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방울방울

바람 따라 길 따라 굽이굽이 달리는 마을버스의 추억

by 삶예글방


얼마 전 아내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데이트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조치원에 들렀다 가려고 보니 마을버스 노선 75번이 생각난다. 승용차로 버스 노선을 달리며 75번에 담긴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 길로 들어선다. 평소 아내는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늘 재밌어하고 좋아해 준다. 난 그게 참 고맙다. 그래서 더 신나게 옛날이야기를 늘어놓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을버스 75번은 조치원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조치원역, 조치원시장, 월하리, 와촌리를 거쳐 용암2리 마을회관에 도착한다. 중간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출발하여 용현리, 송학리, 평기리, 송문리를 거쳐 장군면사무소까지 운행하는 노선이다. 현재는 노선이 조정되어 짧아졌지만, 처음 이 노선을 배웠을 땐 훨씬 더 긴 노선이었다. 그만큼 운행 시간도 길다. 족히 1시간은 넘게 걸리는 노선이다. 그러니 타는 승객도 많고 정류장마다 얽힌 사연도 많다. 특이한 점은 중간시간을 맞추는 용암2리를 기준으로 승객의 생활권이 나뉜다는 점이다. 용암2리가 38선인것마냥 양쪽으로 나뉜다. 조치원에서 출발하며 탔던 승객 대부분은 용암2리 마을회관에 가기 전에 내린다. 그리고 중간시간을 맞춰서 다시 출발하면 새롭게 타는 승객 대부분이 장군면사무소에 내려서 공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장군면의 원래 지명은 장기면으로 공주시에 속해있었지만, 세종시가 출범되면서 이 지역으로 편입되고 지명이 바뀌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처음 노선을 가르쳐 준 선배 말로는 용암2리를 종점으로 하는 노선 2개가 합쳐진 것이라고 했다. 기사 입장에서 보면 한 번 운행이 아니라, 두 번 운행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군면사무소를 출발한 버스는 송문리로 들어가는 길에 고비를 맞이한다. 대교천을 건너기 위한 송문교가 바로 그것이다. 중형버스가 간신히 통과할만한 좁은 폭을 자랑하는 다리는 진입로도 요상하게 생겨서는 기사를 애먹인다. 버스의 진행 방향에 따라 진입이 어려워진다. 게다가 주변에 가로등이 없어서 날이 금세 어두워지는 겨울철은 운전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특히 눈이라도 쌓이면 아주 초긴장이다. 진출입도 어려운데 직전에 언덕까지 있어서 아차 하는 순간 사고가 난다. 실제로도 그 다리에서만 여러번 사고가 났다. 신임 기사가 노선을 배우러 올 때면 항상 여기서 천천히, 크게 돌아서 운행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송문리에는 장군면사무소 근처에 장기중학교로 출퇴근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매일 탄다. 아마 급식실에서 일하시는 것 같았다. 장기중학교 후문 앞에 휴게실 겸 차고지가 있어서 방향이 겹치다 보니 종종 차고지에서 내려드렸던 기억이 난다. 노선이 조정되기 전에는 송학2리입구~송학1리~송학2리입구~태산리~송학2리입구로 운행했다. 차도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는 평범한 시골길이지만 밤이 되면 고 선생이 자주 나타난다. 전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종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많이 보이는 그 생물, 고라니다. 고라니는 야행성이라서 밤에 주로 보이는데 불빛만 보면 얼음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려서 의도치 않게 버스로 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사고이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기사의 과실로 잡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번 고라니 사고가 나면 어두운 시골길이 조금은 무서워진다. 그래도 생명인데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나도 고라니 사고를 몇 번 경험하고, 맞은편으로 오는 차가 없는 어두운 길이면 습관적으로 상향등을 켜서 전방을 확인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말이다.


용현리는 유독 학생들이 많이 내린다. 정류장 주변을 둘러보면 주택 몇 채가 전부인데 이 아이들은 무엇을 하려고 여기서 내리는 걸까 늘 궁금했었다. 그러던 중 그 동네가 고향인 동료 기사로부터 거기에 공부방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궁금증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조금 더 지나 용암1리 마을회관에는 금슬 좋은 노부부가 자주 타고 내린다. 항상 부인을 먼저 챙기는 할아버지를 보며 나중에 결혼하면 나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나는 모습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두고 본다고 한다. 잘해야겠다. 하하.


체감상 장군면사무소에서 용암2리 마을회관까지의 거리가 짧다. 마을 입구에서 마을회관까지는 외길이 이어지는데 버스 두 대가 마주 달릴 수 없어서 조치원에서 출발하는 차가 항상 기다린다. 시간표가 그렇게 되어있기도 하지만, 좁은 길을 후진하는 어려운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기사들 간의 암묵적인 약속이기도 하다. 마을 입구를 빠져나와 고개를 넘으면 본격적인 운행이 시작된다. 조치원 장날이면 정류장마다 승객을 태운다. 와촌3리는 가구 수가 많은지 줄을 설 정도다. 텅 빈 버스가 승객으로 들어차기 시작한다. 다들 고수하는 자리가 있어서 버스가 도착하면 일사불란하게 앉는 모습이 신기하다. 두어 정거장 지나서 대륙테크놀로지에는 학생 한 명이 늘 막차를 탄다. 자주 타니까 얼굴은 눈에 익다. 늘 말없이 요금을 지불하고는 맨 뒷자리에 가서 비스듬히 걸터앉는다. 타고 내리는 정류장까지 기억하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여느 날처럼 학생이 탔는데 피곤했는지 맨 뒷자리에 누워서 자는게 아닌가. 물론 승객이 학생 포함 2명뿐이라 가능한 일이다. 나머지 1명을 내려주고 대륙테크놀로지에 가까워지는데 학생이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정류장에 도착해서 뒤를 향해 외친다. “학생~다왔어요!” 그제야 눈을 비비며 일어나더니 두리번거리고는 황급히 내린다.


와촌1리도 주민이 많은 편인 것 같다. 첫 차를 운행할 땐 줄을 서서 기다리고 버스 시간에 늦었는지 뛰어오는 사람도 있다. 한번은 정류장에 도착하려는데 저 멀리 논두렁 샛길에서 학생 하나가 허겁지겁 달린다. 방향을 보아하니 정류장 쪽인데 어차피 배차시간도 여유 있고 이미 타 있는 승객도 저 학생 하나 기다려준다고 뭐라하는 사람이 없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학생이 올라탄다. “기사님, 감사합니다” 이 말을 듣자고 기다려 준 것은 아니다. 이 버스를 놓치면 학생은 당연히 택시를 타거나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 정도 융통성은 발휘하는 게 또 마을버스만의 낭만 아니겠는가.


추억팔이를 하다 보니 어느새 조치원에 도착했다. 아내의 반응은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다 기억하는지 신기하단다. 정류장이라고 설명해주지 않으면 찾기가 어려운데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는지도 놀랐다고 한다. 시골의 정류장이란 게 말뚝 하나 세워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니 그랬을 것이다. 고작 2년 남짓한 시간을 운행했지만, 마을버스라서 그 특유의 낭만이 그리워서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바쁘기만 한 지금의 시내버스도 낭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립다. 이렇게 또 추억을 쌓아가는가 보다.










차반 작가소개 최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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