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 자리

#7. 파장

by 삶예글방



영은 현재 비안드로이드 동반자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얼마나 되었나요.


본격적으로 생활을 분담하기 시작한 건 2년이 넘었습니다. 그 친구는 한 번도 안드로이드와 생활한 적이 없던 터라, 저와 함께 사는 데에 적응하는 기간이 길었어요. A/S 센터에 발을 들이는 것도 어색해해서 한동안은 저 혼자 다니곤 했죠. 이젠 그 친구의 핸드폰에도 센터 예약 어플이 깔려 있어요. 밥상을 차려도 꼭 2인분씩 차려서, 처음엔 그 친구가 혼자 다 먹었거든요. 그러다 크게 한번 체한 이후로 제가 그 친구의 식사를 차리고 있어요.



안드로이드로서 식사를 차리는 일은 어색하지 않았나요?


전혀요. 저는 1세대 가정용 로봇으로 태어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어요. 저를 친자식으로 키워준 부모님은 성실하게 제 프롬프트를 작성해서 입력해 주셨죠. 덕분에 할 줄 아는 음식이 많았어요. 생계유지와 사회화 학습을 위해 다양한 식당,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 덕분에 ‘1인분의 몫’을 할 줄 알았어요.



‘1인분의 몫’을 하도록 영은 현재 안해연에서 초기 생성된 안드로이드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 일을 하며 영이 체득한 교훈이 있을까요.


교훈이라기보다는 ‘부럽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 아이들은 각종 다과를 만드는 법부터 더 자연스러운 행동 교정과 힘 조절을 위해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학습시키는 커리큘럼을 총 16주간 듣게 됩니다. 커리큘럼을 마치면 대부분 아이들은 당장 사회에 진출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의 생활력을 갖게 되죠. 일종의 학교인 셈이잖아요. 저는 그런 게 없어, 몸소 부딪히며 배웠거든요. 물론 지금도 없어지지 않았지만 ‘나 때는’ 온몸으로 폭력과 탄압을 견뎌야만 했던 시기가 있었잖아요. 그런 면이 아주 부럽지만 억울하진 않아요. 제가 그런 시절을 겪었으니, 지금의 아이들이 ‘1인분’부터 해나갈 수 있게 된 거니까요.





영을 처음 보았을 때, 그의 붉은 머리칼이 띄었다. 안드로이드가 잘 선택하지 않는 색으로 염색을 한 그는, 자신에게 다른 삶을 열어준 은인 A 씨를 본떠 머리를 염색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영은 지난 20XX 년 광화문 광장에 펼쳐진 일명 ‘철의 투쟁’으로 불린 안드로이드 연대 시위에서 시위대를 향해 폭력 진압을 일삼던 경찰과 대치하여 수배된 인물 중 한 명이다. 그의 생활 동반자 B 씨는 당시 안드로이드 연대 시위 행동 조합원으로 영의 투쟁과, 수배령 이후 생활을 도왔던 A 씨의 연인이었다. A 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사망하면서 둘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현재 영과 A 씨는 상실의 아픔을 딛고, 단칸방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1인분의 몫’을 하는 건 안드로이드에게 얼마나 중요한가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쉬워요. 인간 부부가 아이를 낳았어요. 아이는 숨을 쉬는 법부터 시작해서 먹고, 기고, 걷고, 말하는 방법을 차례로 배워요. 기술적인 단계를 거치면 아이는 정서적 교감과 사회의 행동양식을 습득하잖아요. 배워가는 과정에서 삶의 성숙을 거치겠죠.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아니에요. 우리는 생명의 ‘완숙’부터 시작해요. 기술의 발전으로 지금은 나이(안드로이드 생성 시기) 맞게 외형을 커스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일반 가정이 감당하기엔 수술 비용이 부담스러운 수준이죠. 그러다 보니 인간의 성인기에 맞도록 안드로이드는 제작되고, 특수하게 60~70대 노인의 외형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럼 우리 안드로이드는 눈을 뜸과 동시에 기대 나이의 행동 양식을 해내야 해요. 20세의 외형을 한 안드로이드가 20세의 정신적 성숙도를 갖게 되기까지 사회는 기다려주지 않아요. 금세 폐기되고 말죠. 그러니 인간의 1인분보다 안드로이드 1인분의 무게는 더 무겁습니다. 나를 오롯이 사회에 내던질 힘. 결국 생명값인 거예요. 저는 안드로이드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가르치고,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지금이 좋아요.




영이 안드로이드 교육 봉사를 시작한 건 석 달 전, 안해연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봉사자 각기 자신의 장점을 살린 교실을 열어 10~15명 정원의 클래스를 진행하는데, 영이 운영하는 요리 교실은 안해연 교육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축에 속한다. 고강선 안드로이드 해방 운동 시민 연합 서울지부장이 직접 추천한 ‘이달의 클래스’로 소개된 후, 프로그램 신청 1분 만에 마감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영이 이런 가치관을 확립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주변인의 도움도 필요하고요. 지금의 생활동반인도 영에게 같은 영향을 미쳤나요?


네. A(가명)의 부탁으로 B가 제 수배 생활을 직접 도운 적이 있어요. 급하게 도망쳐야 했던 상황에서 A, B 둘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저는 모든 메모리가 리셋된 채 당시 폐기되었을지도 모르죠. 수배 생활이 끝난 이후 B를 다시 만났을 땐 무척 반가웠지만, A의 부고로 B가 많이 힘들어하던 상황이었죠. 그럼에도 그 친구는 저를 밀어내거나 혐오하지 않아 부드럽게 맞아주더라고요. 참 고마웠어요. 지금도요. A가 저를 살렸다면, B는 저를 살아가게 해요.



남다른 역사를 갖고 있어, 애틋함이 크겠어요.


B와 함께하는 생활은 재미있어요. 우리는 특별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서로의 아픔을 다 알고 있어요. 문득 A의 존재가 떠올라 슬프기도 하지만 B와 저는 앞으로 지금처럼 서로에게 기대고, 살리며 빈자리를 채워갈 것 같네요.



살아감이 곧 채움이라고 생각하나요?


네. (확신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계기는 없는데요. ‘동반자’의 삶은 포물선을 그리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해요. 멀어짐도 있지만 접점도 분명하죠. 동반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저와 B는 궤도 이탈이 아닌 궤적을 따라가는 걸 겁니다. 그 사이사이 축적된 시간이 그 친구와 저를 든든하게 받쳐줄 거예요.



멋지네요. 각자만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 다른 안드로이드-비안드로이드 동반인들에게 던지는 한마디가 있다면요?


큰 뜻 말고, 작은 배려로 일상을 채우며 살아갑시다. 외롭다고 느껴지면 안해연으로 놀러 오세요. 안해연은 안드로이드 충전 무료입니다.









윤우 작가소개 최종.jpg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