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쓰는습관

특히 읽고 쓰는 습관이 나에겐 그랬다.

by 삶예글방

2025. 2. 6


죽고 싶은 날에도, 읽을 책이 남아 있어서, 쓸 얘기가 남아 있어서 이것 까지만 읽고, 이 얘기만 써 놓고 가야겠다(어디로?) 생각할때가 많으니까. 이번 주에도 그랬다. 쓰는 습관이 나를 살렸다.






쓰는습관은 죽어가던 마음을 살리고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둔 19만 8천원어치의 책* 만큼은 손으로 쥐고, 만지고, 품고, 펼치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마구 휘적거리며 읽다가 멈추어서 따라 쓰고, 감탄하며 글을 끄적여놓고, 또 읽으며 생각난 사람들을 떠올리며 책 소개 영상을 찍고 감상을 인스타그램에 끄적여 놓으면 그 때 마음 편히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 지갑 사정은 흔쾌히 20만원 어치의 책을 살 상황이 아니었다. 더 죽고 싶어졌지만 맘편히 죽을 수 있는 시간은 더 멀어지고 있었다. 블로그에 1월 회고라 쓰고 ‘연속으로 계속 망해서 죽고 싶은데, 고마운 사람과 아름다운 추억이 너무 많아서 아직은 좀 더 살아야겠다’고 읽히는 투덜거림을 써 올린 다음 날이었다. 갈비뼈에 실금이 간 날 만나러 갔던 희진이 느닷없이 카카오톡으로 송금하기와 메시지를 보내왔다.



*19만 8천원어치의 책

책방지기 사생활실록 04화 '넘어진 김에 열렬히 망해버리는 사람' 참고



“언니 ㅎㅎㅎㅎ 새해 복 많이 받아!
나 언니 블로그 읽어봤어!!!

뭐야.. 그 날 그렇게 많이 아팠을텐데 내색도 안하고ㅠㅠㅠㅠㅠㅠ 괜히 미안하고 그렇네.. 블로그 읽다가 언니가 얘기했던 책 장바구니 이야기를 보는데 내가 선물 해주고 싶더라고...!! ㅎㅎㅎㅎㅎ

그래서 고민없이 보내...! 내 마음..ㅎㅎㅎ ��”


뭔 소린가 싶어 송금받기 버튼을 눌렀더니, 메시지가 딱.


‘김희진 님이 20만원을 보냈어요’

어리둥절하며 화면을 보던 나는 다시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었다. 이 문장에 눈이 자꾸 멈췄다.


‘고민없이 보내…! 내 마음’


고민 없이 마음을 보내는 일, 희진이의 무모한 배려에 눈물이 났다. 좋은 마음도, 조언이나 사랑도 걱정도 고민과 생각으로 재고 따지며 미루던 일이 많은 나여서 더 고마웠다. 너 이렇게 무거운 감동 주면 나 부채감에 갚아줄 생각 하느라 또 열심히 살수밖에 없겠다고 우는 이모티콘 서른개쯤 붙여서 답장을 보내니까 희진이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젠 옷보다 더 사랑하는 언니의 책들.. �왕창 사서 읽고 행복해❣️”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날들


자신을 만나러 오다 다친데에 미안해서 보내는 치료비도, 이것 저것 온통 망했다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위로금도 아니었다. 사랑하는 책 읽기 실컷 하며 그 힘으로 행복하게 살라는 응원의 마음이었다. 망원동에 살면서 열렬히 망해가는 저 독서중독자 언니의 생을 이어갈 숨이 뭔지 정확히 아는 동생의 응원이었다.


참고로 이 날 뿐 아니라 틈틈히 나에게 목소리를, 눈물을, 물건과 함께 응원을 건네온 마음부자 희진이는 지금 3년생 아들 로운과 0.5년생 딸 향기를, 8+a 생 강아지 온유를 돌보며 살고 있다. 그 바쁜 중에 자신의 일과 돌봄 이야기를 작년엔 책으로 써내기도 했는데, 그 글이 어찌나 좋았는지, 계속 더 바빠지더라도 쓰는 일 만큼은 계속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비건이즈힙 마지막 방문을 핑계로 약속을 잡고 동탄에 가던 날(그러니까 대차게 길에서 넘어진 날-04화 참고), 창작지원금을 건네겠단 생각으로 비상금으로 지갑에 접어서 넣어 뒀던 3만원을 꺼내 펼쳐서 구겨진 주름을 폈다. 작은 금액이지만 오직 쓰는 사람 희진을 돌보고 키우기 위한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고 써서 편지에 같이 넣었다. 완전한 성취와 우정이 담겼다는 노란 장미꽃을 몇 송이 모아쥐고 건네고 온 게 지난 만남이었다. 그리고는 그녀는 또 이렇게 성미 급하게 생존지원금을 보낸 것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을 적다 보니 말로 받은 것들이 계속 생각 난다. 겨우 이런 것들 건넸을 뿐인데 이렇게 크게 돌려준다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둥둥 떠다닌다. 쓰기의 이점이다. 읽기만 할 땐 그려내지 못하던 장면이다. 망한 줄만 알았더니 여기에 일용할 양식이 있네? 아니 자세히 보니 사랑이잖아? 하는 순간들부터, 이런 것 그저 켜고 봤는데 이런 깨달음을 주네? 하는 순간들까지. 기억 났을 때, 떠오를 때,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소소하고 큰 기쁨들 틈에 살아가고 있는 지 잊게 되니까 적어두어야 한다. 분명 요즘의 내 삶엔 망한 일 말고 잘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았는데 적어보다 보니 이렇게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 있지않나. 이 고마움 기필코 기억하며 살겠다며 휘발되기 전에 간절한 마음으로 그러모으게 되고, 또 그렇게 모은 것들을 감정의 모양대로 빚어보니 이상하고도 재밌기도한 삶을 살고 싶어지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도 쓰면서 감상하는 사람


그렇게 경험에서 길어 이야기를 적어보다 보니 또다시 망함구간 회고를 시작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옥씨부인전」 생각이 났다. 주인공인 임지연 배우가 연기한 노예 캐릭터 ‘구덕이’의 삶의 여정은 내 삶에서 만난 궁핍한 순간에 읽고 쓰면서 풍요로워진 날들의 기억을 끄집어내주었다.


신분 차이로 착취 당하던 구덕이의 모습을 보며 회사 생활 중 갑질의 고통으로 힘들던 시기에 읽던 책 『을의 철학』과 ‘사람다운 삶을 어떻게 살 수 있나’를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던 책 『사람, 장소, 환대』가 떠올랐고, 아쳅토를 만들고 직접 써낸 나의 첫 독립출판 책 『다름다움』이 떠올랐다. 특히 그 속에서 영감이 된 고대 여성, 철학자이자 도서관 사서였던 ‘히파티아’가 계속 생각나고 겹쳐보였다. 이쯤 반복해서 얘기하려면 구덕이가 어떤 사람인지 말을 안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구덕이는 양반 ‘김낙수’네 집 노예다. 엄마 아빠부터 노예였고, 구덕이도 자연스레 태어남과 동시에 그 집 딸래미 ‘소혜’의 몸종이 되어 자랐다. 시작부터 망한 생이다. 그 시대 양반들이 노예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들 그랬겠지만 유독 김낙수와 그 딸 소혜는 더 지독히 생명을 함부로 하는 이들이었다. 구덕이의 엄마를 병에 걸렸단 이유로 생매장을 해버렸고, 구덕이의 아빠 '개죽이'는 구덕이를 지키려다 매질을 당해 죽을뻔 했다.


드라마적 허용이지만 이런 구질한 삶에도 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만든 설정이 하나 있었는데, 구덕이는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구덕이는 한 번 읽은 건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읽으며 다시 보게 된 세상은 기회로도 보였으며 부조리로도 보였을 것이다. 이 행위들이 구덕이의 도약구간을 만들어낸다.


직접 보고 겪으며 알게 된 사람은 알기 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읽은 사람은 읽기 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하여 보통의 노예들이라면 순응하며 살려 했을지 모르나 구덕이는 상황에 순응하지 않았다. 구덕이는 행동한다.


아빠 ‘개죽’과 그 집에서 탈출해 바닷가에서 집 짓고 살겠다며 틈틈히 준비한다. 자신을 첩으로 삼겠다며 겁탈까지 하려는 대감의 얼굴을 낫으로 그어버리고, 자신에게 ‘구더기처럼 살라’며 구덕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는 벌레처럼 대해 온 대감의 딸 ‘소혜아씨’에게 요강에 들은 오줌과 똥을 부어주고는 주인집에서 도망친다.


그렇게 신분을 숨기고 도피하던 중 생명의 은인을 만난다. 청나라에 유학을 막 다녀온 양반집 아씨 ‘옥태영’을 만난 것이다. 옥태영은 가진 것과 누린 것을 응당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억울한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리고 돕는 삶을 살겠다는 꿈을 가진 멋진 여성이었다. 딱한 사정인 도망 노예의 삶이지만 대화를 통해 깊은 속과 꿈을 가진 구덕이의 그릇을 알아봐주고 자신의 꿈과 삶을 같이 하자며 손을 건넨 태영이었다.


구덕이를 기꺼이 동무로 여겨주며 고향집으로 같이 가자 약속하던 밤이었다. 두 사람이 묵고 있던 여관을 불태운 도적떼로 인해 모두가 죽고 구덕이만 살아남게 된다. 죽기 전 자신의 생을 이어받아 살아달라는 태영아씨의 원을 받아 구덕이는 제 2의 삶을 시작한다. 그동안 읽고 써온 총명함과 자신이 겪은 억울함을 거름으로 옥태영의 고향 마을 청수현에서 옥태영의 꿈을 이룬 외지부*의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외지부 - 조선시대의 변호사와 같은 직업



청수현 마을은 의로운 외지부로 헌신하는 옥태영(구덕이) 덕분에 평화를 찾아가는 듯 했다. 그런데 태영이로 살게 된 구덕이에게도 두 번째 망함 구간이 찾아왔다. 자신이 얼굴을 그었던, 그리 도망가고 싶었던 노예 시절의 주인 대감이 청수현의 현감(縣監, 마을의 우두머리)로 온 것이다.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했던가. 청수현에 와서도 가짜 약재상 ‘허순’과 손을 잡고 마을사람들을 꼬여내 집단 사기를 저지른다. 재배도 쉽고 큰 값을 한다는 ‘만수삼’이라는 허상의 작물을 다단계처럼 판매하는데, 꼬임에 넘어간 마을 사람들은 준비된 불법 고리대금을 빌려서 투기에 너도 나도 참여한다. 당연히 만수삼은 아무런 효능도 값도 되지 않았다. 대금을 치르지 못한 이들은 줄지어 파산하며 고을 전체가 벼락거지가 됐다.


마을 사람들의 어려움을 두고볼 수 없었던 구덕이는 문제의 원인이 된 만수삼 판매상을 추적한다. 여기서 또 큰 은인을 만난다. 오매불망 곁을 지켜주는 정인 ‘송서인’이었다. 그이 또한 글을 쓰고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었다. 조선의 셰익스피어로 사는 꿈과 기회를 뒤로하고 태영(구덕이)를 돕는 그가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하게 돕는다. 진짜 약재상 '허순'을 찾고, 가짜 약재 대신 진짜 금값이 되는 약재를 발견해 준 것이다. 죽기 전 태영아씨가 구덕이에게 건넨 물건 중 노회*라는 식물이 그 희망이었다. 진짜 태영아씨가 죽기 전, 그녀에게 건네받아 열심히 그저 집 뒷뜰에 심고 정성껏 키워왔는데, 피부염증이나 진정되게 하는 줄로만 알았던 그것이, 실은 엄청난 값어치를 하는 귀한 희귀약재로 팔린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구덕이는 자신이 가진 모든 노회의 반은 한양에 가서 팔아 긴급 생활 자금을 마련해 오고, 반은 망한 마을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나누어 주어, 공동의 재배구역을 만들어 각자 몫을 재배해 생계를 이어가게 돕는다.



*노회 - ‘알로에(Aloe)’의 음차(音借)식 표기










구덕이는 읽고 쓰는 습관으로 자신의 삶에 주어진 명을 거스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태영아씨를 만났을 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며 일할 수 있었다. 숱한 위기를 같이 이야기를 쓰는 정인과 함께 이겨내곤 한다. 그들의 여정을 지켜보며 자꾸만 울컥 뜨거운 것이 오르내리곤 했다. 그저 드라마를 '보기만' 했다면 이 감상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스쳐 지나보내면 될 일상의 순간도, 굳이굳이 꺼내어 펼쳐보고 살피다 보면 보석같은 값어치를 찾아낸다. 꺼내어 쓰는 일의 수확이다. 만수삼 같은 작물이 없이도, 사기를 당해 망하더라도, 넘어지고 엎어져서 아파 못살겠는 날에도, 내가 돌보고 살피며 길러온 것들이 나를 또 살려낸다. 대신 꼭 다시 꺼내보아야 알 수 있다. 그저 묻어두고 살피지 않으면, 돌아보지 않으면, 꺼내어보지 않으면 영원히 그 가치를 알 수 없게 된다.


망한 일상을 돌아보고 한탄하며 뭣도 하지 못하겠는 날에, 그저 누르면 뜨는 팝업창처럼 읽고 쓰는 관성에 기댄 시간이 써준 글이 동탄에 사는 다정한 이의 마음을 움직여줬고, 심폐소생술 같은 응원을 불러왔다. 그렇게 삶을 지속할 무게를 이고지고 빚진 맘으로 좋은 이야기를 길어내지 않으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새로 시작할 모임과 프로그램들은 어쩐지 잘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더 기쁘게 망함 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뻔뻔함이 생겼다. 그리고 머릿속에 따끔한 느낌과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아니 이렇게 나를 살리는
읽고 쓰는 일을
오래 즐겁게 하고 싶어서
아쳅토를 시작했던건데.

읽고 쓰는 습관이 나를 살렸고, 오래도록 읽고 쓰는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 그만큼 간절했지. 모든 걸 내려놓아도 될만큼 소중했고, 그저 좋아서 시작한거다. 계속 해야만 하는 사람인 걸 알았으니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그얘기를 한다. “소설을 쓰고 싶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달리기를 하고 싶어서 달리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그 두 가지를 35년간 매일 쉬지 않고 해오고 있다. 좋아하는 걸 지속하기 위해 다른 많은 것들을 통제하고 절제한다. 그저 계속 하고 싶은 일이어서다.


물론 원하는 걸 계속 할 수 있는 상황이나 환경을 지켜가는 것이 누군가에겐 운이 좋게도 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지속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는 것을 내가 읽는 문학에서, 또 그 문학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에서 너무나 많이 자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타고난 부가 없어서, 안정적인 수입이 없기 때문에, 환경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라고 핑계를 두며 그만둘수가 없다.


하루키가 소설을 쓰고 싶어서 계속 쓰기 시작하다가, 어느날 달리는 사람으로도 살게 된 것처럼 나도 읽는 게 좋아서 읽는 삶을 살다보니 쓰는 삶을 살게 됐다.


그래.

내가 쓰는 습관을 지니게 된 건 읽는 습관으로 살아온 나 덕분이다!

고마워! 읽는 나.


이 급작스럽고도 새삼스런 느낌표에 이르고 보니 읽는 사람으로 살아야지 다짐했던 시간들, 읽는 습관을 만들게 된 순간들이 떠올랐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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