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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물욕이 향한 곳

신기하게도

by ACCIGRAPHY


세네 살 무렵 내가 살던 곳은 대구 어딘가의 아파트였다.


빨간색 장난감 자동차(응팔에 진주가 타고 다니는 스타일)를 즐겨 타고 놀았는데 하루는 그걸 가만히 쳐다보다 그것이 내게 너무 큰 기쁨을 준다는 사실이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디오게네스처럼 살다가 하루아침에 금욕모드로 전향한 나는 엄마한테 혼날 각오를 하고 낑낑대며 그것을 해체 분리하기 시작했다. 해체를 마친 나는 속이 텅 빈 플라스틱 풍선처럼 생긴 그 부품들을 손에 쥔 채 창밖을 빼꼼히 내려다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첫 부품을 떨어뜨릴 때는 왠지 너무 큰 금기를 깨뜨리는 행동 같아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두 번째 부품부터는 슬슬 신나기 시작했다. 아파트 3층 밖에 안 되는 높이였지만 어린 나에게 그 부품이 떨어지는 모습과 거리감은 꽤나 극적이었다.


홀로 조용히 의식을 거행한 나는 뿌듯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엄마에게 혼날 순간을 기다렸으나 엄마는 그 큰 장난감이 없어졌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 엄마는 우리를 먹여 살리느라 바빴던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물건을 좋아했으나 추구하지는 않았고 세월이 지나 결혼이라는 인습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어! 안돼! 그렇게 생긴 거 집에 많아!"


마트에서 장난감 사달라 조르는 어린이에게 하는 소리는 아니고 산에서 마음에 드는 을 보면 갖고싶어 하는 나를 말리는 남편의 소리.


빨간 자동차 해체 사건 후로 물건에 집착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나는 희한한 곳에서 물욕이 발현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산에 있는 돌을 내 또래 여성들이 명품가방 탐하듯 탐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돌들은 정말이지 전생에 내가 좋아하던 역사적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은... 그런 남다른 존재감의 돌들이 있었다.


그래서 산에 가는 날이면 남편은 나를 단속하느라 바쁘다. 고개를 땅 쪽으로 떨구기만 해도 경고를 받는다.


"나는 당신 양심을 믿어. 삼림법까지는 논하지 않을게."


남편이 내 양심을 믿어주는 것은 내 행동에 큰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나는 내 양심법에 의거하여 아주 이따금 작은 거 하나만을 기준 삼기로 했다.


이 쟁반 위에 놓인 모든 돌의 출신과 히스토리를 기억한다. 하나하나 존귀하다.

참고로 저기 동그란 돌 중에 가장 큰 회색 점박이는 한국에 작업실 오픈했을 때 사랑하는 친구가 선사한 화분에 있던 돌이다. 유일하게 자본주의 유통망을 통해 내 손에 들어온 돌이다. 유리 속 납작한 돌은 냄비받침으로도 한참 썼다.


무궁무진한 돌의 용도.

이걸로는 삼겹살도 한번 구워 먹었는데 달구는데 너무 오래 걸려 한번만 구워 먹고 깨끗이 씻어 북스탠드로 변신했다. 볼디산(Mt. Boldy)에 갔을 때 주워왔는데 저걸 메고 산행을 한 남편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애리다. 엄마가 나를 볼때마다 이혼당하지 말라고 하시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것도 북스탠드용인데 산 모양으로 생겨서 마음에 들었다. 각도에 따라 색다른 매력을 자랑한다.


이건 글씨 쓸 때 문진으로 쓴다.


이건 돈 주고 산 돌접시다. 돌처럼 생겨서 끼워 넣어봤다.


이건 수련용이다. 나는 내가 돌을 좋아하는 만큼 돌도 나를 좋아한다는 믿음이 있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세워놔도 잘 서있길래 남편도 해보라고 시켰더니 남편은 실패했다. 역시 믿음이 중요해.




나도 내가 도무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고 자연물을 있는 그 자리에서 감상하지 못하고 욕심부리는 내가 부끄럽다. 그래도 집에서 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바라만 봐도 극락행이다.


사주에 금(金)이 없어서 그런가 싶기도하다. 돌은 금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나도 모르게 내 존재의 구멍을 채우느라 자꾸만 돌을 주워오는 건가 싶기도 하고.


혹시 음양오행에 능하신 독자분이 계시다면 제가 왜 이러는지 좀...

참고로 불이 세 개 물이 세 개 나무가 하나 흙이 하나입니다.




자연에 멀쩡히 잘 사는 돌을 자꾸만 탐하는 나에게 가하는 오늘의 일침. 28cm X 30cm, 이합장지에 먹, ACCI CALLIGRAPH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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