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산책>
8월이 막바지이다. 뜨겁게 들볶던 여름 무더위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의 냄새를 풍기며 밀려가고 있다. 매미도 제 계절이 끝나가는 것을 아는지 울음소리의 기세가 훨씬 약해졌다. 양재천 벤치에 앉아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풀숲에서 초롱초롱 풀벌레 울음소리도 들린다. 계절이 바뀌고 있는 징표가 이미 감지되고 있다.
이즈음 눈에 띄는 식물이 하얀 꽃을 무더기로 피우는 사위질빵이다. 이 식물은 무자비하게 다른 나무를 휘감고 올라가 떡하니 태양 쪽으로 가장 넓은 면적을 확보한다. 그리고 흰 꽃을 엄청 피운다. 가까이에서 보면 흰 꽃봉오리들이 줄줄이 맺혀 있어 꽃을 피우고 말리라는 기세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꽃을 피우기 전에는 이 식물이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흰꽃을 피우며 제 존재를 과시하자 자연히 눈길을 끌게 되었다. 역시 식물은 꽃을 피워야 비로소 완성이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잎 네 장이 십자화과 식물처럼 서로 떨어져 있고 많은 수의 수술과 암술로 구성되어 있는데 암술은 꽃 중앙에 모여있고 수술들은 암술에 닿지 않으려는 듯 몸을 힘껏 뒤로 젖히고 있다. 덩굴식물인 사위질빵은 7~9월에 흰색의 꽃을 무더기로 피우는데, 햇볕에 대한 욕심이 많은 이 나무는 돌이나 나무를 기어오르며 맹렬하게 자란다.
사위질빵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 데에는 재미난 유래가 있다.
옛날에 아주 사위사랑이 대단한 장모님이 계셨다. 사위가 처가에 와서 일 거들어주는 게 안쓰러웠던 이 장모는 다른 일꾼들에게는 튼튼한 끈으로 어깨에 메는 질빵을 만들어 짐을 나르게 하고 사위에게는 아주 잘 끊어지는 이 풀의 덩굴로 질빵을 만들어 줘 짐을 조금만 짊어지게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다른 일꾼들이 이 꽃의 이름을 사위질빵이라고 놀렸다고 한다. 질빵이란 등에 짐을 지기 위한 멜빵 같은 것을 말한다.
양재천에는 사위질빵뿐만 아니라 넝쿨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란다.
덩굴식물들은 무자비하게 다른 식물들을 휘감고 올라가 쉽게 햇볕을 차지한다. 대표적인 식물이 칡이다. 칡은 무서운 기세로 줄기를 뻗으며 나무든 풀이든 타고 올라가 넓은 잎을 펼치면서 햇볕을 독차지한다. 이런 무자비한 활동의 결과 땅속에 갈근이라는 칡뿌리를 만들어 영양분을 차곡차곡 비축해 놓는다. 칡뿌리는 예전에는 중요한 식량이 되었지만 지금은 숙취해소제 정도에 사용되고 있고 직접 갈근을 식품의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칡은 다른 식물을 뒤덮고 큰 잎을 펼쳐 햇볕을 독차지하므로 칡덩굴 아래의 식물들은 광합성을 못해 죽기까지 한다. 다른 식물이 죽든말든 개의치 않고 저만 살려고 하는 칡의 경쟁력은 무서운 측면이 있다. 식물계의 난폭한 욕심쟁이가 칡이다. 양재천에도 칡덩굴이 자라고 있어 풀이 무성한 계절이면 예초기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칡은 엄청난 생명력으로 인하여 식물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성가시게 하는 욕심쟁이가 되었다.
한편, 대치유수지 부근의 둑길 옆으로 나팔꽃들이 큰 무리를 형성하고 있다. 나팔꽃 풀도 덩굴을 뻗어 생존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으므로 줄기를 만들어 세우는 노력 대신 빨리 자라고 꽃도 크게 피우는 전략을 취한다. 몸에 비해 커다란 꽃을 피우는 나팔꽃이 청아하고 아름답게도 보이지만 남을 타고 올라 이득을 차지하는 매우 영리하고 약은 식물이 나팔꽃이다. 나팔꽃이 가진 전략을 인정하면서도 왠지 덩굴식물은 정당하게 노력하지 않고 남의 노고를 빼앗는 도둑같이 여겨져 예쁘다가도 얄미운 생각이 든다.
사위질빵은 소염작용이 있고 칡뿌리는 먹을 수 있고, 나팔꽃은 아름다운 꽃을 피워 그런대로 식물로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귀찮은 존재가 바로 한삼덩굴이다. 이 풀은 아무 데서나 엄청난 기세로 자라고, 줄기와 잎자루에 가시까지 달려 있어 이를 제거하려면 까칠한 가시를 견뎌야 한다. 시골생활에서 제일 귀찮은 풀이 한삼덩굴이다. 양재천에도 이 한삼덩굴이 나무를 열심히 감고 있다.
식물계에도 이렇게 깡패식물이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생태계를 만드니 지나가는 나그네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