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읽는습관

세 시간 짬이나도 눈 내린 산을 타고 도서관엘 가버리니까.

by 삶예글방

2025. 2. 13


정혜윤 작가님의 책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에서는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찾아보라고 말한다. 누군가 나의 일 년을 관찰카메라로 찍고, 그것을 글로 묘사해 기록해 둔다면, 가장 중복되는 단어는 단연 ‘책’이나 ‘읽기’가 아닐까 싶다.


늘 읽고 있다. 지난주에도 하루에 세 가지 일정이 있던 날, 세 시간 틈이 났다. 즉시 그 길로 인왕산 자락에 있는 청운문학도서관에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30분, 내려서 걸어서 5분 이상 걸린다. 집에서 걸어서 마포구청 쪽에 있는 마포중앙도서관에 가면 되지만 - 그래서 매주 한두 번씩 가고 있지만 - 아쳅토 등산 모임 때 빌려온 「일기시대」를 반납해야 했기도 했고, 간 김에 「일기시대」처럼 나의 상황에 위로나 영감을 줄 책을 찾고 싶기도 했다. 간 김에 책도 실컷 읽고, 마음에 드는 생각들을 끄집어내 적어두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 내린 날의 고즈넉한 한옥이 품고 있는 벙커 같은 서고가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 같은 도서관인데 이왕이면 가까운 게 좋지 않냐고 묻고 싶을 수도 있겠다. 일단 도서관을 왜 그리 좋아하냐고 묻는 질문이 선행한 후의 질문이긴 하다. 물론, 방앗간처럼 매일 들르는 도서관이 집 근처에 하나 있어야 하는 건 맞다. 허나 집밥을 먹다가 가끔 외식을 하듯이, 종종 다른 도서관엘 굳이 찾아간다.


같은 도서관이어도 도서관마다 건축물의 형태와 면적도 다르다 보니, 장서 선정도 보유량도 분류의 비중도 다르다. 같은 분류여도 선정해 둔 책들에 차이가 크게 난다. 규모가 작을수록 큐레이션이 도드라진다. 사서들의 역량과 마음이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독립서점들을 좋아하는 지점과 같다. 고심한 흔적과 애정이, 여기에 와서 책을 읽을 사람을 떠올리며 사려 깊게 구입해 두었을 결정과 좋은 책을 소개하겠다는 의지가 모여 있다. 그 거대한 서가 뒤에 숨은 각각의 고집과 기대가 느껴져서 좋다.


얼마 전 강릉에 1박 2일 다녀왔는데 그때에도 독립서점 두 군데를 다녀왔다. 짧은 일정이라 오래 마음껏 머물러 있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그중 한 곳에서 마음에 쏙 들어 구매한 책을 두고 왔지만 - 오열하는 비명이 들린다 - 그럼에도 좋았다. 그만큼 나는 늘 책을 읽고, 책이 있는 장소를 찾아가고, 책을 읽는 사람을 찾는다. 읽은 책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줄 사람 또한 열심히 찾는다. 책 속 인물들이 어떤 책을 읽었기에 이런 멋진 사유와 감동적인 행동을 했는지 그들의 원천이 된 책을 찾기도 한다. 책 읽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찾곤 한다. 나는 계속 찾고 곁에 둔다.




그렇게 책을 읽고, 읽은 것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자연스레 주변에서 내가 어디서든, 언제든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나, 읽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은 사람, 내가 책에 대해 써둔 것을 읽은 사람은 이렇게 물어본다.



“와 진짜 책 좋아하시네요.”


뭐 하냐고 물어볼 때마다 ‘일하고 있다’고 답할 때 말고는 ‘책을 읽고 있다’고 답할 때 (그 ‘일’도 대부분 책과 관련된 일이다)


“아니 여기서까지 책을 읽어요?”


식사 중 일행이 화장실을 가면 그 틈을 못 참고 책을 꺼내 읽고 있을 때, 혹은 책을 읽으며 길을 걸어가다가 이웃을 만날 때



”그렇게 동시에 여러 권을 많이 읽으면 다 까먹지 않나요?”


도서관에 갈 때마다 왜 이리 오래 있냐고 물어보길래 한 번에 7-8권은 읽고 오느라 그렇다고 답할 때

요즘 어떤 책 읽고 있냐고 물어볼 때 책의 제목을 계속 이어서 얘기할 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책 읽는 습관을 들일 수 있나요? 저희 애도 좀 알려주고 싶어서…”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를 대상으로 북토크나 독서모임을 진행하게 될 때




여기서 마지막 질문처럼 읽는 습관을 길러주고 싶은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제 아들’ ‘저희 딸’ ‘제 남자친구’로 향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럴 땐 어딘가 아쉽다. 이미 자신은 책과 먼 삶을 살게 된 것이라고 포기한 걸까?



“어떤 책을 읽으면 좋나요?” “책 읽는 게 좋은 건 아는데, 제가 습관이 안되어있어서,,””서점에 일단 가서 맘에 드는 표지를 찾아 사 와요. 그리고 꽂아놓죠. 그 후에 끝이에요.” “사놓은 책을 볼 때마다 숙제를 쌓아둔 기분이에요.” “사놓고 안 읽은 책이 쌓여가면서 부채감만 늘어나요. 저는 책이랑 안 맞나 봐요.” “올해는 책 좀 읽어보려고요~ 그런데 너무 어렵네요..? 끝까지 못 읽겠어요.” “너무 읽는 속도가 느려서 지쳐요. 어떻게 하면 좀 빨리 읽을 수 있을까요?”


직접 책을 골라 커버를 펼쳐 목차라도 읽어보기 시작이라도 한 사람의 질문은 이렇게 달라진다. 그러면 왠지 조금 더 정성껏 대답하고 싶어진다. 막연히 멀리서 지켜보며 하는 질문과 어설프더라도 직접 행동에 옮기기 시작한 사람의 질문은 이렇게나 다르다. 막 책과의 신비로운 만남을 시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이런 상황을 거친다.


책이라는 것을 나도 읽어보고 싶다며, 옆에 있는 친구처럼 곁에 책을 두고 싶다며 책을 찾아든다. 펼친다. 막히는 지점을 만난다. 그 장면은 다양하다. 열고 들어가면 좋겠는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건 아는데,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고 걸을수록 멀어지는 느낌. 어떻게 하면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딘가 무서운 기분.




아쳅토에 처음 오는 책 친구들 중 난생처음 독서모임에 오시는 분들이 보통 많이들 그런 상황에 당황하곤 한다. 아쳅토 독서모임에서는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서가에서 골라서 자리를 잡고 각자 한 시간 책을 읽고, 한두 시간 함께 서로의 책 이야기를 나누는데, (물론 두 시간이 넘어가는 날도 많다.) 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어려워하며 망설이는 것을 보고 놀랐다.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이다.


좁은 망원동 골목길 2층에 있는 책방까지 오는 게 더 힘들 것 같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운영하는 밤 독서회에 오는 게 더 의심 가고 무서울 것 같은데, 왠지 처음 온 친구들은, 그리고 독서모임의 경험이나 독서의 경험 자체가 처음에 가까운 친구들은 그리 크지도 않은 책방 서가를 둘러보며 혼돈에 빠진 옆모습을 보여준다.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것처럼 생긴 책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한 손길을 보인다. 혹은 얇고 쉬워 보여 짧은 시간에 많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책을 고르려 노력한다. (하지만 여기서 비극은 시작된다. 보통 얇으면서 제목이 쉬운 책이, 읽기엔 난해하고 불친절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슨 책을 골라야 할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자신의 선택으로 골라서 바로 읽어본 경험이 생각보다 많이 적다는 것을 알았다. 책마저도 오롯이 끌리는 마음에 솔직해지기 힘들어하는 것이다.


대형 서점에 가면,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접속하면, 누군가의 추천으로 이끌리어 선택하기가 매우 쉽다. 온통 넛지*가 깔려 있다. 그 넛지는 도서관의 그것과 매우 질적으로 다르다. 조금 더 돈을 많이 지불한 출판사의 베스트셀러 목표 - 아니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야 하는 - 책을 살 수밖에 없도록, 그쪽으로 최소한 시선이 열 번, 아니 1분 이상 더 편파적으로 머물도록 정성껏 설계한다. 그렇게 왠지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을 골라 계산하는 순간에는 왠지 좋은 사람으로 한 걸음 나아간 것 같고, 다수의 행렬에 나도 동참했으니 어딘가 안전한 기분이 들지만, 그렇게 읽어야 할 것 같아서 고른 책을 끝까지 즐겁게 읽어나갔다는 이야기를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다.



*넛지 (Nudge) - ‘옆구리를 쿡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는 뜻의 영단어이다. 경제학적 의미로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한다. 쿡 찔러 행동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행동설계’의 방법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원서의 부제는 ‘더 나은 결정 - 건강과 풍요, 그리고 행복에 관한 결정 - 을 위한 넛지’ 를 품고 있다. 한국 번역본은 ‘복잡한 세상에서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이라고 했는데, 나는 원서의 부제가 조금 더 좋다.




그렇게 독서 중독자, 초심자를 망라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아쳅토 책모임을 운영해 오면서 모처럼 신선한 질문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기준으로 책들을 꽂아두신 건 지 알 수 있을까요~? 일반적인 분류가 아니어서 신기해서 여쭤보아요.”

이런 질문을 해 준 친구분은 6개월 정도 만에 처음이었다. 이래저래 설명해 주고 답변을 듣다 보니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어 문헌정보학 석사과정 중에 있어 책 분류에 관심이 많은데 흥미로운 배치라 궁금했다고 했다.


나는 아쳅토 책방을 꾸릴 때, 서가에 도서관이나 일반 서점 같은 분류나, 큐레이션 노트를 최소화했다. 책의 종류를 일관되게 무 자르듯 나누려고 하지 않았다. 조금은 더 우연히, 혹은 순수히 본능에 끌려 책 등이나 표지의 컬러가 마음에 들어서, 책 등에 써진 단어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서, 내가 주문을 외우듯 머릿속에 가득 채운 고민과 상념의 질문이 향하는 곳으로 손을 뻗길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했다. “나는 자기 계발서는 안 읽어~” “나는 외국 문학은 좀 별로~” “에세이는 왜 읽는지 모르겠어~”라는 식으로 분류에 선입견이나 이른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의외의 만남을 경험해 보길 바라기도 했다.



그래서 매번 처음 오는 책 친구분들께 서가를 안내하면서도 딱히 할 말이 많지 않았고, 명확한 체계를 두지 않았기에 설명하는 것 자체가 모호하고 어렵기도 했지만 아직도 유연한 배치를 하고 있다. 책을 읽을 때 만이라도 형식과 의무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 오직 눈과 손, 생각이 가는 대로 자유로이 책을 골라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 그러다 언젠간 자신만의 기준으로 큐레이션을 해봤으면 하는 마음들이다. 세상에 얼마나 무 자르듯 계급화 등급화 분류화가 되는 것들이 많던가? 나는 그 천편일률적이고 단순한 분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문득 떠오른 두 권의 책을 예시로 내가 책을 구분하는 속내를 펼쳐두고 싶다.


내 종교적 신념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데 기여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칼세이건의 이 신비로운 벽돌책은 대형 서점이었다면 당연히 과학서적으로 분류가 되었겠지?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철학서이자 역사서라 생각한다. 아니 아름다운 세상에 관해 탐구하고 감탄해 온 시가(詩歌)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 책을 어디에 분류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책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추천해서 읽은 사람은 모두 구매한, 정혜윤의 「아무튼 메모」

이 책은, 책을 파는 공간에선 왠지 ‘아무튼’ 시리즈에 묶여있어야 할 것 같다. 판형도 굉장히 작고 얇으며, 어딘지 옆에 크고 굵은 책들과 규모면에서나 깊이 면에서 다를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내가 가장 애정하는 명예의 전당 코너 (그곳이 명예의 전당 코너인지는 책 친구들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기 때문이다.)에 내 인생을, 뿌리 깊은 고집이나 분노를, 관계를 바꿔주었던 책들 옆에 꽂아두었다. 「같이 읽고 함께 살다」라든지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이라든지 「다정함의 과학」이라든지.


「아무튼 메모」는 메모에 관한 책이 아니다. 한 사람의 가치 체계를, 삶의 언어를 어떻게 채워갈 것인지, 우리가 읽고 적는 것들이 우리를 얼마큼이나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지 그려보고 꿈꾸게 만드는 책이다. 이것을 그저 ‘아무튼’ 시리즈로 출판사를 위한 분류를 할 수 있는가? 그저 ‘실용서적’이라고 부를 수 있냔 말이다. 나는 절대 그렇게 서운한 분류를 내어줄 수 없다. 이 고마운 책에게.. (물론 이 책은 아주 실용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용 그 이상의 가치를 품고 있으니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여하튼 더 많은 책꽂이를 품을 수 있는 넓은 공간으로 이사를 가게 되더라도, 아쳅토의 서가는 대부분의 구역을 가능한 막연히 방황하는 책의 숲이 되도록 하고 싶다. 어떤 감정이나 욕망의 흐름으로 분류를 한다든지, 그냥 무작정 색으로만 분류를 한다든지, 할 테다. 사실 지금도 아쳅토의 서가는 색을 중요시 한 분류를 하고 있는데, 실은 색과 책의 결도 같이 고려하여 꽂아둔 것이다. 그 ‘결’을 알아봐 주는 이의 칭찬을 들을 때, 혹은 책을 고를 때 순수히 눈의 즐거움으로, 호기심으로 직접 고른 책을 읽고는 신나서 눈을 빛내며 '오늘 꼭 필요했던 문장을 만났다'며 책 이야기를 소개해줄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책맹인류’라는 EBS 다큐멘터리에서 봤는데, 사람이 스스로 직접 고른 책을 읽을 때 이해가 더 쉽게 되고, 장기 기억소에 더 확실히 담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몰입이 높아진다고도 하고. 지정 책 독서모임을 간헐적으로 열고, 자유 선정 독서모임을 주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이 뇌과학의 원리를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어떤 칭찬이나 성취보다 기쁜 순간.

“태어나서 이렇게 몰입해서 책을 읽은 경험이 처음이에요"
라는 말을 만날 때.


회사 생활을 하며 이직하는 과정에서 월급을 백만 원 가까이 높이며 이직한 적이 있다. 그때 생활이 질적으로 양적으로 나아졌던 경험을 잊을 수 없는 뿌듯한 순간으로 뽑곤 했는데, 그만큼 물질적 풍요를 얻었을 때보다 기쁘다.


그렇게 기뻐하며 또 새로운 책을 찾아 발견하고, 설레어하며 서가에 책을 꽂는다. 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새로운 과일나무를 하나 입양해 와서 묘목부터 심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렇게 한 그루씩 꽂다 보면, 그리고 그 책들이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만나는 장면을 지켜볼 때면, 나는 최고로 행복해진다.








| 덧붙이는 말 |

이제 아쳅토에는 판매용 서가가 생겼고, 독서모임을 참여하지 않는 헤어살롱 손님들도 책을 살펴보고 물어보시게 됐기 때문에, 수린의 원활한 안내를 위해 판매 서가에만 책방지기의 선별과 문장 필사 노트를 입혀 꽂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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