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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원PD Oct 06. 2020

버추얼과 언택트  Chicago Marathon

세상은 운동장, 혼자 달리는 날들

Chicago Marathon, 흔히 말하는 세계 3대 마라톤. 조금이라도 뛰어본 자는 가보고 싶은 대회.

세상이 어수선한 시대를 살며, 쉽게 갈수 없는 곳인 시카고, (뭐 보스턴이나 런던 등 다 마찬가지)

버추얼이나 언택트로 많은 것들이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있어 오히려 이렇게 뛰어볼(?) 수 있게 됐다.

-물론, 시카고를 달린 건 아니지만... 최소한 그 기분을 내며 의미 있는 대회 참가까지 달성했으니.-


기대만큼 나오지 못했던 결과, 그리고 나름 많은 것들을 고민한 준비과정, 그리고 달리며 든 생각들.

그 과정을 시간의 역순으로 정리한다. 언젠가, 시카고에서 또 보스턴에서 직접 뛸 날을 기다리며.  




결과. 아쉬움이 남다.

사실 마라톤이라고 해봐야 10k를 몇 번 뛰어본 것이 전부, 그래도 3~4년 이상 뛰며 자신감이 있었다.

아침마다 달리는 날들을 이어오며 나름 지구력에는 자신감도 붙었고, 속도도 나쁘지 않다 여겼더라는.

하지만, 처음 뛰어본 하프마라톤, 21.1km, 13.1마일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거리와 피로 모두,

2시간 내 진입이라는 목표를 두고 나름 출발부터 페이스 조절을 했지만 결과는 2시간 2분대.

마지막에는 뛰는 건지 걷는 건지 스스로 의심스러운 수준의 속도까지 떨어져 기록 단축엔 실패했다.

실망, 그러나 포기는 아니다.



달리며 든 생각, 무념을 넘어 피로감을 보다.

여러 운동 중 유독 달리기를 취미로 둔 건 뛰면서 가지게 되는 무념, 아무 생각이 없어짐의 좋아서다.

뭐, 굳이 생각이 많아지는 것들이 있다면 달리는 나의 상태, 또 오늘 코스에 대한 고민 정도?

잡생각들을 최소화하며 그저 달리는 흐름, 리듬만을 타는 순간이 달리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런 이유에서 개인적으로는 뛸 때 음악도 잘 듣지 않고 뛴다.-


하지만. 오늘 달리기는 그러지 못했다. 아무 생각이 없기엔 초반, 코스와 속도의 고민이 너무 깊었고...

중반부터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완주 자체를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힘들다는 느낌이 강했다.

잘 없던 통증도 왔다. 특히, 다리와 발목, (특히 평발이 심한 왼쪽은 발부터 허리까지 다 아팠다.)

내가 과연 지금 무얼 하는 걸까, 라는 자조 어린 후회와 투덜거림이 몰려왔고, 스스로 놀랐다.

고민과 두려움, 아픔과 후회가 만든 결과는 결국 막판, 피로감. 뛰는 것 자체가 즐겁지 않아진 시간...

대략 2km 정도는 그저 노동처럼, 군대 행군처럼, 발을 옮기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대회였다면. 골인 지점의 환희라도 있어 그 피로가 덜했겠지만.

기록이 마음에 들었다면 스스로 뿌듯함에 그 모든 것들이 해소됐겠지만.

그 모든 것들을 넘어선 큰 피로. 무념을 찾지 못한 것이 실패였고, 실패했기에 무념에 이르지 못했다.




준비과정. 그래도 나름 준비를 했다.

대회 한 달 정도 전부터 날짜를 정하고, 스스로 훈련 프로그램을 짜서 나름 목표를 두고 달렸다.

안 먹은 건 아니지만, 술이나 음식도 대략 보름 정도는 꽤 조절했다. 과음, 과식을 피해 몸에 신경 썼다.

추석이라는 걸림돌이 만만치 않았지만 나름 성공적(?)으로 준비를 이어왔다.


큰 대회(?) 참가라는 목표 의식 탓에 달리는 것도, 하루하루 기다리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직접 대회 현장을 갔더라면 더 말할 수 없이 두근거렸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뭔가 들뜨는 마음?

이런저런 준비에서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고, 대회 자체와 기록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회사를 쉬는 안식 기간이라 이런 준비를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점이 더욱 행운이라고도 여겼다.

소풍 가는 날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크리스마스보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더 즐거운 것처럼...

기다림으로 충분히 즐거웠던 Chicago Marathon, 준비과정의 부족이 기록에서 아쉬움이 됐겠지만,

후회는 없다. 모든 걸 떠올리면 분명 즐거운 달리기가 될 만큼 준비에서 많은 걸 얻었다.



  


준비부터 출발까지,

출발부터 도착까지.

그리고 지금 이 대회를 정리하는 이 순간까지.

난 뛰는 사람. 빠르진 않다.라는 나의 모토에 어긋남은 크게 없었던 이번 Chicago Marathon,

그 언젠가는 꼭 시카고를 다시 찾아 이 대회에 처음으로 코스를 밟는 경험을 하리라 다짐해본다.

그런 다짐으로 또 긴 시간을 기대와 준비라는 즐거움에 보낼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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