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논비건 친구들에게

변화를 만드는 데에 큰 존재감을 일으킨 사람들의 기록, 덕분에 노트

by 삶예글방


2025. 1. 16



사람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내가 보고 들은 의학적, 지적 정보와 경험 외에도, 곁을 지나쳐간, 혹은 순간순간을 깨워준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비건 라이프의 시작이 비자발적으로 벼락처럼 다가왔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만난 사람들이 조금씩 내 마음을 바꾸고 지켜와 준 것들도 크다.


고마움을 기억하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나는 내가 만난 사람과 보고 들은 것으로 채워지고 만들어지고 계속해서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고 믿으니까. 그 지점들을 톺아보고 나면 어딘가 마음이 따뜻해지고, 또 누군가에게 나는 어떤 삶의 순간을 주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순간들이 참으로 행복하다. 앞으로 살아갈 힘을 마구 충전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고마움을 기억하는 습관은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불쾌함과 억울함을 쌓아두던 시절도 있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5년간은 누가 안부를 묻는다면 늘 이렇게 답했다.



“요새 어떻게 지내요?”

“칼을 갈며 지내고 있어요.”

“아니 무슨 그런 무서운 답변을 ,, 칼로 뭐 하시게요?”

“아하하, 기회를요!”
“요새 많이 힘드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건 맞지만)..”



물론, 나를 괴롭히던 사수를 썰고 싶기도, 시녀 취급하며 여왕놀이를 하던 클라이언트를 썰고 싶기도 했던 날들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칼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무슨 기회든 썰 기회만 생기면 망설임 없이 바로 꺼내 무든 종이든 썰어버리겠다는 결의였다.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으니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기 위해 집중해 노력 중이라는 뜻이긴 했지만, 말의 결로 보나, 또 ‘칼’로 ‘썰겠다’는 행동의 방식으로 보아 내 안의 화와 폭력성, 혹은 갚아주겠으며 보여주겠다는 어떤 증명의식이 있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말이다.


칼을 갈며 무엇을 헤아리고 써왔겠는가. 나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저 사람처럼 갑질하지 말아야지. 무례하게 인신공격 하지 말아야지. 아랫사람에게 다 시키지 말고 본이 되어야지. 라며 -반면교사 노트라 쓰고 그 잔여 감정이 함께 응축되어 데스노트라고 읽어도 무방한 - 노트를 차곡히 써왔다. 그랬던 내가 이후의 5년간의 회사생활은 데스노트 대신 땡스노트를 더미로 써온 것이다.



그 사람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나.
그 사람이 나에게 이런 영감을 주었지.
그 사람이 보여준 행동은 본받고 싶다.
이 사람을 보면서 나아가고 싶다.



매 페이지의 첫 줄 마다 고마움과 배움, 영감을 기록하며 시작하는 '덕분에 노트'가 됐다. 그중에 지금 까내는 것은(?) 의식주 중 식에 해당하는 거대하고 중요한 변화를 만드는 데에 큰 존재감을 일으킨 - 노트 페이지를 많이 할애한 - 사람들의 기록. 어쩌면 10개월 차 비건지향인의 8년 동안의 귀인의 기록이기도 하다.







2017년 무해함의 의인화, 비건 도시락의 첫인상, Y과장님.


처음 만난 실존 비건. 그러니까 직접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채식주의자 친구였다. 친구라기보다는 동료였는데, 친환경 패션 브랜드 나우(nau)를 홍보 대행할 때 Y과장님(당시 직급)은 브랜드 마케터였고, 나는 홍보대행사 AE였다. 긴밀한 협업을 해야 하는 사이. 자주 보고 자주 대화를 나눴다.


“채식을 해보기로 했어요. 도시락을 싸갖고 다녀요. “의 말이었던 것 같다.


우린 육수로 끓여낸 일본 라멘을 같이 먹었던 사이였는데,, 그녀와 종종 먹었던 밥과 술 한잔은 참으로 행복 모먼트였는데! 채식이라니 그 당시에만 해도 너무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생소했다. 그리고 도시락이라니. 정말 여러 가지로 어려운 것을 어렵게 시작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담담했고, 또 주변을 전혀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잔잔하고 무해해서, 나에게 비건 친구란 Y 과장님 같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녀를 보러 성수에 갔을 때, 맛있는 지중해식 키친에서 신선하고 맛있는 비건 밀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덕분에 지금은 일하러 갈 때, 등산 갈 때, 누구보다 신나게 친구 몫까지, 동료 몫까지 채식 도시락을 싸갖고 다닌다. 집에서 혼자 밥을 너끈히 해먹는 건 기본이다. 그리고 각자 만들고 준비한 채식 식사를 함께 나누는 비건 포트럭 파티를 15회째 아쳅토에서 진행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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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 (nau) 브랜드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nau.origin/




2020년 비건에 대한 동경을 준 책친구 O님


O님은 ‘클럽하우스’라는 음성 기반 SNS에서 만난 친구다. 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숱하게 나눴다. 이 사람을 만난 건 일생의 행운 같은 경험이다. 너무 소중한 비건 친구. 내가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그도 거침없이 행동할 때가 있다.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알리고 동참하는 글을 쓸 때, 몇 주 내내 시위 현장에서 주말을 보낼 때, 정치적 부정부패의 순간에 문제의식을 제기할 때 등등. 오랜만에 아쳅토에서 만났을 때 문득 궁금했던 것들을 물을 때였다.


“O님은 동물권, 사회적 약자, 정치 문제까지 정말 다양한 부분에서 소리를 내시잖아요. 가만히 타협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에 혹시 하나로 모이는 목적 같은 게 있나요,,?”


조용히 생각에 잠겼던 O님은 대답을 듣기 포기하려 할 때쯤 말했다.


“있어요.”

“오! 뭔가요? 정말 궁금했어요.”

“모든 폭력에 저항하는 거 같아요.”


아 그 대화를 도무지 잊을 수 없다. 내가 책에서 읽은 글 말고 실제로 들은 말 중에 가장 책 같은 말이었다. 필사하고 싶은 말. 남성 비건 이어서만이 아니다. 너무 희귀하고 진귀한 보물 같은 사람이다.


망원동을 좋아해 주셔서 아쳅토에도 와주시고, 일 년에 두 번 남짓 겨우 보는 사이지만 시대가 사회가 힘들 때 이런 사람이 친구로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계속해서 생각한다. 자기 본업도 잘하면서 정의롭고 다정한 이웃이다. 이런 사람 덕분에 나의 비건 하는 삶의 이상향이 더 따뜻하고 멋진 그림으로 채워졌다.




2022년 비건들의 고충을 알게 해 준 브라잇벨리 고객들


비건 간편식 브랜드 ‘브라잇벨리’에서 마케터로 일할 때였다. 가장 가까이에서 고객을 만났다. 또 비건을 실천하고 있는 채식하는 인플루언서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바이두부나 몽크스 델리 같은 비건 식당이나 잭슨피자 같은 논비건 가게들과 협업을 하여 비건메뉴를 개발해 출시하면서 다양한 비건 생활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천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도 해보면서 채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렇게 채식과 제품에 대한 경험을 접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가까이서 채식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건강 때문에든 신념 때문이든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어야 안심하고 공간이든 제품이든 소비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소비가 참으로 쉽지 않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속거나 교묘히 워싱된 , 꾸며진 정보로 배신감을 느끼거나 실제 문제가 생기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면 비건 페스타라는 비건 페어에서 시식을 즐기고 왔는데 우유가 들어있었다거나. 인기템이었던 비건 간편식이 알고 보면 우유가 들어간 제품이었다거나. 즐겨 찾던 비건 식당에서 갑자기 논비건 메뉴를 병행하기 시작하고는 비건 친구에게 논비건 메뉴를 잘못 내온 에피소드 같은 그런 것들.


그렇다 보니 얼마나 번거롭고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는지. 그들에게 마음 놓고 이용할 비건 공간이 얼마나 필요한 지 알게 됐다. 그리고 가능하면 나중에 어떤 공간을 만들든, 비건 친구들도 안심하고 누릴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23년 행동에 용기를 준 친구 - 행동파 건강한 비건 신디님


만나면 정말 잘 맞을 거라던 주변인들의 추천과 연결 덕에 우린 만났다. 만날 사이는 결국 만나게 된다더니 그런 거였을까? 기다렸단 듯이 대화가 멈추지 않고 이어졌고, 함께 일하는 사이가 되기까지 했었다. 그녀 덕분에 비건 &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다루는 커머스에서 마케터로 내 마지막 직장생활의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비록 구조조정으로 내가 급히 퇴사하게 되어 함께 오래 일하진 못했지만, 그 동안 나는 그녀에게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앞서 행동하는 용기를 배웠다. 출근 전엔 테니스 레슨을 받고, 퇴근하면서 러닝을 가는, 먹고 싶은 식사를 직접 솜씨 좋게 만들어 먹는 생활로 쌓아가는 건강한 삶에 대한 욕심 또한 내게도 전염됐다.


회사를 함께 다니던 시기를 건너가 나는 아쳅토를 차리고, 1년이 지나고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회사 생활을 그만하고 과천에 공간을 낼 준비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신념과 장점을 살려 무엇이든 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시작이 무엇일지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는 손두부 가게를 차려버렸다. 역시 범상치 않은 그녀 다운 행보다. 오프라인 중심으로 로컬 건강식을 지향하는 점도 멋졌다. 간편식과 수입 식재료를 너도나도 즐기는 이런 때에, 건강하고 맛있는, 그러면서도 무해한 식사를 만들어가려는 시작이 정말 대견하고 존경스럽다.


행동하는 친구는 나를 행동하는 삶으로 데려간다.





2024년 지속하게 도와주는 친구들 —수린과 가족, 그리고 책 친구들—


수린과 나는 논비건인 상태로 아쳅토를 시작했지만, 신기하게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사람 모두 자연스레 채식을 즐기게 됐다. 그리고 수린이 아이를 가졌을 때, 그러니까 내가 채식을 시작하게 될 즈음부터 그녀도 점차 육식을 버겁고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책 친구들 중 막 비슷하게 채식으로 입을 옮겨온 이도님과 윤우님, 새로운 채식 요리로 모두에게 포트럭파티를 기대하게 한 수진님이 있어서 더욱 든든하게 과도기를 건너온 것 같다. 매 달 마지막 주 비건 포트럭파티에 누구보다 정성과 호기심을 가득 들여준 고마운 사람들. 어설픈 나의 채식 요리도 늘 기뻐하고 놀라워하며 즐겨주었다.


그렇게 맛 들인 건강하고 무해한 맛에 채식 메뉴와 비건 식당을 탐색하곤, 같이 먹으러 다녔다. 이 시간들이 어찌나 다정했는지 모른다. 눈물겹게 다정했다.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최종 편집하고 있는 2025년 5월, 그렇게 친구들과 먹고 다니던 비건 음식점 한 군데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다룰 다음 에피소드에서..)



비건 식당 투어 _ 친구들과.jpg



2025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친히 읽어주고 있는 당신


사실 의외여서 더 큰 감동과 힘이 되는 건 오히려 논비건 친구들의 배려와 그들과의 지속 가능한 관계의 공존 그 자체이다. 이전의 육식 위주의 맛집투어를 함께 즐겼던 친구들, 아쳅토에 오는 책 친구들, 채식을 시작하고 나서 만난 데이트 상대들이 그랬다. 날 선 시선이나 별종으로 보지 않고, 기꺼이 궁금해해 주고 모든 데이트를 채식으로 찾아봐주는 정성에 더 큰 사랑을 느꼈다. 나도 누군가의 다름을, 세계를 이만큼 존중하고 품어줄 수 있어야겠다 생각하게 만든 경험이었다.


특히 미안하고 고마웠던 건 논비건인 가족들이다. 갑작스러운 식단 변화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희생양(?)이 되었다. 딸내미 맛있는 거 먹이는 맛에 사시는 엄마 아빠, 그리고 수린의 남편이자 내 남동생 현찬이 그랬다. 충격을 머금고 기꺼이 급격한 식단 변화를 받아들여주었다. 기존에 맛있게 먹던 요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정한 배려가 없었다면 이어가기 쉽지 않았을 거다.


(2025년 5월 이후의 덕분의 노트를 업데이트 할 필요성을 짙게 느끼고 있다. 곧,,, )








수린과 나는 이상하게도 둘 다 비건 라이프 공간을 여는데에 적극 동의하고 마음을 다지며 의지를 불태우기까지 했었다. 나와 자연을 모두 사랑하는 방법, 누군가를 착취하고 착취당해 본 경험은 누구나 있기 마련인데, 두 사람 모두 착취와 폭력에 지쳐있었고 거부감과 저항감이 어떤 때보다 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김한민 작가가 쓴 「착한 척은 지겨워」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행동의 촉발점은 아픔이야.

배고픔

빈곤

분노

각성

복수심

걸여...

사람을 움직이는 건 어떤 종류의 고통.

그런 면에서 '인생은 고'란 말은 맞는 말이지.

그래서 급소부터 파악하는 거야.

아파야 움직여 어떤 종류의 아픔이든.

아픔 없이는 안 움직여.

안 아프면 그냥 두는 게 상책이니까.



우린 아팠고, 그래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움직이게 만든 고통에 오랜 시간 절여있었으니까. 더 이상 그 고통을 병행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가장 큰 사치를 부린 거다.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는 그런 사치를. 서로에게 싫은 걸 주지 않겠다는 결심은 단순히 사치스러운 감정을 넘어 사랑하겠다는 결심일 수 있다. 다른 생명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들의 고통 또한 같은 것으로 인정하는 비거니즘은 환대의 철학이기도 하다. 이라영, 전범선 작가가 쓴 책「살리는 맛」에서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세상이 비건 지향에 관대하다면,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는 나는 적어도 먹는 것에 있어서는 지금보다 더 느슨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마주한 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엄격한 비건도 아니고 단지 고기를 안 먹는 정도만으로도 식탁에서 불편한 상황을 겪는 친구들을 하나둘 만나면서 점차 나도 그들 곁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자꾸 부당한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불편했다. 다시 말해 나는 기후위기나 동물권 같은 굵직한 정치적 사안 때문만이 아니라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부당하게 비난받는 상황을 도저히 봐줄 수 없어서 그저 내 입 하나를 이동시켰을 뿐이다. 눈치 보게 만드는 권력에 가담하고 싶지 않아서.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과도하게 공격적이다. 채식주의자, 환경운동가, 동물권 활동가에 대해 부정적 편견을 늘어놓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페미니스트를 비난하는 목소리와 매우 유사한 점을 발견한다. 비난하기 위해 왜곡한다. “나도 동물권에 관심 있지만 동물권 활동가들이 너무 과격해서 싫다”, “나도 환경에 관심 있지만 환경운동가들이 너무 공격적이라 싫다”는 말은 “나도 여성 인권에 관심 있지만 페미니스트들이 너무 과격해서 싫다”는 말과 일치한다. 장애인 인권을 지지하지만 왜 ‘우리’ 출근 시간에 방해하냐는 말을 무한 반복하는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공격’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불편하게 하지 말라!” 불편하지 않은 운동은 없다. 누구의 불편을 사유할 것인지 누구의 불편에 내 목소리를 실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살리는 맛」 p.9~10



편견 없이, 또 판단 없이 다가와 준 고마운 고객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다정한 이웃으로 다가가고 싶다. 덕분에알게 된 불편에 조용히, 또 따스하고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실으며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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