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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Sep 30. 2024

37. 무궁화 꽃 예쁘네요.

<양재천 산책>


뜨거운 여름이다. 이 여름에 무궁화가 한창 꽃을 피운다. 양재천에도 무궁화가 여기저기서 얼굴을 드러낸다. 특히 밀미리 다리 부근에는 무궁화동산이 조성되어 있어 갖가지 종류의 무궁화 꽃이 핀다.

 

양재천의 무궁화동산


무궁화는 어디에 숨어있다 이렇게 갑자기 여기저기서 나타나는지 의아스러울 지경이다.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를 식물이 갑자기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보면 신기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죽은 듯이 숨어있던 식물들이 갑자기 “나 여기 있소”하며 존재를 드러내면 “아, 바야흐로 저 식물이 꽃을 피우는구나”하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에게도 전성기가 있다. 그것을 우리는 ‘인생에 꽃을 피운다’라고 말한다. 식물에게서 깨달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본 무궁화 꽃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었다. 꽃 색깔도 청색이 많았고 예쁘지도 않은 꽃이 지치지도 않고 피었다. 무엇보다도 진딧물이 들끓었다. 그래서 가까이하기 싫은 꽃이 무궁화였다. 솔직히 나라꽃을 장미같이 화려하고 예쁜 것으로 정하지 않고 왜 저런 꽃으로 정했을까 하고 불만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무궁화를 보면 진딧물은 간 곳 없고 꽃잎이 깨끗하고 청아하게 피어있는 모습이 예쁘기만 하다. 이제는 품종을 개량하여 진딧물이 들끓던 무궁화 종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무궁화 꽃


 우리나라 무궁화의 주요 품종은 꽃잎의 색깔에 따라 배달계, 단심계, 아사달계의 3종류로 구분한다. 꽃의 중심에 단심(붉은색)이 없는 순백색의 꽃을 배달계라고 하고 단심이 있는 것을 단심계, 단심이 있으면서 꽃잎에 무늬가 있는 종류를 아사달계라고 한다. 단심계는 꽃잎의 색깔에 따라 백단심계, 적단심계, 청단심계, 자단심계 등으로 구분한다. 기타 홑꽃도 있고 겹꽃도 있다. 양재천의 무궁화동산에는 여러 종류의 무궁화가 있어 지나갈 때마다 종류를 구분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배달계                                            아사달계                                            
좌로부터 백단심계  청담심계  적단심계


무궁화는 우리나라 자생화는 아니고 원산지는 인도, 중국남부로 알려져 있다. 이 꽃이 언제부터 우리나라 전역을 화려하게 장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옛 기록을 보면 우리 민족은 무궁화를 고조선 이전부터 하늘나라의 꽃으로 귀하게 여겼고, 신라는 스스로를 ‘무궁화 나라’(근화향:槿花鄕)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무궁화는 오래전에 이 땅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조상들은 무궁화를 근화槿花(부지런한 꽃)라고 불렀는데 이는 무궁화가 계속 피고 지고 피고 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붙여준 것 같다. 이름 그대로 무궁화는 7월 초부터 10월 중순까지 약 100일 동안 매일 피고 지고 또 새로운 꽃을 피워내고 지고를 반복한다. 이는 근면성실한 민족 정신과도 닮아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왔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꽃으로 성문화된 적은 없다. 다만 국민들 가까이에서 피고 지며 함께 살다가 나라를 상징하는 꽃이 필요해졌을 때 자연스럽게 나라꽃으로 인정된 것으로 보인다.

나라의 정체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진 때가 조선말 개화기였다. 이때 이양선(異樣船)들이 출몰하고 외세가 우리나라를 넘보면서 크게 놀란 정부는 1896년 독립문 주춧돌을 놓는 의식을 행하게 되었다. 이때 애국가를 지었고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노랫말이 포함되게 되었다. 이후 무궁화에 나라꽃으로서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제가 무궁화를 폄하하고 일본 꽃 벚꽃을 전 강토에 심으면서 선각자, 독립운동가들이 무궁화를 애국계몽운동의 구심점으로 삼자 무궁화는 독립, 광복운동의 표상으로 승화되었다. 이는 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무궁화의 특징이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 민족 정신과 비슷하다고 여겨 무궁화를 민족의 상징, 항일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다.


무궁화를 애국운동의 중심에 둔 대표적인 인물에 한서 남궁억선생이 있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 출신인 선생은 일제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애국교육운동에 헌신하였는데 특히 무궁화 보급 운동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가 배화학당 교사로 재직할 때 꽃핀 무궁화 열세 송이로 조선 13도를 표시한 한반도 지도를 도안하여 여학생들에게 수놓게 함으로써 민족애를 심게 하였다. 이 무궁화 지도 자수운동은 경향 각지의 여학교로 번져나갔고 가정 주부들도 그것을 수놓아서 내실을 장식함으로써 나라 잃은 울분을 달래었다고 한다.


그 후 선향인 모곡리로 귀향(1918년)한 선생은 학교를 세워 청소년들을 교육함과 동시에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이곳에서 그는 학생들과 함께 무궁화 묘목을 수십만 그루 길러서 각 지방의 학교와 교회, 사회단체에 팔기도 하고 기증도 하였다.

1933년 남궁억선생은 무궁화보급운동으로 인해 일제에 체포되었고 선생이 사랑하던 무궁화 묘목 8만 주는 불살라졌다. 남궁선생은 1935년 복역 중 병으로 석방되었으나 심한 고문과 옥고(獄苦) 후유증으로 1939년 4월 5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 남궁억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 조촐하게 세워져 있다. 8월 말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 기념관 앞에 펼쳐진 무궁화동산에는 한창 무궁화가 피어있었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 남궁억 기념관 뜰의 독특한 무궁화


광복이 되자 무궁화는 자연스럽게 나라꽃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1963년 12월 10일 정부에서는 ‘나라문장규정’을 제정하고, 우리나라의 문장을 결정하였는데, 태극문양을 무궁화 꽃잎 5장이 감싸고 ‘대한민국’ 글자가 새겨진 리본으로 그 테두리를 둘러싼 모양으로 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휘장이나 법원, 국회의 상징(배지)에도 무궁화가 사용되고 있고 경찰관, 교도관의 계급장에도 무궁화가 그려져 있다.


 최근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끈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란 놀이가 등장하여 세계인들이 이 게임을 따라 하는 무궁화 꽃 신드롬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제 그 게임을 따라 하는 세계인들이 무궁화 꽃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민족의 꽃 무궁화를 높은 문화로 승격시키는 일이 남은 우리에게 주어진 나라사랑의 또 다른 역할이라고 본다.


성인순 그림: 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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