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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씽 May 17. 2023

나의 감사한 선생님들

선생님 감사합니다.

 어릴 적 내게 있어 선생님은 참 큰 존재였다. 엄마 아빠가 아닌 나에게 가르침을 줄 또 다른 사람. 선생님은 그 자체로 믿고 존경할 사람이라 생각했다. 좋은 가르침을 줄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인지, 작은 말이라도 선생님의 말은 왠지 쿡 박혔다. 참 운이 좋게도 난 시시 때때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고 문득문득 떠올려 꺼내보는 선생님의 따뜻한 말들이 있다.






아이디어를 아낌없이 격려해 주신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

 

 선생님은 항상 단정하고 바지런한 옷차림이셨다. 단호한 눈짓으로 분위기를 잡으실 때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다정하고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해 주시는 분이었다. 엄중하면서도 차분한 그 말에 늘 귀 기울이곤 했는데, 그런 어투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어딘가 모르게 선생님 말에는 늘 신뢰가 갔다.

 어느 날 미래 발명품에 대해 글을 짓는 시간이었다. 어떤 글을 쓸까 하다가 집에서 사용하는 자판기를 떠올렸다. 장보기 귀찮을 때 집에서 자판기에 돈을 넣고 사고 싶은 물건의 버튼 누르면 자판기에서 나오는 그런 식의 글(딱 초등학교 3학년의 발상)을 끄적이고 있었다. 조용히 글을 쓰는 아이들 사이로 차분히 한걸음, 한 마디씩 조용히 속삭여 격려해 주시는 선생님. 어느새 내 옆에 바짝 다가와 내 글을 보시는데 괜히 긴장이 되어 침을 꼴깍 삼켰다. 뭐라고 하시려나 기다리는데, 전에 없던 살짝 높은 톤이 교실의 적막을 깼다.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역시! 우리 씽이의 상상력은 항상 기발하다니까?"


 공개적인 칭찬은 사람을 참 들뜨게 한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는 얼마나 신이 났을까 상상해 보자. 덧붙이자면 선생님은 분명 '항상'이라고 하셨다. 이게 포인트다. 이번 한 번이 아니고 항상이라니! 마음을 들썩이다 못해 씰룩 쌜룩 흔들어댔다. 그리고 그 아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난 상상력 대장이다!




내 재능을 알아봐 주시고 꿈의 방향을 제시해 주신 중학교1학년 특별활동 선생님.


 중학교 때 매주 수요일마다 선택한 취미활동을 한 시간씩 하는 그런 시간이 있었다. 사실, 하고 싶은 다른 활동이 있었는데 선착순에 밀려 못하고 인기가 없어 자리가 빈 한 활동에 억지로 떠밀려 들어갔다. '생활공예부'라는 곳. 뭘 하는 곳이지? 궁금했는데 선생님은 생활 속의 공예품들을 만드는 수업이라 하셨다. 천을 바느질해서 바구니, 액자, 인형 등 다양한 것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웬걸?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조각조각 천을 잇고 또 다양한 결과물들을 만들어 나가는데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이 시간엔 오로지 작품 만들기에 집중해서 그런지 선생님의 모습이 잘 생각이 안 난다. 그런데 딱 그날의 말씀 하나는 선명하다.


 그날도 역시나 신나게 집중하며 바느질 중이었다. 꽤나 조용한 학생이었던 나인데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선생님은 아셨던 모양이다. 한창 작품에 열중하는 내게

씽이야~넌 그리거나 만드는 것에 흥미도 있고 재능도 있어 보여~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있거든? 한번 알아보렴. 너에게 잘 맞을 것 같아


 난 늘 나의 미래가 궁금하고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난 커서 뭐가 될까? 난 뭘 잘하고 또 행복할 수 있을까? 먼 미래의 나를 수시로 탐구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 내게 선생님의 발언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직업은 (그 당시 내 지식 안에서는) '화가' 뿐이라 생각했다. 나의 미래를 그려볼 때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것은 좋긴 한데 이상하게도 중요한 무언가가 쏙 빠진 찝찝하고 불만족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디자이너라니? 그동안의 의문들이 풀리고 뭔가 그럴싸하게 완성되는 느낌이다! 선생님이 봐준 나의 흥미와 재능을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완성시켜 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 여름, 그 열기보다 더한 선생님의 그 뜨거운 이야기를 듣고 도서관에서 디자이너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그때  더 확신했던 것 같다. 그래, 디자이너가 되어보자. 오늘부터 내 꿈은 디자이너야!



입시미술과 동떨어진 그림이었지만

날카로운 평가가 아닌 마음으로 봐주신

고등학교 2학년 입시미술 선생님


 디자이너의 꿈을 품고 미대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본격적으로 학원을 다녀 입시 미술을 시작한 게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학원에 다니기 전엔 이 정도면 난 그림을 좀 그리지 않나? 생각했는데 입시 미술의 길을 들어서고 참 많이 좌절했다. 그간 기본기 없이 그리고 싶은데로 그리는 것과는 달리 미술 안에도 기본 원리나 기술이 있었는데 정말 난 아무것도 모르는 조무래기구나 싶었다.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아 두려웠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이 길로 들어선 게 잘한 일일까 많은 의구심이 들었다. 그림을 그릴 때 늘 즐거웠는데, 그림이 날 불행하게 만들까 두렵기도 했다.


 그렇게 어두운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을 때 만난 선생님. 가벼운 티에 청바지차림, 짧은 스포츠머리에 사투리를 쓰시던 선생님은 땅끝마을 출신이셨는데 잔잔한 추억을 재미있게 얘기해 주시는 분이었다. 그림을 봐주시다가 심심풀이 땅콩처럼 하나씩 꺼내 듣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참 아기자기 재밌었고 덕분에 그림에 대한 긴장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입시 미술도 대학교마다 요하는 것이 천차만별인데 나는 출제된 주제에 맞게 그림을 그리는 '발상과 표현'이라는 입시미술을 택했다. 본격적으로 주제를 받고 스케치를 하는데, 이게 맞나? 나는 역시 재능이 없나? 아니야 처음이잖아, 일단 해보자 겨우겨우 스스로를 달래 가며 꾸역꾸역 그려낸 어느 날. 축 처진 파김치마냥 스케치를 보여드리는데,

 씽이 그림 참 따뜻하다~ 동화 보는 것 같아~ 햐~

 그렇게 한참을 감상하시는 선생님. 그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내 그림을 날카로운 평가가 아닌 따뜻한 마음의 눈으로 봐주신 선생님의 한마디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면서 시름시름 괴로웠던 마음에 알 수 없는 용기가 꼬물꼬물 피어났다. 그 용기란 힘은 나에게 속삭였다. 아, 난 따뜻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내 앞에 펼쳐진 수많은 기로에서 주저할 때 이 세 분의 선생님이 계셨다. 그 순간들이 내 인생에 꿈과 용기를 주었다는 것을 그분들은 알까? 말들은 여전히 내 맘속에 생생히 살아있는데, 감사함을 제대로 못 전한 것 같아 늘 아쉽고 죄스러운 마음이다. 어쩌면 그분들께 수많은 학생 중 난 기억도 나지 않는 평범한 학생일 수 있지만 난 그분들을 기억한다. 그 기억을 붙잡고 마음으로나마 깊이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아이들을 안고 기도해 줄 때 잊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만남의 축복'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길을 인도하고 함께해 줄 사람들이 함께하길 말이다. 나에게 좋은 선생님이 축복으로 깃들었듯 우리 아이들도 힘과 용기를 꽃피울 수 있게 도와줄 좋은 선생님이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더불어 그 가르침과  인도함 속에 피어난 감사를 마음속에 따뜻하게 품을 줄 아는 아이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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