고기를 잡기 위한 여러 방법을 개발했지만, 가마우지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것만큼 기발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가마우지는 물속 깊이 잠수하여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데, 그 가마우지의 목에 줄을 매어 사냥한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물고기를 얻는 다소 엽기적인 낚시 방법이다. 하지만 물 맑은 리강에 뗏목을 띄우고 가마우지와 함께 유유자적하며 낚시를 하는 어부의 모습은 가장 낭만적인 어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기도 하다.
어찌어찌하여 계림에 도착하자 기묘한 형태의 봉우리들이 끝없이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풍광에 넋을 잃고 말았다. 선계仙界에 들어온 느낌이 이런 것일까! 우리l는 리강 가에 펼쳐지는 아스라한 풍광에 반해 뱃놀이의 종류를 바꿔가며 리강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대나무 뗏목을 타고 관암 동굴 앞을 지나가고, 양삭에서 유람선을 타고 인민폐 20위안의 배경이 된 흥평(興平)을 돌아보았으며 밤에는 유람선을 타고 밤 리강의 낭만을 즐겼다. 내가 계림을 찾은 이유를 잊을 정도로 계림의 자연은 이름다웠다.
그런데 계림에서 보고자 했던 두 가지는 실망스러운 결과로 나타났다. 우선 가마우지 낚시를 하는 노 어부의 낭만적인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젠 그것도 관광상품화 되어 밤에 리강 유람선을 타고 강 유람을 할 때 관광객들을 위한 인위적인 가마우지 낚시 쇼가 보일 뿐이었다.
더구나 계수나무는 내가 알던 그 나무가 아니었다. 잎이 사랑스러운 하트모양이고, 줄기에 세로의 긴 문양이 있는 늘씬한 그 나무는 어디에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계수나무의 꽃을 이용한 술이나 각종 과자나 차, 시럽 등이었다. 계수나무의 꽃은 향기가 너무 좋아 계림에서는 이것을 이용한 과자나 계화차를 즐긴다고 했다. 나는 TV에서 계림의 특산물로 소개하던 강정 모양의 계수나무 꽃과자를 샀다. 그런데 색깔이 붉은색이 아니고 노란색이었다. 그때가 8월이어서 아직 계수나무 꽃이 피지 않았다고 했다. 봄철에 붉은 꽃이 피어야 하거늘, 가을에 피고, 그것도 노란 꽃이 무더기로 피며 엄청난 향기를 가지고 있다니 나의 예상과 자꾸 어긋났다. 공원에는 수백 년 묵었다는 계수나무가 서 있었는데 나무가 우람하고 잎도 짙푸르고 잎모양도 길쭉하게 생겨 도저히 내가 알던 계수나무가 아니었다. 머리를 싸맸지만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계림 여행은 나를 완전히 미혹 속에 빠뜨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 의문이 풀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계수나무와 중국에서 말하는 계수나무가 서로 다른 나무였던 것이다. 우리가 아는 계수나무는 1920년대의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그 나무였다. 일본에서는 이 나무를 한자로 ‘桂(계)’로 쓰고 ‘카츠라’로 발음하였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계수(桂樹) 나무'로 불리게 되었단다.
그런데 중국에서 칭하는 계수나무는 카츠라 나무가 아니라 목서를 일컬었다. 우리나라에 금목서, 은목서로 알려져 있는 바로 그 나무였다. 금목서나 은목서는 향기가 좋기로 유명하고 금목서에는 노란 꽃이, 은목서에는 흰 꽃이 총총히 열린다. 이 나무는 추운 지방에서는 자라지 못해 우리나라의 경우 주로 남부지방에서 꽃을 피우는데 꽃향기가 강렬하여 만리향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나무이다.
아 그랬었구나! 그러니까 달나라에 있는 계수나무는 내가 생각한 그 계수나무가 아니었던 것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