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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원PD Oct 25. 2020

혼자 뛰는 운동장, 혹은
같이 뛰는 운동장

세상은 운동장, 뛰는 순간 모든 곳이 운동장

가을, 마라톤 대회가 크고 작게 이어지는 계절. 평소 같았다면 러너들이 주말마다 모이는 시즌이지만.

올해는 저마다 혼자 뛰며 그 대회들을 치르고 있다. 각 신문사들의 주요 대회도 다 혼자 뛰는 대회,

언택트, 혹은 버추얼과 같은 이름으로 레이스를 진행하며 그래도 이 가을을 기념하고 있다.


혼자 뛰는 것, 어쩌면 뛰는 것의 참 의미를 알고 뛰는 숭고함을 가장 적절하게 만나는 방법이다.

정해진 공간, 운동장에 모여있는 사람들과의 대규모 레이스와는 완벽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혼자만의 시간을, 혼자만의 공간으로, 스스로 만든 운동장을 달리며 뛰는 이 가을은 많이 낯설다.

-개인적으론 대회보다 이 혼자 뛰는 레이스가 더 편한 측면도 많다. 처음부터 혼자 뛰었기 때문에.-


혼자 뛴다는 것,

어쩌면 뛰는 취미와 가장 어울리는 방식이자, 어디라도 내가 달릴 수 있다면 운동장이 된다.

러닝이라는 취미, 혹은 그 마라톤이라는 종목의 특성과도 참 잘 어울린다. 어디까지나 나와 경쟁이니깐.

대회에 나가도라도 대부분 개인적인 기록과 목표를 두고 달라지 옆 사람과 경쟁하지 않으니깐.

그런 의미에서 혼자 뛰던 시간이 나에게 준 교훈과 의미는 남다르다. 정말 많은 것들이 얻은 시간들이다.

혼자만의 시간으로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 많은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다.

오로지 뛰는 것만을 생각하다가, 많은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대단하다.

누구라도 뛰는 재미를 묻는다면 혼자 뛰는 이 시간의 가치를 꼭, 강조해 말해주곤 한다.

장소도 필요 없다. 혼자만의 시간, 조금의 거리와 안전성만 확보된다면 내가 가는 그곳의 운동장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의 혼자 뛰는 대회들도 만족스럽다. 동네에서 서울, 시카고, 런던의 운동장을 만난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혼자 뛰다 보면 기록도 나쁘고, 코스의 여건도 변수가 많다.

운동장이라는 공간을 내가 만들며 생기는 변수들은 날 힘들게 하기도 하고, 때때로 힘들면 쉬어간다.

하지만. 이 또한 혼자 뛰는 시간의 장점이자, 혼자 뛰는 공간이 주는 예측 불가한 재미일 것이다.

다가오는 JTBC마라톤이나, 동아마라톤 역시 그런 재미에서 서울과 경주를 내가 사는 동네에서 달린다.


그러나. 꼭 혼자 뛰는 것만이 절대적으로 선하고 옳은 행위일까? 그건 또 아마 편협한 생각이 아닐까.


같이 뛴다는 것,

기본적으로 달리며 드는 괴로움은 다양하다. 숨이 차고 다리고 아프다. 지치고 때때로 뭔가 허탈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달리기의 시간이 길어지면 그 어떤 운동장을 달릴지언정, 한 번씩 외로움이 찾아온다.

개인적인 시간이자 누구와 말조차 하기 힘든 순간이 되며 생각도 안들만큼 힘든 순간이 대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달린다는 행위는 원초적 개인 운동, 이 달리기의 시간의 목표부터 자신과의 경쟁이다.


뛰는 것에 재미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기에 러닝 크루와 같은 동호회는 매우 유익하다.

심지어 달리는 순간, 그저 뛰고 달리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매우 고차원적이다.

초보자라면 더욱 배우고 알아야 할 것이 많은 취미, 그래야 다치지 않고 오래, 또 즐겁게 뛸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함께 달리는 이들이 있다면, 나의 달리기에 대해 배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최상일 터.

모여서 달리는 순간의 가치는 그런 이유에서 크고, 같이 뛴다는 건 재미를 넘어 가치가 분명하다.


뛰는 재미의 절정은 함께 뛰며 배우는 재미에 이어 모두 모여 달리는 대회의 순간, 찾아온다.

모르는 사람이어도 상관없다.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모두 함께 힘차게 달려 나가는 순간,

그 짜릿함과 상쾌함 사이에 묘한 동질감은 모든 마라톤 대회가 주는 감동이자 운동장 가득한 쾌감이다.


대회라는 틀을 통해 함께 모여 뛰는 건 달리기의 기록을 높이고, 안정적인 운동장이 주어지는 재미부터...

좀 더 깊이 살펴보면 각각의 대회들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공유한다는 장점까지 뚜렷하게 자리하고 있다.

달리기의 선한 영향력, 운동장 가득 모여 달리는 이들의 선한 기운이 가득함을 느끼는 건 꽤 즐겁다.

많은 대회들이 아이들과 어려운 이들을 위해 달리는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달리자고 말하고 있다.

-이 역시 올해는 각자의 공간을 운동장으로 만들어 달리는 시대를 보내고 있지만.-

어떻게 뛰더라도 그저 즐거울 수 있지만, 그리고 혼자 뛰는 시간의 소중한 가치는 분명하지만...

같이 뛰며 가질 수 있는 여러 느낌들, 또 다른 질감의 무언가는 분명, 다르게 있다. 그래서 의미 있다.


혼자서는 실컷 뛰는 시대.  여러 대회들도 혼자 뛰는 대회를 이어가는 가을.

물론 혼자 뛰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이젠 다 같이 큰 운동장에 모여 출발선에 서고 싶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같은 골인 지점을 향하고 싶다. 그 가을의 함께 달리기를 기다린다.

그 순간을 잘 달리기 위해, 오늘도 혼자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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