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독(愼獨), 매일 아침 나에게 하는 당부
세상에
내가 잘 보여야 할 사람이라곤
나 밖에 없다.
타자가 아닌 스스로에게 잘 보이려 할수록 고유의 색이 드러나고 자신만의 목소리로 말하는 빛나는 존재가 된다. 삶에 대한 자신만의 뚜렷한 본말(本末)감각으로 그저 자기 길을 걸을 뿐, 많은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하고 있는 눈먼 레이스에 참여하지도 그것을 부추기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은 가만히 홀로 있을 때 고개를 들이미는 온갖 추하고 고귀한 자아상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불순물 없는 완벽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패권을 쥔 상태인지에 관한 은근하고 집요한 관찰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내 안의 추한 것 말고 고귀한 것이 패권을 잘 쥐고 있는지 살피며 사는 사람은 홀로든 함께든 편안하다. 이따금 타인과 함께일 때면 수정된 행동 양식을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상대의 처지를 살피는 이타심의 발현이지 잘 보이고자 함이 아니다. 평소에 스스로에게 잘했기에 내면과 친하게 잘 놀고 타인과도 잘 논다.
신독(愼獨) : 자기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감
나는 신독적 삶에 관심이 있다.
자신과 친해지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남이 보건 말건 양심을 지킨다'는 텅 빈 도덕의식이 아니라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이 타자의 시선이 아닌 내가 나를 보는 시선임을 통감하는 것이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여기서 시작한다.
자기 전
침대 맡에 다음 날 입을 옷을
착착 개켜놓고 잔다.
그러면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이
벌써 뿌듯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손가락에서 척추뼈 발 끝까지 침대에서 누운 채로 쫘악 펴 본다. 간밤에 갈비뼈들도 무사했는지 폐부를 천천히 크게 부풀렸다가 내쉬며 쪼그라뜨린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오른손을 지지대 삼아 살포시 누르며 몸을 일으킨다. 뿌듯히 개켜져 있는 옷을 천천히 입고
눈을 반쯤 뜬 상태로 부엌으로 간다. 따뜻한 물을 서서히 들이키며 슬리퍼를 끌고 현관문을 나선다.
찬란한 햇살이 퇴근한 주인 반기는 강아지 마냥 찰싹 얼굴에 달라붙는다. 눈을 뜨고 싶어도 선택권은 없다. 밝아도 너무 밝아서. 눈을 계속 감은 채 태양을 느낀다.
태양은 따뜻한 것이다. 그것의 물성도 감성도. 지나가는 행인만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몇 시간이고 이러고 있고 싶다. 이러려고 퇴사까지 했다. 이 짓을 못 할바에 돈 벌어 뭐 하나 싶었다. 나는 돈을 사랑하지만 나와 태양의 관계가 우선이다. 내 삶엔 모든 태양 닮은 것들이 본(本)이고 돈은 말(末)이다.
햇살로 충전된 몸으로 집에 들어가 커피를 내린다. 커피 마신 나는 안 마신 나에 비해 지혜롭다. 지혜로운 상태가 되었을 때 뭐라도 쓴다. 칸트는 물자체(物自體,Ding An Sich)를 알 수 없다 했지만 나는 내 안의 불변하는 지혜로운 나를 안다. 숨 쉴 줄 알면 모를 수가 없다. 그래서 아침마다 그것을 닮은 태양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한다며 운전대를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