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균열
안해연* 카페 포스기 앞에 상체를 기댄 채 미소 짓고 있는 영의 얼굴을 한동안 빤히 바라보았다. 좀처럼 그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붉게 물들인 단발머리가 어깨 위에 조금 지저분히 흩어져 있었는데,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팔짱 낀 영의 모습에서 풍기는 당당한 태도로 인해 완벽하지 않은 흐트러짐쯤은 눈치챌 거리도 되지 못했다.
✴︎안해연
안드로이드 해방 운동 시민 연합의 준말.
인터뷰가 발간된 이후 실제로 사람들은 영이 짓는 당당하고 친절한 미소, 그가 펼친 언어에 매료됐다. 공존의 주체로서 안드로이드가 발화하는 상황이, 그간 안드로이드는 인간이 ‘제조’, ‘수리’, ‘충전’ 해야 하는 수동적 위치에서 기지개를 켠 것과도 같아 사람들은 신선함을 느꼈다. 웹진으로도 발간된 덕분에 그의 인터뷰 일부는 조각난 상태로 인터넷을 떠돌았다. 영은 인터뷰 이후 전화를 받는 일이 부쩍 늘었다. ‘여보세요’ 대신 ‘네, 안녕하세요’로 반가운 인사말을 던지며 자리를 떴다. ‘그’ 안드로이드 아니냐며 길 가던 사람들이 알아볼 땐 가볍게 목례를 하기도 했다. 그는 길거리에서, 안해연에서, 내가 전부 알 수조차 없는 다양한 곳에서 더 많은 안드로이드를, 그들의 동반자를 알게 됐다. 영은 스케줄 관리가 성가실 정도로 바빠졌다고 하면서도 이런 관심과 상황을 즐겼다.
인문, 사회의 명사를 모시고 인터뷰하는 채널에 섭외 문의가 들어왔고, 다른 잡지나 인터넷 신문사에서 그의 메일로 연락을 남겼다. 영은 안해연의 교육 봉사 프로그램과 카페 알바가 1순위이므로, 두 스케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인터뷰나 출연 요청에 흔쾌히 응하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어떤 기자는 이토록 영에게 갑작스러운 관심이 쏠린 이유는 그가 ‘잘’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애매모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물음에도 영은 쉽게 웃어넘길 만큼 유해진 상태였다. 마치 이제 막 언어를 배워하고 싶었던 모든 말을 쏟아내기만을 기다렸던 아이 같았다. 실제로 영은 ‘이제라도 안드로이드의 언어를 궁금해하는 경향이 생겨 다행이다’며 안심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말들, 하고 싶었던 말들, 그러나 하지 못하고 세상의 더께에 덮어둘 수밖에 없던 이야기를 꺼낼 때가 왔다면서.
그러나 산책길에서, 마트에서, 지하철에서 영을 알아보는 이가 많을수록 나는 점점 더 생활반경을 좁혔다. 편의점도, 마트도, 늘 타던 버스도 탈 수 없었다. 직장에선 서로 얼굴만 알던 동료가 다가와 기사를 봤다며 아는 체를 했다. 종종 직장 앞으로 나를 데리러 왔던 영의 빨간 머리가 인상 깊어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가 안드로이드인 줄도 몰랐다고 했다.
자신도 현재 반려 안드로이드와 함께 산지 3년이 넘었다면서. 어색하게 웃는 내 손을 잡고 그 사람이 야릇한 울상을 지었다. 인간 파트너를 잃고, 안드로이드와 함께 사는 건 어떤 기분이야. 뒷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세상이 정지된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이 붙잡은 내 손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듯했다. 그 사람이 말을 꺼내자마자 생산라인의 모든 이들이 내게 주목하는 듯 사위가 조용했다.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나는 뻣뻣하게 손을 비틀어 빼고, 바지 뒤춤에 상대방의 온기를 닦으며 하하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무 시작 시간이 되어 그 사람은 애매한 나의 반응이 못 미덥다는 듯 내 트레일러 앞에서 굼뜨다 자리를 떴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일에 집중하려 애썼다. 애쓰다 보니 정말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했고, 퇴근할 때 옆자리 동료들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하면서 내 목소리가 갈라지는 걸 듣고 그제야 알아챘다. 아무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걸.
집에 돌아와 영의 인터뷰 페이지를 읽고, 또 읽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방 한복판에 우두커니 선 채로 잡지를 끝없이 펄럭였다. 손끝으로 페이지를 연거푸 쓰다듬었다. 한 번 읽을 때마다 손끝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종이의 느낌에 소름이 끼쳤다. 그 페이지 속엔 영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온화하고 당당한 미소. 친절하면서도 날카로운 구석이 있는 듯한 얼굴. 붉은 머리칼, 팔짱 끼고 서는 게 익숙한 자세. 집에서 가장 깔끔한 옷으로 골라 입은 차림새. 손끝으로 페이지를 만졌다. 영의 미소를 보면서. 영의 얼굴을 응시하면서. 영의 표정 너머, 그의 머리 너머, 그 속에 담긴 원을 꿰뚫어 보면서... 눈물 한 방울이 종이에 떨어지는 순간 손이 베었다. 찡한 손톱 끝에 인상을 찌푸렸으나 피는 나지 않았다. 그저 살갗이 하얗게 갈라진 채. 그뿐이었다. 영이 모 유튜브 채널에 인터뷰이로 출연한 이후, 나는 완전히 출퇴근 외에는 그 어느 곳에도 나가지 않고 오로지 집에만 머물렀다. 영은 그런 나를 걱정했다. 나는 하루에도 두세 번 외출을 했냐는 그의 물음에 ‘응, 다녀왔어’라고 답했지만 단한순간도 진실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내가 영에게 거짓말을 해도. 더 적극적으로 거짓을 고하고, 내 빤한 속셈에 영이 걸려 넘어가길 바라며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빨간색에 건너야 하는 고장 난 신호등처럼 나는 누구도 속지 않을 거짓말로 자꾸만 영을 시험했다. 어디까지 내가 영에게 거짓일 수 있는지 궁금했다. 우리는 평소처럼 웃고 떠들고 먹고 잠에 들었지만 그가 내 생활에 관해 묻는 순간 나는 탈을 뒤집어쓰고 정해진 답만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나를 집밖으로 끄집어낼 테고, 그와 함께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누군가가 또 나를 알아볼 테고, 알아본 그 사람은 영의 옆에 선 나를 그의 애인이나, 불쌍하고 극적인 서사를 뒤집어쓴 채 안드로이드와 새 삶을 시작한 사람으로 여길 테고, 그럼 나는 그들 앞에서 그저 ‘안드로이드와 새 출발 한 사람’이 될 뿐이니까. 그 상황은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영과 함께 살지만, 원을 과거에 두고 지나온 게 아니었다. 원은 여전히 내 앞에, 내 생활반경에 살아 숨 쉬고 있고, 그렇게 하기 위해 나는 기꺼이 영의 머릿속에 원을 집어넣는 데 동의한 것이다.
인터뷰가 나간 이후 아무도 원에 대해 묻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나도 기괴하게 느껴졌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 누구도 원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원 없이는 나는 나를 단 한 줄도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은데. 영과의 인연도, 지금의 생활도 모두 원의 유산 같은데. 어째서 영은 쉽게 원과 자신을 분리했을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인터뷰를 읽은 직후 내가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영 속에 머무는 원은 아주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듯, 절대 다른 두 개체일 수 없는 두 사람 중 영만이 깨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드로이드와 같이 살게 된 기분’보다 나는 ‘사회의 패악 때문에 하나뿐인 연인을 잃은 심정’이 더 실감 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게 관련한 이야기를 묻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그 일에 대해 대화할 여지를 잃었고, 세상에 까발려진 원과 나의 관계는 과거에 스러진 채 가슴속에 묻어야만 할 수밖에 없는 일로 취급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라고, 원은 더 사랑스러웠고, 그저 ‘사회운동을 하다 죽은 젊은 청년’에 그치지 않고 그도 말할 수 있고 춤을 출 수 있고 노래할 수 있고 불같이 나는 화를 꾹 참기도 했던, 다만 너무 착한 나머지 자신의 존재의 일부를 타인에게 떼어주고만 그런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고 아무나 붙잡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 또한 누구도 들어줄 이 없어, 나는 대신 영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원과 다른 사람인 양, 사회에 나가서 소통할 땐 제 머릿속에 원을 집어넣은 사실은 꽁꽁 숨긴 채 살고 있는 영을 비꼬기 위해. 온몸으로 꼬집어주기 위해. 영을 용서할 수 없는 마음과 그를 가해하고 싶지 않다는 도덕이 발목을 칭칭 감아, 그 시절 나는 다시 내 방문을 바라보는 채로 하염없이 살아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