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김에 열렬히 망해버리는 사람

"악.. 으헝.. 너무 아파"

by 삶예글방


2025. 1. 30



여느때와 같이 알라딘 어플을 이래저래 돌아다니다가 눈에 거슬리는 제목의 책을 봤다.


『넘어지면 어때,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되지』


보통때와 같은 나였다면 수긍하며 책 소개를 읽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25년 1월의 마지막주를 살고 있는 나에겐, 냉소와 반감 가득한 감상만 흘러나왔다.



‘넘어지면 어떠냐고? 넘어지면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도 자영업자에겐 사치스런 공상이야.’


‘넘어지면 부셔지고, 너무 아파서 머리와 몸이 돌처럼 굳어버리던걸? 너무 살짝 넘어진 것 아닐까? 아니면 나처럼 아스팔트에 넘어진 게 아니라 폭신한 모래나 트럼플린 위에서 넘어진 거 아닐까?’


‘아니 넘어지는 것도 계속되면 그건 좀 망한 거 아니야?’



왠지 시작부터 열렬히 망한 것 같은 2025년의 첫 달 이었다.






나도 내가 넘어지면 오뚝이처럼 곧 훌훌 털고 쉬이 일어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회복 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 나를 두고 하는 얘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달 간 연속으로 넘어지며 망한 건가? 싶은 구간들을 지나면서 내 회복력에 대한 메타인지를 갖추게 됐다. 넘어졌을 때, 바로 툭툭 털고 일어나기는 커녕 엎어진 채로 ‘악.. 으.. 헝.. 너무아파..' 같은 신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한동안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과, ‘멍청이냐..? 왜이러냐.. 잘났다 증말..' 따위의 말이나 주문처럼 자책을 중얼거리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한 번 넘어졌으니 조금 더 빨리 만회 해보려다 더 크게 미끄러질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미끄러지면 중심을 잃기 쉽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면 더 아프게 더 세게 엎어진다는 걸 알게 해준 망함의 언덕들을 지나왔다. 그렇다. 일로도,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많이 넘어지고 열렬히 망해버린 기록들이다.




첫 번째 망함 구간 - 미달이라니


아쳅토의 멤버십 독서모임 두 팀 중 한 팀, 수요살롱이 한 달 쉬어가게 됐다. 기존 멤버들에게 갑작스런 불참 사정이 생겼고, 내가 신규 모임원 모집 홍보 타이밍을 놓치는 실수까지 해버려 인원 미달로 마감이 됐다. 아쳅토에서의 독서 모임을 12기 째 운영해왔지만, 느리지만 조금씩 계속 참여 인원이 늘어가고 있던 터라 인원이 부족해 모임을 줄이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마음이 쓰렸다. 물론 모임이라는 게 언제든 변수가 있을 수 있는 거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게 사업이라는 걸 머리로, 스타트업 회사 생활의 경험으로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사업이 되어 마주해보니 웃는 입꼬리에 쓴 맛 나는 침이 자꾸 베어나오고,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려다가도 한숨만 계속 나왔다.


이룬 것도 없이 방심부터 시작한건가? 안일해진건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런듯도 하고 아니라고도 했다.


이러다 슬슬 인원이 조금씩 줄어 망하게 되는 건 아닌가?

상상만으로도 머리카락이 한움큼 빠지는 것 같았다. 거울을 보니 눈 밑이 연필심처럼 어두워 진 것 같아 보였다. 걱정 반, 자책 반 켜켜이 쌓이는 착잡한 마음을 누르고 다음 달 부턴 더 잘 해보자! 며 힘차게 나선 외출길이었다. 동탄에 사는 희진이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모처럼 만나는 거라 신이 났고, 약속 장소였던 ‘비건이즈힙*’의 마지막 영업일 전 방문이라 설레는 마음이기도 했다. 하지만 몸에서 누가 산소랑 활력을 쭉 뽑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힘이 전혀 나지 않았다. 이러고 있을 땐가 싶었다. 그저 다음 달 어떻게 만회할 지 고민하며 개선안이나 기획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따져묻고 있는 목소리도 들렸다. 아쳅토마저도 가고 싶지 않고, 집에서 쉬고만 싶었다. 그치만 집에 있으면 하지 않고 있는 일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 그저 쉬기만 할 수도 없었다.



비건이즈힙*

기가 막힌 비건 크로아상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던 비건 브런치 카페. 처음엔 서울 경동시장에 있다가 경기도 동탄으로 이사했는데, 25년 1월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했다. 다시 맛보지 못한다는 게 천추의 한이다. 마지막에 영업종료 전에라도 다녀와서 어찌나 다행인지.




두 번째 망함 구간 - 다행히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도착지에 다와서 활기차게 차로 뛰어가려다가 대차게 넘어졌다. 안개비가 내려 빙판이 되어버린 보도블럭을 밟고 미끄러진 것이다. 나는 달려가던 자세 그대로 공중부양하여 낙법 자세, 혹은 오른쪽 사이드 플랭크 자세 같기도 한 모양새로 아스팔트 도로 바닥에 착지했다. 다행히 오른쪽 손톱이 찢어지도록 받쳐 준 덕분에 얼굴은 땅과 부드럽게 맞닿았다. 계단을 꿇은 무릎으로 내려가 보기도 하고, 킥보드를 타다가 잔디밭으로 떨어져나간 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한 건 오랜만이었다*.


한 동안 아스팔트 바닥과 얼굴을 맞대고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음에도 무릎이 너무 아프고 숨이 쉬기가 힘들어 ‘윽,,,, 하,,,,’ 소리만 한참 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상하게 절도있게 넘어져서 엎어져 있는 자세를 스스로 감상하며, 그간 -망원동의 자랑이자 사랑스런 이웃인 그룹운동 센터-킵에서 해 온 운동 덕분에 이정도로 가볍게 다친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넘어지는 순간부터 망상과 감상을 더한 신음소리를 그치고 일어나는 순간까지 다행히 눈물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오토바이에 걸쳐서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남자의 시선 때문에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기어이 참은 것 같기도 하다.


숨도 좀 쉬어지고 일어나보니 걸을 순 있음에 감사하며 희진이를 만났고, 비건이즈힙에서 눈물나는 감자수프와 크로아상 버섯 샌드위치를 먹으며 넘어짐이나 망함 따위는 전혀 상관이 없는 즐거운 이야기를 가득 나누고 돌아왔다. 약국이나 병원에 가보라는 얘기를 가볍게 넘기며 ‘자주 넘어져 이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며 집에 왔다. 긍정적인 생각과 안일한 대처에 비해 넘어진 여파는 꽤 심하게 남았다. 왼쪽 무릎엔 해파리같이 덜룩하게 퍼진 검푸른 얼룩과 피떡진 상처를 남겼고, 오른쪽 가슴엔 격한 통증을 남겼다.



오랜만이었다*

대차게 넘어진 것이, 그리곤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처음은 홍보대행사 다니던 시절 출근길이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마자 환승을 위해 뛰쳐나가다 열차를 타러 달려오던 남자와 정면으로 세게 부딪혔다. 나 혼자 왼쪽으로 붕 날아가 떨어졌고, 한동안 일어나지 못해 같이 출근하던 친구가 119를 불렀다. 응급실과 깁스엔딩으로 끝났던 기억이다.



이후 괜찮아질 줄 알고 적당히 밴드만 붙이고, 다음날엔 파주로 전시회엘 다녀오고, 사흘 후인 금요일엔 킵으로 운동을 하러 갔다. 스스로를 기특히 여기며 간 마음과는 다르게 워밍업부터 숨이 차고 드러 누웠을 뿐인데도 폐가 조이고 가슴이 욱씬거리며 아팠다. 운동 스승님인 수연님께 말씀 드렸더니


"아니,, 숨 쉬기가 힘드신거면 갈비뼈에 미세 골절이 있는 것 같은데요,,?"

라고 하셨다. 아뿔싸. 골절이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멍도 없었고, 욱씬거리는 정도만 이어지길래 며칠 이러다 말겠지 생각했는데,, 미세 골절이 의심된다니,, 갑자기 겁이 덜컥 나기 시작했다.


바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면 좋았겠지만 토요일 오픈부터 마감까지 백화점 매대를 지켜야하는 케익순이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러 여의도로 가야 했다. 그렇게 토요일 아침이 됐고 난 꾸역꾸역 여의도 더현대 서울 지하 1층 케이크 가게 매대에 서있었다. 서서 일 하는 열시간 내내 숨 쉴 때마다 폐를 찌르는 듯한 갈비뼈 통증과 시린 무릎을 사리면서 디저트를 포장하고 팔았다. 오른쪽 가슴과 팔이 불편해서 왼쪽 팔만 써서 매대를 닦다 보니 중심을 못잡아서 그런지 자꾸만 발 받침대 사이로 발이 빠져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 했다. 이 왠수같은 발 받침대. 처음부터 맘에 안들었다. 230밖에 안되는 내 발 사이즈보다도 좁은 플라스틱 스툴놈. 애꿎은 스툴에 욕지꺼리를 읊조렸다.


헌데 이 스툴이 무슨 잘못인가. 이런 연약한 플라스틱 친구들을 나같은 사람 발 밑에 듬성듬성 보조대랍시고, 발 받침대랍시고 설치하게 둔 케익집 사장이 잘못 아닌가. 피딱지도 채 생기지 않은 무릎을 두 번이나 또 쇼케이스의 날 선 은색 손잡이에 찧었다.


이번 생엔 사라지나 싶었던 생리통까지 소문 듣고 온건지 겹쳐 왔다. 그냥 다 때려치고 도망가고 싶었다. 서러워져서 눈물 가득 채운 일렁이는 시야로 발치를 노려보면서 감정을 식혔다.


식지 않아 여전히 뜨겁고 벌게진 눈으로 꾸역꾸역 눈꼬리를 내리고 입꼬리는 올리며 케익을 팔았다.




세 번째 망함 구간 - 안녕 이제 그만, 너를 보내야지


실은 갑작스레 아쳅토 이사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까지 겹쳐있었다. 할 지 말 지 결정하기 위해 매물을 먼저 좀 보기로 했다. 해야 할 일들을 일단 덮어두고, 2주 넘게 틈틈히 찬바람에 부동산 투어를 하루에 너댓개씩 틈틈히 다니고 있었다. 몸 전체가 성이 난건지 피부까지 못살겠다 소리를 질러댔다. 팔과 다리, 두피까지 피부 건조증인지 알러지인지 무언가 하여간 옷과 닿는 모든 피부에서 반기를 들고일어났다. 찬바람이나 인조 원단에 닿는 곳마다 거대한 모기에 물린 것처럼 온통 붉게 부어오르고 간지러웠다. 내가 성경의 '욥'이 된 것 같았다. 머리부터 팔과 다리를 온통 긁고 때리느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진짜 벌받는 건가 싶어( 무엇 때문에? ) 무섭고 간절한 마음에 3년만에 찬송가도 찾아 들었다. 마음은 어딘가 애잔해지며 감상에 젖었지만 피부는 여전히 성나있었다.


겨우 잠이 들라치면 돌아 눕다가 갈비뼈가 아파 또 눈이 떠졌다. 반대로 누워야지 하고 돌아 눕다가 왼쪽 무릎을 벽에 찧고 또 잠에서 깼다. 그렇게 이틀 삼일 밤을 꼬박 새다시피 보냈다. (다행히 지금은 피부 친구들만큼은 잠잠히 평화를 찾았다. 이틀내내 순면 속옷만 입고 생활하면서 외출 했다가 찬물로 샤워하고 온 몸에 -두피까지- 로션 열심히 발라서 다 나았다. 처음 겪는 일이지만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아서 그렇게 했는데 신기하게 싹 사라졌다.)


그리고는 화요일 아침, 망원역 근처 정형외과에 갔다. 넘어진 지 일주일 만이었다. 넘어져서 좀 이곳 저곳 아파서 왔다는 나의 말에 가볍게 무릎부터 볼까요? 하며 바지를 걷어본 의사 선생님은 "에~?? 아니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왜이리 태연하게 이야기해요~ 세상에. 많이 아팠겠다~" 하며 세상 깊은 공감력을 보여주셨다. 이름부터 '나은'으로 시작해서 끌렸는데 아주 라포(rapport)형성을 잘 하시는구나 싶었다.


엑스레이와 초음파만 한시간 반 동안 찍었다. 긴 대기시간은 당연히 명절 때문인 줄 알았지만 엑스레이 기계가 하필 내 순서 앞에서 고장나서 대기 시간이 길어진 거라 했다,, 아무튼 이것도 망한 기분을 더해주었다. 망한 기분과는 달리 다행스럽게도 심각한 골절은 어디에도 없었고, 아주 미세한 실금으로 보인다며, 어짜피 갈비뼈 미세 골절은 입원도 깁스도 없으니 알아서 조심하고, 이상태로 운동을 왜 갔냐며,, 2주간은 최소 운동을 하지 말고 잘 쉬라고 하셨다.



네 번째 망함 구간 - 거절은 유예를 남기고


현재 일하는 케이크 가게는 망원과 여의도를 오가는 출퇴근길이라, 집과 가까운 곳으로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할 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던 참에 좋아하던 망원동 근처 비건 브런치 카페에 주말 홀서빙 자리를 구한다는 공고가 떴다. 설레는 마음으로 (왜?) 지원했다. 감사하게도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와서 기쁘게 다녀왔는데, 최종적으로는 나보다 경력이 풍부한 지원자를 뽑았다는 소식을 건네주셨다. 내가 사장이라도 진심이고 팬심이고 활력이고 간에 경력을 우선으로 두고 뽑을 것 같아 너무나 납득이 됐다. 그렇지만 씁쓸했고, 역시나 이번에도 망한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수 없었다.


덕분에 설레는 맘으로 셀프 생일 선물을 주려고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 19만 8천원 원어치의 사랑스런 위시 북 리스트는 결제를 또 한 달 유예 당했다. (중고 서적들은 그새 또 품절이 뜨겠지,,) 알바 이직도 실패 했고, 검사비와 치료비로 6만원 이상 썼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자제 했다. 신나게 열올리던 운동도 2주 금지령이 내려졌겠다. 명절 기간에 각잡고 하려고 준비했던 대청소 또한 한 달 미뤘다.


심지어 오늘은 가족 모임이 있는 줄 알고 하루를 통으로 비워뒀는데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이렇게 매일 다이어리를 보고 적는데 이렇게 날짜를 확실히 헷갈릴수가 있나? 도대체 어째서? 답이 나오지 않는 날들이기 때문에 대답을 찾는 길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로써 1월의 거의 모든 계획은 틀어졌다.






맘편히 혼자 드라마나 보고 책이나 읽자며 일주일만에 넷플릭스를 켰다. 표고버섯 가득 넣은 두유크림파스타를 막 완성해서 옥씨부인전 마지막회를 켜놓고 한 젓가락 하려다가 눈물 콧물을 사이드로 가득 삼켰다. 스포일러를 당해 전개를 알고 본건데도 그리 울컥 했던건 뭐 때문이었을까?


지키고 싶은 주인이자 벗을 위해 억울한 죄를 쓰고 목숨을 다한 노예 만석이 때문이었을까? 이런 저런 말못할 비참한 고생을 겪으면서도 삶을 지속하겠다고, 또 그와중에 다른 이들을 위해 몸을 던지는 노예 출신 변호사 구덕이의 용기 때문이었을까? 모르겠다.


가상 인물이지만 저런 고초를 겪는 이도 인권운동가 저리가라 할 정도의 투혼으로 저리 끝도 없이 망하는데 또 일어서서 다시 살아내는데 내가 좀 망한다고 신나게 살지 못할 일이 무언가 싶어서였는지도? 아니 뭐 그런 무모한 구덕이를 절절하게 위하며 응원해주는 정인 송서인이 곁에 있는 삶이 사무치게 부러워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살 온기를 잃게 만드는 매서운 날들이었다. (물론 드라마 속 노비 구덕이만큼은 전혀 아니다.) 그치만 체감하기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추운 길을 걷다가 불시에 우박 폭설을 맨 얼굴과 몸에 맞는 기분으로 따갑고 아프고 괴로운 날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망한김에 굳어버린 몸을 그대로 눕힌채로 '에라 모르겠다'의 모드로 망함 회고를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달간의 사진첩과 일기를 돌아보니 코끝 찡하게 만드는 아린 매운맛으로 정신 번쩍 들게 하는 고마운 마음들이 이렇게나 빼곡하다. 눈 시리게 아름다운 순간 순간의 추억도 이렇게 한가득이네.


삶은 이렇게 하찮은 나를 비웃듯이 망하게 해놓고선, 괘씸하게 감동을 준다. 죽지도 못하게. 또 미련하게 살아보고 싶어지게 한다. 가장 어이없는 감동은 어젯밤 아쳅토 헤어살롱 고객이자 협업 파트너로 친해진 가영님의 초대로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 찾아왔다. 질문지도 준비 않고 느닷없이 시작한 인터뷰는 도리어 나에게 질문과 답을 주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얼마나 굳이굳이 계속 기어이 ‘함께’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사람들의 삶에 이토록 관심이 많은지 물어보다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해 못할 무모한 일을 계속 벌리면서도, 오래된 관계와 일상에 금이 가는 상황이 되더라도 나아가려는 마음을 말이다.


내가 사람과 책에 던지는 물음표는 늘 내가 예상하거나 기대한 것 보다 더 큰 느낌표로 되돌아오곤 했다. 그것은 주로 내가 삶에 묻고 싶던 것들이었으며, 좀처럼 혼자만의 고민으로는 찾기 어려웠던 것들이었다. 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같은 것들이었다. 혹은 요즘처럼 살기 힘들어질 때엔 어떻게 생을 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보여주거나 희망을 그려주기도 했다.



책 친구들과 함께했던 아쳅토 산악회, '주말엔 숲으로' 1회 모임을 했었다. 그 때 청운문학도서관에서 빌려온 문보영 작가의 「일기시대」라는 책에서 나온 망함 구간 이론은 나의 넘어진 날에 어찌나 큰 현실감각과 함께 위안을 주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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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를 넘어가는 과도기는 이처럼 과도기에 들어서기 전보다 망한 외모를 하고 있다. 각질을 불린 후 일으켜 세운 상태처럼, 나는 이 구간을 망함의 신비 구간' 이라고 부른다. 예전에 친구가 '너 요즘 춤이 왜 이 모양이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아, 지금 망하는 구간이거든. 망함을 단축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망하는 중이야."라고 대답했었다.

(…)

망함의 효과는 직빵이다. 다만 망함 구간이 종료될 때까지 눈 감고 귀 닫고 존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실질적으로 망해야 하고, 열렬히 망해야 하며, 정말 망했다고 깜짝 속아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망함의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요즘 나는 정말 내가 좀 망한 것 같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는데 이게 순수한 망함인지, 도약의 전조로서의 망함인지 모르겠다. 다만 후자를 믿어 보려고 애쓸 뿐이다.




이번의 내 넘어짐은 도약 직전의 망함 구간인걸까? 아니면 그저 순수히 망해가는 걸까? 알 순 없지만 망할 때 망하더라도 열렬히 실질적으로 망하고 도약하려 애써볼테다.. 그리고 아무리 망할 때 망하더라도 장바구니의 책들 중 절반이라도 주문하겠다.. 그리고 일기시대는 필히 구입.. 메모..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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