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때문이냐고 자꾸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2025. 1. 9
어쩌다가 채식을 하게 된 거냐는 질문을 수 없이 받았다. 비건 미용실과 책방을 시작했다고 할 때에는 그저 ‘비건 미용실이 뭐예요?’ 정도만 들었지. 하지만 모처럼 지인이나 가족을 만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혹은 식사 약속을 잡는 연락에서 “사실 제가 요새 채식을 해서, 고기 없이 먹을 수 있는 메뉴만 있으면 뭐든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을 때엔 오가는 대화의 온도가 정말이지 달랐다.
“그렇게 고기를 좋아하던 네가? 도대체 왜?”
고기는 이제 안 먹는 거냐고. 그렇다면 뭘 먹고 살아갈 거냐고. 고기 없이 무슨 재미로 사냐고. 네가 채식을 한다니 너무 슬퍼진다고. (응?)
질문을 받을 때 할 얘기는 늘 많았지만, 늘 말을 아꼈다. 그저 ‘건강’ 때문에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고만 두루뭉술하게 답하곤 했다. 그렇게 많은 질문을 자주 받다 보니, 실은 나조차도 어떤 순간들을 기점으로 시작하게 된 건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 그래서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내가 채식을 하며 살게 된 것, 아쳅토가 지향하는 비건 라이프를 내 몸으로 살아내기 시작한 데에는 생각보다 비자발적 이유가 컸다. 세어보니 채식을 생활에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받아들이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선언하기까지 돌다리 서너 개 정도를 건너온 듯하다.
전신마취 수술을 앞두면 큼직한 건강검진을 받게 된다. 수술 중 문제가 생기는 부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22년 가을, 자궁 근종 수술을 했다. 수술의 주목적이었던 자궁 내벽에 있는 근종의 위치와 크기를 가늠하느라 이미 몸속을 헤집는 수가지의 검사 과정을 거쳤다. 깊고 진득하게 자리 잡은 근종 덩어리들은 서너 개나 된다고 했다. 검사 과정으로도 결과를 들으면서도 충분히 괴로웠던 나는 다른 검진은 부수적인 절차 정도로만 생각하며 가볍게 따랐다. 피검사와 간 초음파 검사 등의 내과 검진을 받은 후, 소화기 내과의 호출을 받았다.
간이 안 좋다고 했다. 수술을 보류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지만 회복 과정에, 그리고 건강한 생활을 만드는 데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정도의 문제가 있다고 했다.
혈관엔 콜레스테롤이 피와 함께 흐르고 있었고, 간에는 A형과 B형 바이러스가 나란히 활발하게 활동 중이었으며, 지방간의 조짐이 시작됐다고 했다. 그제야 검사받으러 다닐 당시에 왜 그리 몸이 쳐지곤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일이 많으니 피곤해서 그렇겠거니,,' 혹은 노화로 자연스러운 체력 저하가 오는 건가 했었다.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를 몸이 계속해서 주고 있었던 거다. 내과 교수님은 착잡해하는 나에게 여러 가지 생활 습관 중 가장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항목은 먹는 생활. 즉 식습관에 달려있다고 했다. 가볍게는 유제품과 고기를 줄여 보라는 제안이었다.
“라테 좋아하시나요?”
“네. “
“당분간은 라테 대신 아메리카노를 드셔보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럴게요!”
이건 쉬웠다. 라테쯤이야. 포기 너무나 가능입니다, 선생님.
“아, 그리고 요거트 있죠? 요새 많이들 드시는 그릭요거트 그런 거 있잖아요.”
“네. 그릭요거트 무지 좋아하는데요.”
꾸덕한 식감에 빠져 주 2회는 먹던 날들이었다.
“아, 그게 좀 치명적이에요.”
“헉.”
“ 그거를 그럼 앞으론 한 달에 한두 번만 드시는 걸로 해보시면 어떨까요? 너무 걱정 마시고 가볍게 운동하시면서 식사 조절 해보시고 수술 후 1개월 뒤에 보시죠!”
건강을 생각한답시고, 무가당, 즉 제로슈거 제품을 즐겨 찾던 시기였다. 당을 아무리 줄인 들, 전혀 예상치 못한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이, 일단 유제품 자체가 나에게 만성 질환이란 손님을 조용히 끌고 오고 있었다니.
물론, 내 자궁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 이유가, 아파서 퇴사하게 됐던 첫 홍보회사 대표님의 말처럼 “네가 아픈 건 네가 잘못 살아서 아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나를 돌보지 않고 포기하며 잃은 것이 명확한 날들은 냉정하게 돌아보게 됐다. 자야 할 때 잠을 자지 않고, 먹어야 할 때 미뤘다 몰아서 먹거나, 시간이 촉박하니 가공식을 뱃속에 주입하고, 건강하게 풀지 못한 스트레스를 친구들과 함께, 혹은 홀로 늦은 밤에 자극적인 조미를 더한 음식들로 위를 채우며 위로했던 시간들 말이다.
첫 회사로 시작해 5년 동안은 사람이 배가 고프면 당연히 위가 타들어갈 듯 쓰리고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인 줄 알았다. 동물이라면 응당 거쳐야 할 소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야근 후 다음날 출근길 지하철만 타면 아주 발작스럽게 배속에서 장이 화장실을 부르짖는 게 부지기수였고, 그렇게 자주 탈이 나는 것 또한 유전이거나 자연스러운 체질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위와 장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나마 2-3년 전부터는 지속 가능한 삶과 관련된 브랜드로 이직해 일하며 간헐적 채식, 혼밥 채식 등을 건강을 위해서가 아닌 신념의 이유로 시작해 왔기 때문에 소화기 장애라도 줄어든 것일 테다.
회사는 생각보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는 걸 3년마다 크게 한 번씩 병을 얻어 휴직이나 퇴직을 거치며 알게 됐다.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일 하다 나를 잃었을 때 회사가 나에게 돌려준 건 “혹시라도 회사탓 하지 않길 바란다”는 말 뿐이었으니까. 내가 없으면 당장에 모든 게 멈춰버릴 것 같던 회사는 생각보다 나 없이도 그럭저럭 잘 돌아갔다. 그런데 내 몸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나를 놓아버리고 지내니 몸이고 마음이고 구멍이 나기 시작하더니 앞다투어 파업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나에겐 누구보다 내가 절실히 필요하다. 나를 건강하게 돌보고 살펴 줄 나. 내가 아플 땐 그저 내가 나를 돌봐야 한다. 회사도 동료도 나를 돌보아 줄 수 없다. 돈을 벌었으니, 경험을 쌓았으니 그래도 가치가 있는 고통 아니냐고? 물론 경험은 지금도 참으로 귀하다. 그때 배워온 것들은 하나같이 독립해서도 귀한 도움이 됐다. 하지만 돈과 건강은 글쎄. 한 번씩 크게 아플 때마다 무급으로 최소 6개월은 쉬게 됐는데, 그럼 연봉의 절반이 날아가는 거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 돈을 쓰고, 또 생활을 하는 데에도 돈이 든다. 그렇게 사실상 1년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잃는 것과 다름없는 손해와, 고통스럽고 더딘 치료의 시간을 거치게 되는데도? 게다가 그렇게 얻은 병이 완치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도? 누군가는 그럼에도 반복하겠다 할 수 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러지 않기로 했다. 건강한 삶으로 나를 돌보기로 했다.
그렇게 유제품 금지령을 받고 충실히 우유와 요거트를 멀리하며 지내길 며칠 후, 냉장고 비움을 실천하겠다며 집에 있던 간편식(이라고 쓰고 술안주라 읽는) 막창 도시락과 육개장을 꺼내 데워먹은 날이었다. 역시나 느끼하고 자극적이었지만 이렇게 먹어치우고(?) 다신 내 냉동고에 이런 음식을(?) 넣지 않겠다 나름 다짐하며, 그리고 또 한편으론 이 음식이라도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었다. 여전히 세상엔 저 영양 고칼로리 간편식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넘쳐나고, 애초에 한두 번의 유해한 식사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 아님을 객관적으로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하튼 복합적인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려고 그릇들을 개수대에 두고 물을 틀었다. 그때 그렇게 물을 틀다가, 별 것도 아닌 두 개의 간편식 설거지가 이렇게 길어질 일인가 싶어 투덜대며 수세미를 문지르던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준비되지 않은 채 설거지를 하다 비자발적 두 번째 각성이 시작 됐다. 그 하얗게 굳은 동물성 지방층과 그릇과 개수대에 눅진하게 눌어붙고 배여서는 2차 3차 거품질과 뜨거운 물로 헹구어내야 닦여나가는 빨간 기름들이 보여준 느끼한 장면이, 내 혈관에서 굳어가고 있는 콜레스테롤과 노폐물이 주연으로 얽히고설킨 정체극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는 상상과 묘하게 합쳐졌다. 그렇게 충격적인 내 혈관 들여다보기의 간접 경험을 시켜준 설거지는 고작 두 가지 메뉴를 먹고 난 것들을 말끔하고 개운하게 씻어내고 정리하는 데 30분이라는 시간을 소모시켰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이렇게 두 번 세 번 뜨거운 물로 씻어내고 이중 삼중 설거지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간편식을 먹고 난 뒤의 양념과 기름이 가득 베어든 플라스틱과 비닐의 처치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말이지 만지기도 싫어졌다. 전남편이 사다 뒀던 냉동 고기들도 보기 힘들어졌다. 건강을 위해서도, 신념 때문에도 채식을 지향하고 있던 나에게 항상 가장 카니보어*적인 메뉴를 제안하던 그와의 식사도 점점 버거워졌다. 그저 유행하는 것이라면, 혀에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돈과 시간을 흔쾌히 투자해 위장에 무리가 가더라도 기꺼이 찾고 누리는, 또 그래야 먹잘알*로 인정받는 미식인들의 세계도 점점 빠져나오고 싶어졌다.
어쩌면 무언가와 이별하는 과정이 늘 이랬던 것 같다. 소를 키우는 데 먹일 곡물 사료를 재배하느라 사람이 마실 물과 살 땅을 잃고 있다는 얘기를 접한 뒤부터 스스로는 소고기 구매를 멈추게 된 6년 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육식을 멈추면 어떤 것으로 영양을 채우며 살지? 어떤 산업이 동물성 단백질이 주는 영양소를 대체해 줄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식용곤충 산업과 대체육 산업을 공부하던 5년 전부터일지도 모른다. 비건 식품 브랜드로 이직을 하며 로컬 채식을 시도하기 시작했던 3년 전이 시작이었을 수도 있다.
완전하지 않지만 긴 시간 동안 내가 머지않아 나와 자연을 모두 해치는 방식의 식생활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걸 몸속 장기들도, 눈과 귀로 보고 들으며 담아둔 재료로 만든 생각요리들로도 결과를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끝까지 싸워 본 것이다. 미련 없이 놓을 수 있을 만큼 미련 맞게. 해 볼 만큼. 그리곤 견딜 수 없어지는 상황이 됐을 때, 미련 없이 마음이 떠나게 되는 거다.
그렇게 드릉드릉 시동을 걸고 있던 22년 겨울, 나의 채식 걸음마 시기에, 보고 듣고 읽은 두 개의 콘텐츠가 본격 채식생활로의 전환에 가속도를 붙여줬다. 채식화에 부채질을 한 것이다. 하나는 영화 ‘아바타’로 유명한 제임스 캐머런이 제작에 참여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더 게임 체인저스>이고, 또 하나는 먹는 행위 자체를 사회, 정치적으로, 또 철학적으로 사유하게 도와준 ‘캐롤린 스틸’의 책 「어떻게 먹을 것인가」이다.
<더 게임 체인저스>를 어디서 추천을 받게 된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글을 읽고 저에게 추천해 주신 분이 계신다면 알려주세요. 감사의 보답*을 하겠습니다.) 채식을 왜 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또 쉽게 납득하고 실천해 볼 수 있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채식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도 보면 좋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전남편과 함께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더 게임 체인져스>를 시청했다. 실제 근육의 크기와 기능이 매우 중요한 스포츠 스타와 같은 유명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역사적인 기록까지 검토하고 연구한 흔적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가장 개인적으로 충격과 설득으로 다가왔던 내용은 채식이 지닌 회복의 힘에 대한 것이었다. 자영업을 시작하며 많은 걸 스스로 챙겨야 하는 분주하고 산만한 정원사로 살아가려니 도통 체력이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내 에너지와 활력은 그보다 더 대중없이 수준 미달인 순간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채식을 한 사람과 육식을 한 사람의 수면의 질을 분석하고, 다음날 회복력을 비교하는 실험을 했을 때, 월등히 채식을 한 이들의 활력이 빠르고 완전하게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결심이 섰다. 나에겐 지금 채식이 답이라는 것을.
반신반의하며 보던 전남편은 쉬는 날을 더해도 회복과 근성장이 모두 좀처럼 잘 되지 않아 나와 같은 파트에서 자극을 받고 있었는데, 운동 성과, 힘과 속력 두 가지 면에서 모두 채식을 오래도록 지속해 온 이들의 것이 월등히 우수한 결과를 내는 걸 보며 갑자기 자세를 바로잡고 화면에 집중했다. 몇 천년 전 스파르타 고대 정예 무사들 또한 채식을 했다는 장면에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 남성들을 대상으로 정력 실험까지 벌인 장면을 끝으로 그는 말했다.
“헬스인들에겐 이것이 공포영화야. 지금까지 모두 속았어.”
근육을 키우기 위해, 건강하고 활력 있는 삶을 위해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정언명령과도 같은 주장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영화임이 분명했다. 냉동실을 언 동물로 가득 채우던 그는 이틀 정도 나와 같이 채식을 하고, 비건 인증을 받은 수분크림을 사다 주기도 했다. 2주 동안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나의 두부와 가지, 호박 등의 채식 한 끼를 위한 재료들을 사 오기도 했다. 그렇게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채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그는 차츰 육식의 삶으로 돌아갔다. 채식을 하는데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먹는 것이 나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계속해서 연쇄적 각성과 충격을 이어가고 있던 차에, 사두고 몇 장 읽지 못했던 벽돌책 하나를 꺼내 읽었다. 책이 나를 불렀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이런 순간을 나는 ‘시절 책’을 만났다고 하는데, 딱 이 책이 나의 시절책이 되어주었다. 책「어떻게 먹을 것인가」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왜 음식을 먹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일까? 음식이 저렴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산업화로 인해 우리는 음식의 진정한 의미를, 음식이 자연에서 온 살아 있는 특사임을 잊었다. 자연을 착취할 자원으로 대하면서 그 가치를 낮추어 보았다. 인간이 마주한 딜레마는 살기 위해 반드시 자연을 이용해야 하지만 그러면서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농부들은 항상 자연을 이용해 왔지만 이런 개입이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자연 앞에서 묘책은 답이 될 수 없다. 자연계는 본질적으로 복잡하며 상호성의 원리를 통해 균형을 유지한다. ‘좋은’ 미생물은 자연적으로 병원균과 싸우고 자연의 포식자는 해충을 먹어 치우며 식물은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파이토케미컬을 방출한다. 자연은 복잡성을 통해 회복력을 키우지만 농업은 오래전부터 자연의 단순화를 목표로 삼았다. 지구상에 있는 약 30만 종의 식용식물 중 17종만이 현재 인류 식량의 90퍼센트를 공급한다.
처음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도대체 왜 채식인가요?”라는 물음에 조심스러웠던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나의 태도와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신중했던 것 같다. 말을 아끼고 싶었다. 그리고 쉽게 판단받고 싶지도, 누군가에게 쉽게 죄책감이나 불편함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단순히 “고기를 먹으면 나쁘다. 채소를 먹으면 착하다”의 이분법적 문제로 만들고 싶지도, 소중한 이들과 다투고 싶지도 않았다. 동물을 착취하는 행위가 나쁘다는 것을 알리고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무엇을 먹느냐로 서로를 판단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채식을 하는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과격한 운동주의자로 몰아가는 것도 반대하지만, 채식을 한다는 이유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도 격렬히 반대해 왔다.
현대 동물권 운동을 촉발했다고 인정받으며, 동물 해방 운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싱어’조차, 자신은 비건 지향(flexible-vegan), 즉 완전한 비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신은 “거의 비건이지만, 비거니즘을 종교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 내 목표는 여전히 처음 채식주의자가 되었을 때와 같이 소비로써 비윤리적 행위를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저 내가 처음 채식에 관심을 갖고, 아쳅토를 비건 라이프 살롱으로 시작한 이유와 이어진다.
필요한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우리의 욕망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얻어지는 것일 수 있음을 기억하기. 그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나와 자연을 모두 사랑하며 살기.
기술 산업 세계에서, 경쟁을 통한 성공이 모두의 꿈처럼 여겨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점차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을 소홀히 여기고 있지 않는가. 아니, 우리가 먹고 입는 것, 서있는 곳이 어디로부터 어떻게 우리 몸에 와닿는지의 호기심과 관심조차 외면하게 된 것 같다. 저자는 우리가 그 결과로 음식이 대체로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형편없는 시토피아*에 살게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기후변화와 대량 멸종, 삼림 벌채, 토양침식, 물 부족, 어류 자원 감소, 오염, 항생제 내성, 식이 관련 질환 등 눈앞에 닥친 여러 거대한 시련은 음식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 우리의 실패에서 기인한다.”
또, 세상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철학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하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무엇이 좋은 삶을 만드느냐 같은 질문 말이지요.”
저자는 기술과 철학이 우리에게 모두 필요하며, 상호 배타적인 분야는 아니지만, 둘 사이에 깊은 골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했다. 너무 깊이 공감이 됐다. 무엇이 좋은 삶을 만드는가? 저자는 둘 사이의 골을 이 책에서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메워보겠다며 말했다.
왜 음식인가?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행동해서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단연코 가장 강력한 수단이 음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야심 찬 운동가로 비건 라이프를 꿈꾼 것이 아니다. 나의 일과 삶을 계속 건강하게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내가 살고 있는 나로서의 본연의 나(Nature)와 내가 속한 나 이외의 모든 자연(Nature)이 모두 공존해야만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나의 삶을 잘 살아보겠다는 발버둥으로 시작한 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처럼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비자발적으로 시작하게 된 비건 라이프가, 나의 삶만큼은, 그리고 나와 연결된 사람들의 삶만큼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는다. 그런 근거 없는 기세로 논비건(Non-vegan) 일 때 비건 미용실을 차렸고, 비건 식품 브랜드에서 일했던 거다. 그리고는 결국 나도 비건 라이프로 입 하나를, 선택의 기준 하나를 옮겨 왔을 뿐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메모해 둔 생각을 옮겨 적어둔다.
다른 것과 상관없음은 같지 않다.
우린 다르지만 함께 진화해 왔다.
나와 자연, 나와 타인.
다른 모습과 삶을 가진 모두가
다른 모습으로 , 하지만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의지하며 도움을 받으며 , 서로에게 깃들며 살아왔다.
우린 그것을 모른다고 말할 순 있으나 부인할 수는 없다.
오늘도 안 될 이유가 차고 넘치지만, 누군가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여전히 폭력적이지만, 조금은 더 다정한 생각과 말, 행동의 선택을 고민한다. 그리곤 더 나은 삶으로의 씨앗이 될 이야기를, 마음을 심는다.
✴︎카니보어 [ carnivore ]
: 원래는 육식을 하는 동물을 뜻하는, ‘육식 동물’이라는 뜻이지만, 식이요법 종류의 하나로도 쓰인다. ‘카니보어 식단’은 오로지 육류와 동물성 식품만을 먹는 식이요법으로, 채식과는 정반대 되는 개념이다. 카니보어 다이어트 식단에서는 식물성 식품 섭취를 금지하는데, 육류 섭취도 되도록 '적색육(Red Meat)' 섭취가 권장된다.
✴︎먹잘알
: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줄임말이다. 반대의 의미로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약어인 알못이 있다.
✴︎ 감사의 보답
: 이 글을 처음 썼던 2025년 1월에는 「더 게임 체인저스」를 누가 추천해 줬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기 때문에 저렇게 썼다. 그런데 써놓은 글을 읽은 수린이 어이없어하며 "언니, 진짜 누가 추천해 줬는지 기억 안 나요? 내가 추천해 줬잖아요~!! 보라고 보라고 몇 번이나 얘기해서 언니가 본 거잖아요~"라고 말해줘서 밝혀졌다. 해당 문장을 지워도 됐지만, 그 당시엔 정말 누군지 알고 싶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남겨두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보답하지? 맛있는 비건 파스타로 보답하리다.
✴︎시토피아 [ Sitopia ]
: 시토피아는 <어떻게 먹을 것인가> 저자 ‘캐롤린 스틸’이 우리가 음식으로 형성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 만든 용어다. 그리스어로 ‘음식 sitos’과 ‘장소 topos’의 합성어다. 시토피아는 이 책의 마지막 장 이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