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운다는 것.

아빠의 눈물

by 아카씽

나의 아빠 '문'은 힘차게 위로 솟은 나무 같다. 우렁찬 목소리에 높은 텐션을 가졌고 곧은 정직과 신념으로 늘 긍정을 말하는 매력의 소유자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또 잘해서 문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은 수다스럽다 할 것이고, 좋게 보는 사람들은 너무 재밌고 유쾌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그런 문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툭하면 눈물부터 쏟는 나를 보면 "우리 딸 이렇게 눈물이 많아 세상살이 어찌하나, 우리 딸은 너무 착해서 탈이야"하는 게 문이다.


문의 엄마, 즉 나의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던 날을 기억한다. 내가 친할머니와 정이 많이 없긴 했어도 이토록 덤덤할 수 있나 싶은 장례식이었다. 더 의아했던 건 그래도 엄마의 장례식인데 눈물하나 흘리지 않고 있던 문의 얼굴이었다. 할머니를 보내는 조용한 예배 속에 그의 어두운 얼굴은 충분히 슬퍼 보였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사실 내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내 엄마 '현'의 증언에 의하면 문이 운걸 딱 한번 본 적 있단다. 문과 현이 한창 연애를 했던 그 시절 문은 참 가난했다. 아니, 그는 태생 넉넉함을 모르고 살았다. 지극히 어린 시절부터 그는 지독한 가난 속에 자랐고 여전히 가난했다. 그에 반해 현은 한없이 곱고 사랑스럽고 또 넉넉했다. 유복하고 사랑받은 티가 물씬 나는 그녀의 매력은 어마어마했다. 단번에 현에게 빠진 문은 늘 생각했다. 현은 나에게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런 그를 현의 집안에서 반길리 없었고, 현은 어느 날 이별을 말했다. 바로 그날 문은 눈물을 뚝뚝 쏟았다고 한다. 그 눈물에 여린 현은 떠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뚝뚝 까지는 아니었다고 발뺌하는 문이지만, 그가 눈물만 훔쳤어도 아니, 코만 훌쩍였어도 굉장히 슬펐을 것 같다. 눈물이라는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눈물을 보이는 것만큼 슬픈 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눈물을 고백했다. 내가 6살이었던 시절. 당시 나는 (내 부모의 말을 빌리자면) 굉장히 똑소리 나고 똘똘했단다. 그들은 어디 내놔도 예쁘고 똘똘하기 그지없었던 딸을 웅변학원에 보냈다. 당시 웅변학원이 상당히 성행할 때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 교육에 마음 쓰는 부모 마음은 똑같다. 내 부모 문과 현 역시 똑소리 나는 딸을 뒤처지지 않게 당장에 웅변부터 시키고 보았을 터.


그렇게 열심히 다니던 학원에서 웅변대회를 나가게 된다. 나는 매일 내 아빠 문과 거울을 보며 열심히 대사를 외며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하지만 그 열정이 너무 과했던지 대회 당일 나는 목이 완전히 쉬어버렸다. 가까스로 나오는 목소리로 어찌어찌해 냈던 대망의 대회 날. 당시 나 스스로 (무슨 자신감인지) 그래도 우수상은 받지 않을까 나름 기대했었던 거 같다. 그런데 우수상에서 이름이 불리지 않자 얼마나 속상했던지 엉엉 울었다. 정말 펑펑 울었다. 문과 현의 다독임 속에 한참을 엉엉 울고 있는데, 예상도 못한 최우수상에서 불린 내 이름.

눈물 콧물 침으로 범벅된 얼굴을 닦을 새도 없이, 아빠와 손을 꽉 잡고 무대로 힘차게 달려 나갔던 기억.

내 기억은 딱 거기까지다.


그런데,


"어휴~ 그때 우리 딸 울 때 나도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생각지도 못한 문의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하며 문도 눈이 살짝 붉어졌다. 세상에, 그때 아빠가 울었다니. 그랬구나. 그 말을 듣자마자 무방비 상태로 나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걸 얼른 참았다. 역시 눈물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우는 것만큼 슬픈 건 없다. 여태껏 그 당시를 속상하고 마음 졸이고 기뻐했던 나 혼자만을 떠올렸었는데, 그 자리에 온마음을 함께한 내 부모가 있었다.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부모로서 마음이 얼마나 요동쳤을지 알 것 같다. 어린 자식이 슬픔의 빗속에서 훌쩍이는 걸 보는 부모 마음이 오죽할까. 부모는 자식이 홀딱 젖지 않도록 기꺼이 우산을 내준다. 슬픔의 비에 자신이 젖을지언정 자식에게만은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해 애쓴다. 아무리 슬퍼도 들키지 않게 뒤돌아 눈물 훔칠 것이다. 문도 아마 그런 마음이었으리라. 어린 딸 몰래 눈물 훔치던 그때의 문을 안아주고 싶다.


솔직한 문의 고백이 마치 날 진짜 어른으로 인정한다는 말로 들려 묘한 설렘을 느꼈다. 어린 자식이 부모가 되어, 부모 대 부모로 옛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많은 것이 새롭고 또 신기하다. 깊어진 밤 가운데, 그간 쌓아온 내 기억과 새로 알게 된 사실에 몸 둘 바를 몰라 그 일을 들춰보고 덮었다를 반복한다. 그렇게 뒤척이는 기억의 밤을 한참 지새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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