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예쁨
아침부터 우중충 비가 온다.
너무 좋다. 맑은 날도 좋지만 이렇게 촤악 가라앉는 날도 귀하다. 올 겨울은 비가 얼마나 오는지 남편이 생에 처음으로 경험했다는 5번 국도의 초록 잔영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산책 나갈 채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빗발이 아침보다 훨씬 굵고 시끄러웠다. 나는 작은 우산을 내팽개치고 남편 외할머니가 주신 커다란 골프우산을 꺼내 들고 레인부츠보다 목이 높아 방수가 잘 되는 스노부츠를 신었다.
빗방울이 굵다 보니 길에 차도 사람도 거의 없이 고요했다. 조용해서 참 좋다는 생각을 몰래 하고 있는데 별안간 멀리서
'착! 착! 착! 착!'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산을 살짝 뒤로 젖혀 바라보니 한 여성이 귀여운 크롭 후드 재킷을 입고 까만 레깅스를 신은 채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비가 꽤 많이 와서 착! 착! 한 발씩 내딛을 때마다 그녀의 무릎 높이 정도의 물왕관이 만들어졌다.
한 때 우리 모두가 좋아했던 물왕관 놀이. 표정이 생기로 가득 차 있던 그녀는 인간 강아지처럼 예뻤다.
순간 나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지만
젖는 게 싫어 커다란 우산을 쓰고 스노부츠까지 꺼내 신고 안락하게 걷는 내 모습이 여러모로 없어 보였다. 본연의 나는 저 여성처럼 폭우 속에서 달리기 하는 걸 좋아하지만 그리 살다 너무나 많은 제지를 받은 탓에 '비에 젖지 않는 안락함'도 괜찮구나 하며 한동안 살았다. 지금은 이러나저러나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날의 기분 따라 맘대로 하는데 오늘 나는 얌전한 모드였기에 우산과 부츠를 택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를 맞으며 걸어본 일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달 중순쯤이었을 것이다. 남편과 함께 우산 쓰고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우산을 너무 자기 쪽으로 당겨서 쓰고 있었다. 백 프로 모르고 하는 행동이었다. 이걸 말로 하자니 쩨쩨해서 - 나는 대인배처럼 보이고 싶은 병이 있다 - 꾹 참으며 우산을 조금씩 내 쪽으로 당겼는데 계속해서 미세하게 힘에 밀리자 갑자기 화가 폭발하여 아예 우산 밖으로 나가서 씩씩대며 걷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르는 남편은 그저 나의 평소 똘끼가 분출된 정도로 웃으며 바라보았다. 남편은 내가 비 맞는 걸 좋아하는 걸 아니까.
캘리포니아 출신 남편은 우산 나눠 쓰는 법을 잘 모른다. 우산을 함께 쓰려면 우산 쥔 자가 크게 양보하는 마음을 내어 상대 쪽으로 뻗어야 겨우 중앙에 위치한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씩씩거리는 리듬에 맞춰 비를 맞고 걸었더니 머리 꼭대기에서 솟아오르던 화기가 빗방울에 의해 '치익~' 소리를 내며 제압되었고 난데없이 화가 흥으로 승화되며 현대무용적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일반적 현대무용 아님. 현대무용적 움직임). 비 맞으며 추는 춤은 거실에서의 그것에 비할 수 없는 흥오름이었다.
남편은 춤추는 나를 핸드폰으로 찍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무슨 중범죄를 저지른 줄도 모른 채.
남편은 자신만의 예쁨을 지닌 사람이다.
신혼 때 나는 미개했고
남편의 모든 것을 고치려 들었다.
생각할수록 아찔하고 미안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게 적어도 구구단만큼의 자명함을 띄고 있지 않는 한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 그저 그들이 그들만의 예쁨을 살아내기를 한 없이 응원하고 싶다. 남편은 태생적으로 이타적이기에 그런 이에게 우산 나눠 쓰는 법까지 가르치는 건 못돼 빠진 짓이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내가 그냥 또 우산 밖으로 탈출하면 그만이다.
그 덕에 비도 맞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