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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모초를 뽑아내며

꽃밭을 재건할 때(3)

by 보현


혹한이 지나가고 훈풍이 실려온다는 소식을 기다려 시골집으로 향했다. 시골집에 있는 나의 정원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가꾸어보려고 이제나 저제나 봄소식을 기다려 왔다. 먼저 언 땅에도 견딜 수 있는 튤립과 알리움 뿌리들을 주문했다. 봄마다 튤립과 수선화 몇 뿌리들을 심었지만 이번에는 큰 맘먹고 튤립 구근 100 개와 알리움 50 뿌리를 주문해 두었다. 튤립 100 포기가 꽃을 피우고 보라색의 둥근 알리움 꽃들이 덩실덩실 피어나면 나의 정원이 얼마나 그럴듯해질까 하여 상상만으로도 기뻤다.


시골집에 도착하자 매눈을 하고 정원부터 스크린 하였다. 날이 풀려서인지 땅은 녹아 폭삭폭삭하였고 홍매 가지에 붉은 꽃망울이 맺혀있는 것이 보였다. 모란 가지에도 꽃 눈이 맺혀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함박은 소식이 없는 것 같아 일부러 뿌리 근처 흙을 들춰 붉은 새 순이 고개를 내밀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야 마음을 놓았다. 지난가을에 뿌려둔 캘리포니아 포피의 씨앗에서도 새 순이 몇 개 올라와 있었다. 땅은 아직 잠을 자는 듯 고요하게 보였지만 이 속에 온갖 씨앗들이 봄을 기다리며 용약하고 있을 터이다. 기다리면 될 텐데 주인인 나는 그걸 못 기다려 조바심을 낸다. 이제 겨우 2월 중순에 들었을 뿐인데 말이다.


홍매가 곧 꽃을 피울 듯 붉은 꽃망울을 달았다.


튤립을 심었다.

엊그제 눈이 많이 왔다고 하더니 응달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남아있었다. 그런데도 땅은 따뜻한 햇살 아래 녹아 습기를 머금은 흙이 손 안에서 부드럽게 부서졌다. 나는 호미로 땅을 파고 잔디와의 경계 부분에 100 포기의 튤립뿌리를 심었다. 이미 싹이 자란 뿌리들도 있어 싹이 덮이도록 흙이불을 덮어주고 발로 꼭꼭 밟아 주었다. 새 튤립을 심기 위해 땅을 파자 지난가을에 심어둔 수선화와 튤립 뿌리가 언듯 언듯 드러났다. 이 혹한에도 뿌리들은 얼어 죽지도 않고 새 눈을 내고 있어 내 마음에 기쁨을 더했다.

화단의 안쪽에는 알리움을 몇 군데 나누어 심었다. 나는 알리움의 보라색 꽃이 둥근 공처럼 피어나는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초봄에 일찍 꽃을 피우는 튤립 같은 식물들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예쁜 꽃을 피운다고 한다. 춥다고 따뜻한 곳에 알뿌리를 보관하면 예쁜 꽃을 피울 수 없다니 식물도 고난을 이겨내야 멋진 성장을 하는가 보다.


마당에 100송이의 튤립을 심었다.


마당을 살펴보니 지난번까지 그렇게나 나를 괴롭히던 쇠뜨기풀은 보이지 않는다. 쇠뜨기풀이 나의 열심에 두 손을 든 것인가 잠시 생각해 보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아직 쇠뜨기가 올라올 때가 아닌 것이다.


작은 마당에 자라 나와 전투를 벌이는 풀의 종류는 때에 따라 늘 바뀐다.

이번에는 육모초가 빨갛게 올라오고 있었다. 심지도 않은 육모초가 늘 한두 개씩 보이더니 박멸을 소홀히 한 사이에 씨앗을 대거 쏫아낸 모양이었다. 아직 혹한의 뒤끝이라 많이 자라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익모초들이 여기저기 제세상을 만난 듯 한창 신나게 올라오고 있었다. 그늘에서 자라는 놈은 녹색을 띠고 있지만, 햇살 속에 노출된 놈들은 붉은색을 띠어 황토흙과 구분이 안되게 보인다. 육모초는 본디 초록의 잎을 낼 터인데, 붉은색으로 위장함으로써 당분간 어린 목숨을 부지하려는 계획임이 확실해 보인다. 나는 돋보기를 끼고 앉아 육모초 박멸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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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모초의 어린잎을 들여다보니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갈래를 내어 펼쳐진 잎이 어린아이의 손같기도 하고 별사탕같기도 하다.

바닥석 사이에 육모초가 더욱 융성하다. 안전한 대피처로 생각하며 뿌리를 내렸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가차 없이 바닥석을 밀어내며 익모초를 뽑아내었다.


바닥석 틈 사이에 가득 자라고 있는 육모초


뽑힌 육모초


육모초는 꿀풀과의 이 년생 풀이다. 야생으로 우리나라의 어디서건 자라고 마디마다 핀 보라색의 꽃이 여물면서 씨가 사방으로 퍼지게 된다. 우리 마당을 점령한 이 육모초도 바깥의 어디에선가 씨가 날아와 우리 마당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육모초의 성숙한 모습


육모초는 다른 말로 익모초(益母草)라고도 불리는 풀이다. 말 그대로 '어머니에게 유익한 풀'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도 motherwort, 즉 '어머니 풀'로 불린다. 이런 것을 보면 동서양이 이 풀의 효능에 관한 한은 통일된 의견을 보이는 모양이다. 육모초의 효능에는 언제나 여성에게 좋은 약초라는 설명이 붙는다. 동의보감에도 육모초가 ‘임신이 잘되고 생리를 순조롭게 하는데 효력이 있다’라고 쓰여있다. 월경이 불규칙할 때, 생리통, 산후 출혈 등 다양한 부인과 질환에 좋다.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월경을 고르게 하며, 여성의 모든 어혈증을 치료한다고 한다. 원기를 회복하고 식욕을 돋우는데, 입맛이 없어 식사를 못 할 때 익모초를 절구에 찧거나 달여 먹었다고 한다.


육모초를 뽑으며 돌아가신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는 겨울이 오면 육모초를 삶아 그 물을 당신의 세 딸에게 먹였다. 육모초는 너무나 써서 그냥 마실 수는 없었다. 엄마는 보리 질금을 넣어 엿을 고은 후 거기에 육모초 즙을 넣어 우리에게 주셨다. 지금도 생각이 난다. 엄마가 가마솥에 시커먼 육모초 엿을 고아 놓으면 우리는 수시로 드나들며 그 엿을 퍼먹었다. 단 맛의 유혹이 쓴 맛의 괴로움을 이기게 해 주었던 것 같았다.

육모초는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므로 여성에게 좋다는 것이 엄마의 주장이셨다. 엄마는 오빠를 낳고는 딸 셋을 연이어 낳아 우리 할머니의 구박을 무던히도 받았다고 했다. 세 딸이 졸졸이 크면서 생리통을 앓았고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았다. 말하자면 딸들을 위한 엄마의 처방이 익모초였던 셈이다. 겨울철마다 육모초 즙을 먹으며 지냈던 탓인지 우리 세 자매는 튼튼한 몸을 지켜 아이도 쑥쑥 잘 나아 길렀다. 큰 언니가 세 명, 둘째 언니와 내가 각각 두 명씩을 낳아 국가의 동량이 되도록 길렀으니 이만하면 엄마의 염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 귀중한 육모초를 잡초라고 나의 정원에서 몰아내면서 나는 나의 딸 생각을 했다.

딸은 소위 딩커족이다. 아이 낳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다. 즐긴다고 표현하면 맞지 않는지도 모른다. 눈앞의 삶도 힘든데 아이까지 낳을 수는 없다는 것이 딸의 지론이고 보면 자신의 삶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딸은 아이와 함께 동반하여 곤경에 처해질 삶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딸은 외양으로 보면 그럴듯하다. 뉴욕의 맨해튼에서 그 나름의 전문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말이 그럴듯하다고 표현했지만, 세계인들과 경쟁해야 하는 그 삶이 얼마나 치열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다.


멋지게 차려입고 하이힐을 신고 출근하는 딸의 손은 언제나 차가웠다. 어디 손만 찰까! 딸은 전신이 차다. 한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몸이 차가우면 임신이 안된다고 하였다. 나는 딸이 처음 결혼할 때는 임신을 잘 시킨다는 유명 한의원에서 비싼 탕약을 지어 딸에게 먹이기도 했다. 쑥뜸을 뜨면 몸이 따뜻해진다고 하여 딸이 팔에 흉터가 생긴다고 싫다고 하는데도 쑥뜸을 뜨기도 하였다. 그런데 익모초를 먹일 생각은 못했다.

딸이 이제 마흔 문턱에 들어섰다. 딸은 딩크족을 선언하며 아이 낳기를 거부하고 있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른다. 딸과 사위가 아이를 낳아 아이 키우는 행복을 누려봤으면 싶다가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지난한 과정을 생각하면 차라리 홀가분하게 사는 삶이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시골 마당에 지천으로 자라는 익모초 풀을 잡초로 여겨 켜낼 것이 아니라 이들을 잘 길러 딸에게 먹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다음 순간 습관처럼 풀들을 뽑아낸다. 나의 꽃밭을 익모초로 채울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의 꽃밭에는 튤립과 수선화와 캘리포니아 포피와 백합, 그리고 모란과 함박꽃들이 고상하고 아름답게 피기를 바란다. 그래서 돋보기안경까지 끼고 앉아 막 싹이 나오기 시작하는 육모초들을 뿌리째 뽑고 있다. 우리 엄마는 가난한 삶 중에서도 딸들이 튼튼한 자궁을 갖고 아이를 쑥쑥 잘 나아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육모초 즙을 끓여주셨건만 나는 저절로 와서 자라고 있는 육모초 어린싹까지 몽땅 뽑아낸다.

어느 것이 나은지 육모초를 뽑으며 계속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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