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직무의 특성상 일주일 내내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는 동료들이 꽤 많았다. 그러다 오랜만에 엘리베이터 앞이나 복도에서 마주치면 단골처럼 튀어나오는 질문이 있었다.
‘요즘 잘 지내요?’
같은 회사에 다니는 게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하도 보기 어려운 얼굴들이니 안부를 묻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 된 셈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혹은 행정 담당 직원에서 서류를 제출하러 서둘러 반쯤 뛰어가던 복도에서 마주칠 때도 기계적인 안부 인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오랜만에 들을 때면 나는 상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웃는 낯으로 밝은 대답을 준비했다.
‘저야 뭐, 잘 지내죠.’
동료와 마주치기 전에는 시든 나물처럼 축 늘어져 있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밝은 목소리는 덤이었다. 아마 가족들이나 친한 친구들이 들었다면 그 가식적인 목소리는 당장 집어치우라고 말했을 정도로 나답지 않은 목소리 말이다. 게다가 가식적인 음성 뒤에 숨겨진 말투 역시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솔직하게 대답하면 누가 혼을 내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직장 동료에게는 늘 괜찮다거나 잘 지낸다는 말이 습관처럼 튀어나오곤 했다.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로 친하지도 않고, 내가 힘든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으니 일단 방어 기제를 펼치고 보는 것이다. 마치 안부를 묻는 문장이 끝나기가 무섭게 뇌를 거치지 않고 내 입술이 움직이는 것과도 같은 그 일련의 과정은, 프로그래밍이 아주 잘 된 알고리즘처럼 막힘이 없었다. 게다가 직장에서 쓰는 에너지가 적지 않은데, 고작 안부를 묻는 말 하나에 구구절절 대답을 늘어놓으며 대화를 질질 끌고 싶지 않은 탓도 있었다. 적당한 대답으로 선을 그으며 대화가 길어지는 걸 차단하는 셈이었다.
사실 내가 별생각 없이 내뱉던 대답의 속뜻을 나 자신보다도 먼저 알아차린 것은 직장 동료 A였다. 주영 씨는 늘 괜찮다고만 하네? 타박하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감추고 있던 것을 들킨 기분이었다. 의문이 생긴 건 그때부터였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염세적이진 않았던 내가 이런 생존 방식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날 이후로, 누군가 안부를 물을 때마다 나는 대답을 툭 내뱉기 전에 잠깐 멈추게 되었다. 웃으며 내뱉던 '잘 지낸다'는 말이 그날 이후로는 자꾸만 툭 걸렸다. 예전처럼 가볍게 혀끝에서 튕겨 나가지 못하고, 혼자 입안에 남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인식해 본 적 없었던 그 이질감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했다.
별일 없는 안부 인사였을 텐데, 이상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