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앞둔 연말엔 마음이 늘 조급하다. 금방이라도 무섭게 터져버릴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사람처럼 오두방정 마음이 요동친다. 이 조급증은 1년 동안 이룬 성과가 적을수록 더 심해진다. 그동안 얼마나 내 삶을 일궈냈는지, 무얼 해냈는지 찾아내고 또 찾아낸다. 꼭 찾아내야만 한다. 이런 고단한 성격의 사람은 뭐라도 찾아내고 싶었지만 딱히 그럴듯한 성과라 할 게 없는 일 년이라 이내 시무룩해진다. 어쩐지 길 한복판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이를 키우는 주부의 삶이란 단순히 반복되는 루틴 속에 어마어마한 노동력과 영혼을 갈아 넣는 일이다. 이 생활을 유지하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해 나간다는 건 쉽지가 않다. 정리정돈에 목을 매는 나란 사람은 늘 얘기한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눈에 보이는 집안일들은 미루기가 쉽지 않고, 잠깐 여유의 시간들을 제대로, 알차게, 스스로 관리하는 것은 참 고역이다. 집이란 공간은 사람을 늘어지게 하고 좀 쉬라고 누우라고 눈치 없이 속삭여대기 때문이다. 그 유혹을 뿌리치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해 난 애썼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과 몇 번씩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을 치러도 그 참담함에 굴하지 않았다. 눈을 맞추고 다정해지기에 노력했다. 입맛 까다로운 그들의 먹거리를 고심하며 매일을 살뜰히 챙겼고 일하는 남편이 집에 오면 조금이라도 쉼과 즐거움이 되어주려 노력했다. 그렇게 내 가정의 쓸모를 지켜내면서 내 개인의 삶을 부지런히 돌보았다. 떠오르는 생각을 틈틈이 기록했고 그림을 열망했다. 나의 수많은 빈틈들을 책의 양식으로 채워나갔고 꿈과 소원을 마음에 새기고 기도로 하루를 마감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허비’라는 것이 내 삶에 침범하지 않게 조심하며 살았다.
정신없이 성실히 살았는데 결론적으로 드러나는 게 없는 이 어정쩡함이 잠시 슬펐지만, 생각을 돌이켜보니 그럴 수밖에 없구나 싶다. 애초에 무언가 결론이 날 수 있는 때가 아닌 것이다. 모든 것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새해라는 시간만 밝았을 뿐, 난 그저 하던 대로 지금을 살아가면 된다. 그러니 새해라는 시간 앞에 너무 숙연해질 필요도, 좌절할 이유도 없다. 그냥 늘 그랬듯 오늘을 꿋꿋이 살아가면 된다. 그러면 내일의 새로운 해는 또 웃어줄 것이다.
다만, 지난해 분주하게 또는 조용히 응원을 보내주었던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 그건 새해에 꼭 해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새해가 밝자마자 바삐 움직였다. 나를 돌보아준 마음들에 부지런히 감사의 안부를 전했고 막 밝은 새해의 기쁨 또한 나누었다. 바람빠진 풍선마냥 쭈굴쭈굴했던 마음이 새해엔 더 잘해보아야지라는 다짐으로 가득 차올라 부풀며 쫙 펴졌다. 어정쩡해 멈칫했던 걸음에 다시 조금씩 속도를 붙여본다.
그렇게 새해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