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마음껏 제대로 읽고 싶었을 뿐인데요
2025. 2. 21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은님처럼 책 읽는 습관을 들일 수 있냐구요”
이전 편, 읽는 습관을 써서 글방에 제출했을 때 들은 이야기다. 의외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고, 심지어 유튜브 콘텐츠로도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도 몇 번 들었지만, 제대로 답 해본 적이 아직 없다. 휴대전화 화면을 켜면 자동으로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듯이, 잠시 시간이 나면 책부터 펼치는 사람이라, 너무나 자동화된 과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어떤 의지를 다지고 만든 적이 없으므로 설명하기도 어려웠고, 말한다고 그게 상대방에게도 통할 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더 답을 망설이곤 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더욱 많이 들을 것 같으니, 자세를 바로잡고 정식으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나는 어떻게 책을 늘 읽는 사람이 되었지?
“또!” “또 읽어줘~!”
가장 처음 기억은 네 살 때로 간다. 햇살이 잘 드는 마루에 나온 동그란 아이는 아빠 무릎 위에 앉아 있다. 옆에 낡고 헤진 책들이 몇 권 쌓여 있고, 지금보다 많이 젊고 총명한 얼굴의 아빠가 보인다. 부드러운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책 한 권이 끝나자마자 “또!” “또 읽어줘~!”를 외치며 또 읽어달라 조르는데도 지지지 않는 밝은 기운으로 동화책을 열심히 읽어주는 뱃고동같이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한 번을 그만하자고, 싫다고 거절하지 않고 또 읽어준다. 엄마가 어려서부터 해 준 이야기로 더해진 기억도 있다. 조카가 책 읽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니까 미국에서 잠시 들어온 외삼촌이 책 읽어주기에 도전한다. 하지만 끝이 나지 않는 '또!또!' 행진에 지쳐서 슬슬 조카를 피해 다닌다.
집에 책은 많지 않았지만 있는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던 기억이 선명하다. 읽을 게 다 떨어져(?) 백과사전을 차례로 계속 독파했던 7살의 앞니 빠진 단발머리 아이의 모습도 보이는 듯하다. 두 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급속 점프한다. 눈이 나빠지니까 자기 전에 엎드려 책 읽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듣는 시늉만 하고, 2층 침대의 1층에서 밤마다 엎드려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엄마가 한 권 사줬는데, 그 뒤를 사주지 않아 한 권 만 몇 번 읽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조선 왕조 500년을 읽던 사춘기 소녀를. 집 앞에 생긴 만화책 대여점에 날마다 드나들며 허겁지겁 만화책을 읽던 날들을. 월간 만화잡지 밍크, 나나, 파티를 용돈 모아 사 모으며 너덜거려질 때까지 읽던 열정을. 인터넷 소설에 빠져 새벽 3시까지 스크롤을 굴리는 뒷모습을.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로 또 한 번 점프. 학교 도서실을 거닐다 김진명 작가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만나다. 읽다가 가슴이 타는 기분을 처음 느끼게 된다. 나의 편안한 삶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아주 무섭고 불편한 진실에 마주한다. 역사 소설과 추리 소설에 매료되어 고등학생까지 이어진다.
‘20대 때 제대로 된 멘토가 한 명만 있었더라면,,’
그렇게 읽는 행위는 아주 어릴 때부터 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었지만, 의식적으로 찾아 읽으며 읽는 시간이 나의 소망과 행동을 바꾸기 시작한 건 대학교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던 것 같다. 도서관 갈 시간 만들려고 공강 시간을 길게 만들어 두고 도서관에 박혀 지냈다. 공부하러 가기보단, 읽으러 갔다. 돈 주고 사기 힘들고, 들고 다니기에도, 집에 두기에도 두껍고 무거운 책이 가득 있었다. 신세계였다. 이래서 대학교 학비가 비싼 건가? 생각도 했다. 열람실에 주로 읽을 책을 작게는 다섯 권 정도, 많게는 스무 권씩 쌓아두고 폭식하듯 읽었다. 그렇게 읽다 보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 지금 하는 공부가 맞나?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근사한 답을 해줄 만한 사람이 곁에 보이지 않는 질문이 생기면 답을 해 줄 책을 찾아 읽었다. 혼자 도서관에만 박혀 있다 동기들과 멀어지면 인간 관계에 대해 찾아 읽고, 책 속에 성실하면서도 끈기 넘치는 사랑을 하던 옛날 인간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현실 연애가 어이없게 싱거워져버려 헤어지고 나면 연애에 대해 찾아 읽었다. ‘20대 때 제대로 된 멘토가 한 명만 있었더라면,,’ 하고 노래를 부르는 날을 보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겐 늘 책이 멘토가 되어 주었다. 어떨 땐 어마무지한 수의 사공이 되어 산으로 가버리곤 했지만, 산으로 가는 시간도 나에겐 삶의 여행이 되곤 했다.
그래서 책 읽는 습관은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가?
돌아보고 톺아보니 질문은 자연스레 다시 또 습관을 만드는 방법 자체로 넘어간다. 습관은 어떻게 만드는가? 아니, 지금까지 돌아본 시간을 읽은 사람이라면 유추하겠지만, 어떤 물건을 구매하듯이 명확한 지점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렇게 자연스레 생겨난다면, 어떻게 생겨나는가?
습관은 의지의 문제인가? 반복의 문제인가? 환경의 문제인가?
언어 공부할 때를 생각해 보면 ‘반복만이 살길’이라 하기도 하고,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게 최고’라고 하기도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반복해야 습관으로 자리 잡고, 또 배우려는 언어를 쓰는 파트너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활용할 기회도, 틀린 말을 고칠 기회도 많다 보니 빠르게 실력이 늘게 된다. 운동을 할 때엔 어떤가? 내가 운동이 익숙하고 즐거워지고, 또 자연스러운 삶의 행위가 되기까지는 공간의 역할이 컸다. 이 공간에 가면 운동 하게 되니까, '일단 여기에 몸을 가져다 두기만 하자'고.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도 말한다. 매일 다루어야 손이 기억한다고. 나랑 회사 생활을 함께하다가 몇 년 만에 헤어 디자이너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됐던 3년 전에 수린도 말했었다. ‘손을 너무 오래 떼고 있었어요. 손을 풀어야 해요.’라고 말하곤 다니던 미용실에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씩 일찍 가서 연습 하곤 했다. 퇴근 후에든 쉬는 날에도 틈나면 일터에 가서 가위를 잡았다. 아는 사람 모두 한 명씩 일하던 곳으로 불러 머리를 해주곤 했다.
의외로 운동에서 답을 찾아버렸다
나의 책 읽기 습관을 헤아리려다 보니 너무 오랜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어, 더욱 한 줄 설명은 어렵게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내게 책이 아니라, 다른 것. 그러니까 전혀 생활에 스며든 적 없던 행동이 습관이 된 경우는 어떤 게 있는지 반대로 생각해 보게 됐다. 그랬더니 ‘운동’이 나왔다.
운동이라면 치를 떨던 아이로 자랐다. 밖으로 나가 노는 바깥 활동만 즐겼다. 여름이면 나가서 계곡이나 바다에 나가 수영을 하고, 가을이면 할머니의 밭농사를 도우며 산을 오르내리고, 겨울이면 호숫가 스케이팅을 하고, 봄이 되면 동네 뒷산에서 가족끼리 배드민턴이나 하던 그런 것들 말이다. 그렇게 나들이 같은 활동은 아주 신명나게 즐겼다. 하지만 그런 활동은 특별한 순간에만 놀러 나갔을 때 했고, 일상 속엔 운동이랄 것은 전혀 없는 삶을 살았다. 학창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교실 뒤편에서 말뚝박기나, 걸어가던 친구 발 걸고 도망가기, 혹은 10분 안에 매점 뛰어갔다 오기 정도 외에는 좀처럼 에너지를 쓰지 않았다. 자연스레 스스로가 운동 신경도 일절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서른 살 가까이 살았다.
지금은 같이 삶예글방에서 같이 글을 쓰시는 수연님의 운동 센터 킵에서 칭찬을 듣는 회원이 되었다. 몸을 쓰는 머리가 좋다느니, 타고난 것 같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다. 황송하고 당황스럽다. 왜 그렇게 뛰어다니는 거냐 말리는 가족들의 말에도 일단 집 밖을 나가면 뛴다. 방엔 운동 구역을 정해두고 눈을 뜨면 그쪽에 가서 엎드려 플랭크를 시작한다. 혼자서도 2~3주에 한 번은 산을 오른다. 그만큼 전혀 없던 활동을 습관으로 들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내게 새롭게 생긴 습관은 모두 ‘장소’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의 인지와 관계없이 아쳅토 책방을 만들 때도 책 읽는 행위를 삶의 일부로 심어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설계했다는 것도 기억났다. 물론 시작은 책 읽기 좋은 공간이 필요했던 내 갈증이었다. 그리고 최적의 독서 경험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과 무모하게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걸음을 떼도록 만들어줬지만, ‘좋은 공간은 좋은 습관을 만들어준다’라는 생각으로 완성했다. 아쳅토의 독서 모임의 컨셉에 큰 영향을 준 이 생각은 머릿속을 맴돌던 문장으로 시작됐다.
“습관은 몸이 아니라 공간에 밴다.”
이 한 문장, 너무 공감이 가는 이야기라 깊이 각인된 건 맞는데,,, 어디서 봤더라? 어떤 책에서 찾았더라?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책인가? 저 책인가? 싶어 아쳅토 책장을 뒤적거렸다. 긴가민가해서 펼친 책에서 문장 찾기는 모래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다. 아이폰 메모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젠장.. 상상 속 문장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온갖 필사 노트를 뒤지고 나서야 찾았다. 2021년 일기에 필사해 둔 문장이었다. 『아주 보통의 행복』이라고 적힌 걸 봤다. 최인철 작가의 책, 그 작가의 책을 읽었는지도 기억이 가물할때가 있고,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보는 질문에 한 번도 답해본 적 없는 작가지만, 이 문장 덕분에 내가 이 사람의 책을 오랜 시간 읽어오며 생의 어떤 순간에 생각보다 여러 번 도움을 받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생각이 났다. 왜 그토록 ‘장소에 밴다’는 문장에 절감했는지를.
최적의 독서 공간을 꿈꾸던 독서 유목민
지금이야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정말 많아지긴 했지만, 회사 생활을 할 당시에는 마땅한 공간이 참으로 없었다. 숱하게 책 읽을 장소를 마련해 보려 했지만, 매번 정착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대학 시절처럼 도서관에 가고 싶지만 운영시간이 보통 9시까지여서, 도서관 문 닫을 때 맞춰 퇴근하면 감사하던 시절이다 보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주말에 사람이 너무 많긴 하지만 그래도 가려고 하면 주말에도 브랜드 행사나 파티, 잔업이 나를 기다렸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던 때라 일요일 오전엔 교회에서 이른 오후까지 시간을 보내니, 주말에 가더라도 한두 시간 정도를 겨우 갈 수 있었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늦게까지 여는 식당에서 밥 먹으며 읽을까? 싶으면 음식물이 튀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밥그릇을 비웠으면 빠르게 나가주어야 회전이 될 듯하여 몇 장 읽지 못하고 쫓기듯 나오곤 했다. 술집에 가자니 시끄럽고 어두웠다. 혼자 가서 술을 몇 잔이나 마실 수 있을 것인가? 대형 서점도 10시면 문을 닫는다. 독립 서점에 가더라도 책을 읽을 공간이 아니라 ‘사는’ 공간이다 보니 마음껏 탐색하기도 죄송스럽다. 그리고 독립 서점은 보통 더 일찍 닫는다. 그나마 카페로 가야 했는데, 카페엔 책이 없으니 매번 가뜩이나 회사 다니며 봇짐장수처럼 보부상이라 불리며 큰 짐을 이고 지고 다니며 허리와 어깨가 망가졌는데, 책도 한두 권씩 가져 다니려니 죽을 맛이었다.
책이 있고, 늦게까지 마음껏 탐색하며 독서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도저히 없으면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사는 책방이 아닌 읽다 가는 책방을 우선 만들어보고 싶었다. 유행하는 책, 신간이나 홍보 도서만 가득 한 곳 말고,, 너무 어려운 책만 가득한 곳 말고,, 그리고 독서하기 최적의 환경인 어떤 아지트 같은 곳이 필요했다. 읽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편하게 필사도 좀 하고, 따뜻한 차 한 잔 정도 할 수 있고,, 당시에 그런 아지트를 찾지 못한 4년 동안에는 집을 그런 최적의 독서 공간으로 꾸리고 살긴 했다. 그래서 그때의 노하우들을 아쳅토에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긴 하다. 다만, 집에선 다른 유혹이 너무나 많았다. 가족과 같이 살던 시절, 나를 찾는 부모님과 남동생의 호출, 때에 따라 같이 모여 대화 하거나 무언가를 같이 먹게 되는 유혹의 순간들. 복작거리는 가족 분위기에서 홀로 고독하게 독서와 사색을 즐기는 건 좀처럼 쉽지 않았다. 온 가족이 잠든 후 읽고 쓰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늦게 잠드는 생활의 반복.. 집 이외의 공간이 간절했다.
그렇게 지금 책 공간의 유목 생활을 돌이켜보니 독서실을 다녔으면 그나마 나았을까? 싶다. 24시간 하는 독서실 한 칸을 월 구독해서 책과 독서등을 갖다 두고 읽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기도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독서’실 이잖아? 놀라운 발견.. 그렇지만 단 한 번도 독서실에서 책을 읽을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독서실에선 ‘이야기’를 할 수 없다. 혼자 읽는 것이 편한 독서에 웬 이야기? 대화? 그렇다. 책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며 함께 읽을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혼자 읽은 책을 대화로 익혀갈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에겐 소리 내어 읽는 독서도 필요하다. 책을 읽는 활동이 꼭 혼자만의 활동이 아닐 수 있겠다는 것, 함께 읽으면 더 즐거울 수 있겠다는 인식을 갖게된 건 독서 모임을 경험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한계에 몰리면 정착을 꿈꾸게 된다
공간의 부재를 안고 책을 읽는 날들을 지내며 책 읽는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은 사람을 모았고, 모인 사람들과 책을 읽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하게 됐다. 모임을 운영하기도, 참여하기도 하며 지냈다. 모임 다니는 숫자 만큼 갈증도 커졌다. 모든 걸 준비해서 가져 다닐 수 없고, 내 맘 같지 않은 임시 대여의 삶. 정착하고 싶었다.
방구석에 꽂히거나 쌓인 책더미는 점점 늘어났고, 혼자만을 위해 이 많은 책을 계속 사 모으는 게 맞는지 계속해서 죄책감마저 들기도 했다. 그저 혼자만을 위한 탐구욕을 위해 이렇게까지 많은 물건을 소유해도 되는가? 다른 물건을 계속 줄여보려고 노력 중이고, 환경에 관한 관심이 늘어가던 시점에 그저 ‘소유’에 집중하게 되는 이 반복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해서 빌려보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책에 직접 표시하는 즐거움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밑줄을 긋고, 때로는 격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페이지를 접어버리기도 하고, 플래그를 감상에 따라 색상을 다르게 해서 붙여두기도 하면서, 그렇게 언제든 다시 그 책과 만날 때 가장 우연적이고도 자연스럽게, 또 재미있게 접속할 수 있도록 두고 싶었다. 일단 한 책을 여러 번 보는 걸 좋아한다. 좋은 책은 필요에 따라, 또 생각이 나면, 그 구절이 나를 부르면 계속 언제든 다시 펼쳐야 한다. 그리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어떻게 그 책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이 달라졌는지를 비교하는 맛도 너무 짜릿하기에 이런 부분들을 충당하려면 필수적으로 책은 소장해야만 했다. 훼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표시하고 싶은 페이지마다 독서를 중지하고 촬영을 해두거나 한 권을 다 읽고 모두 스캔을 뜬다거나 하는 과정이, 한 권만 읽지 않고 한 번에 여러 권을 산만하게 읽는 심각한 병렬형 독서 중독자인 나에겐 도무지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당신은 어떤 책을 읽을 때 언제 '완독!'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느 달엔 절반까지만 읽었다가, 잊고 살다가는 3년 뒤에 펼쳐서 마저 읽기도, 혹은 하룻밤에 다 읽어버리고는 그 다음주에 바로 또 몇 페이지만 다시 찾기도 한다. 머리말만 읽어두고 한 챕터씩만 탐색하듯 필요한 내용을 고맙게 찾아 읽은 책들은 동시에 7-8권 정도 될 때가 흔한데, 그때마다 책별로 정리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대체로 그날그날 읽은 책에 대한 인상 깊은 구절이나 감상은 메모해 두긴 한다.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책을 계속 사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늘어놓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마음은 변치 않았고, 이렇게 계속 사야 하니까 돈을 벌고, 또 공간을 4평 이상의 집으로 필요했던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문제, 삶의 문제가 될 수 있는 충돌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나는 ‘공유서가’로 해결하기로 했다.
책, 습관, 도서관
어찌 보면 도서관의 개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쳅토가 추구하는 공유 서가는 조금 다르다. 서가에 비치한 책에 마음껏 서로의 기록과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데에서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나의 기록이 다른 친구의 독서 기록과 만난다. 책과만 만나는 게 아니라 다른 친구의 흔적도 마주하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낯설고 집중이 안 되며, 어떤 기록을 훑다 보면 무언가 스포일러 당하는 느낌까지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그 매력엔 헤어 나올 수 없는 묘미가 있다. 시간과 계절을 건너뛰어 서로가 책과 만났던 순간을 켜켜이 만나는 일. 내가 고른 책에서 내가 느낀 감상과 전혀 다른 감상으로 책과 만난 친구의 이야기가 같이 녹아 있다. 그리고 책방지기가 직접 읽고 둔 책들이기 때문에 어떤 책을 읽고 이야기를 시작해도 공감해 줄 친구가 최소한 한 명은 확보된 셈이다. 게다가 공유 서가로 운영하면, 숙제하듯 책을 일단 구매부터 할 필요가 없다. 일단 내 마음에 끌리는 책을 자유롭게 숲을 거닐듯, 산책하듯 마음껏 만져보고 펼쳐보고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게 거닐다 보면 내 마음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어떤 감상이 필요한지 스스로 처방하게 된다. 셀프 책 처방이 되는 것이다.
실은 여전히 책은 혼자서 읽는 게 가장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편하다. 그래서 어디서든 환경만 갖추면 될 일이다. ‘독서는 혼자 하는 행위다’라고 말하지 않나. 유일하게 누군가와 같이할 수 없는, 혼자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그러나 나는 그 말엔 하나의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독서는 혼자 하는 행위다.
그러나 읽고 함께 나누면 더 풍성해진다.’
네 삶에서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즐거움과 보람이 무엇이냐?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한밤중까지 책과 삶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아쳅토의 독서 모임 ‘심야북살롱’이라 답하겠다.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홀로 읽어 왔던 나는, 여러 이유와 우연한 기회가 만나 시작하게 된 같이 읽는 시간의 경험으로, 함께 읽는 짜릿함을 알아버렸다. 같이 읽고 나눌 때만 느끼는 기쁨들이 있다. 일과 삶의 경전으로 삼고 싶은 나의 몇 안 되는 애착 도서 『같이 읽고 함께 살다』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같이 읽기는 인생에 우애를 불러오고, 공동의 추구를 형성한다. 오랫동안 책을 같이 읽는 것은 결국 삶을 함께하는 일이다. 책으로 자신을 바꾸고, 가족을 바꾸고, 지역을 바꾸는 아름다운 혁명을 일으킨다. 좋은 삶이란, 혼자서는 도무지 이룰 수가 없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면서 타자의 인정과 수용을 통해서만 간신히 획득되기 때문이다. 독서 공동체는 ‘좋은 삶’의 연습장이다.
책 친구가 생기면 그 사람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읽는 습관을 잘 들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최인철 작가의 말처럼 장소에 배는 것, 아쳅토를 꾸리고 더 확신으로 동의하게 됐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한 가지 요인을 더 추가하고 싶다. 사람이다. 함께 읽으며 살아가는 책 친구들. 책 친구들이 생기면 그 사람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아쳅토 책 모임을 12기째 운영해 오고 있다.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듯하다. 적게는 2~3개월, 많게는 1년 이상 꾸준히 함께 읽어오고 있는 친구도 있다. 책 친구의 책도 쌓이고, 그들의 이야기도 쌓인다. 서로의 삶의 이야기가 책 대홧밥으로 쌓여 켜켜이 익어간다. 숙성은 대화에 깊은 감칠맛을 더해준다. 맛있는 이야기가 밤마다 이어진다. 각자 고요히 책과의 여정에 참여하는 이들과 홀로 그리고 고요히, 또 다정히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의 대화가 연결되는 기쁨, 하나의 책으로 시작해 다른 친구의 책 이야기, 책을 읽으며 들었던 분노와 슬픔에 답장하듯이 이어지는 옆 친구의 또 다른 책 이야기.
책 친구들은 삶의 고민과 궁금증, 감탄이 연결되며 매주 서로를 만난다. 독자와 작가와의 관계로만 시작된 고요한 독서의 행위는 소란하고 따스한 연결로 이어져 부지런히 서로의 세계를 섞어내고, 삶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책 읽는 습관을 만들고 싶은가? 혼자서 애쓰지 말고, 집 근처 책방에 독서 모임에 나가보라. 책 친구를 사귀어 보아라. 천천히, 꾸준히, 오래 그곳에 나가다 보면, 어느새 읽는 일은 삶에 녹아 밤을 바꾸고, 내일 아침을 바꿔 줄 것이다. 조금은 너그럽고 유연하게. ‘이런 삶도, 사람도, 사랑도 있구나’라고. 혹은 ‘이런 선택도, 방법도 있구나’라고. 하루쯤 더 살아보고 싶어질 것이다. 아, 물론 동네에 마땅한 책방이 보이지 않다면 망원동 아쳅토로 와도 좋다. 마음 열린 다정한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기록이 담긴 책들이 당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