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그락붉그락 하지 않기
어떤 경유로든 내 삶에 굴러들어 온 것들은 한 번씩 주의 깊게 보는 편이다.
산책하다 주운 이 책도 마찬가지. 책 주인이 성덕선이었는지 온통 밑줄과 메모 투성이지만 나도 책을 막보는 편이라 큰 마음 내어 이해해 본다. 그럼에도 이 페이지는 좀 과해서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네.
생각보다 재밌다. 다양한 작문법 비평과 예시작으로 사용된 작품들에 대한 보르헤스의 소견이 1~2페이지 정도로 축약되어 있는데 어떤 부분은 대관절 뭔 소린지 모르겠기도 하고 일부는 엄마 반찬처럼 입에 착 붙기도 하여 썩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전반적 톤이 낭창하고 웃기다.
사람이든 책이든 일단 좀 웃기고 봐야 된다. 웃긴 것들은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웃김'은 보편적 유머감각 + 자기다움인데 웃기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발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건 오리지널리티와도 닿아있기에 다시 '자기다움'으로 결부되는데 이게 타자에게도 통하려면 보편성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하므로 그 균형이 결국 웃김이다.
오늘 아침엔 월트 위트먼에 관한 보르헤스의 생각을 보고 있는데 그의 문체가 오래된 기억을 상기시켰다. 언젠가 봤던 우디 앨런과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대화였다. 1969년에 촬영된 영상으로 기억한다.
목사님, 이번 부흥집회에 하나님도 오시는 거 확실하죠? 그럼 갈게요!
이렇게 우디 앨런의 말로 끝나는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우아한 잽과 어퍼컷이 오고 간다. 경기를 보는 사람은 내내 웃음을 머금은 채 경지에 오른 하나의 대화 형식을 목도하느라 여념이 없다. 두 사람 다 분야는 다르지만 삶과 죽음, 그리고 신의 문제에 관해 고민하느라 누구보다 진지한 세월을 보냈다.
우디 앨런에겐 보통 불가지론자 내지는 무신론자라는 꼬리표가 붙지만 내 눈에 그는 그 무엇도 아니고 우리처럼 매력과 결함으로 넘실대는 그냥 사람이다. 신과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그 누구보다 간절히 알고 싶었던 사람. 그의 작품세계와 인터뷰들을 보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레이엄 목사는 해당 인터뷰를 하던 시절(1969), 전성기였음에도 우월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고 우디 앨런을 고쳐보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부드럽게 자기 말을 할 뿐. 그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목사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으로 점점 더 멋있어지다 생을 마감했다.
종교와 인간의 관습에 관한 이 두 사람의 대화가 내용과 형식 면에서 (일단 둘이 한 자리에 앉은 게 웃김) 인상적인 지점은 한 두 군데가 아니지만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대화를 이끌어가는 자세다. 서로 웃는 낯으로, 그러나 날이 시퍼렇게 서있는 문장을 세련미로 감싸 뱉을 줄 알았다. 어른의 대화였다.
상대의 말에 울그락붉으락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남편이 집에 왔다. 뭘 그렇게 골똘히 쓰냐고 웃으며 물어본다. 우디 앨런이랑 그레이엄 목사의 대화에 관한 글이라고 했더니 조심하란다. 왜 굳이 우디 앨런에 관해 쓰냐며.
걱정된다며.
신명난 창작의 기운이 찬물로 제압된다.
이미 수도 없이 당한 일. 퍼포먼스가 끝나면 사람들은 다 좋은 말을 해 주는데 남편만 쓴소리를 했다. 다음부턴 이 부분을 저렇게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완전 선 넘음).
남편은 착하고 정직해서 오만하다. 사랑해서 하는 말인 거 아는데 전혀 저게 사랑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수차례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뭘 쓰든 그저 응원만 해줘.
(목소리 차분, 얼굴은 울그락붉으락).
내가 백번 말했잖아."
"알았어."
바로 '알았다'하니 또 왜 이리 불쌍한지... 남편은 자기 딴에는 좋은 걸 준다고 준 것이다.
나는 자존심 세우는 걸 안 좋아하기에 또 바로 괜찮다고 나도 미안하다고 당신 의도만 받아들이겠다 했다.
조언이란
내가 구했을 때, 원하는 대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어떤 귀한 것이라 생각한다. 남편은 내가 사랑할 대상이지 조언을 구할 대상은 아니다. 내가 남편에게 조언을 얻고 싶은 분야는 경제나 역사 분야, 득템 하는 법, 로드트립 루트 짜는 법 등이지 내가 무엇에 관한 글을 써야 하느냐가 아니라는 말이다(또 울그락붉으락). 예민한 자와 착한 자의 결합은 이래서 지옥이다.
울그락붉으락이 국어사전에서 틀린 표현이라고 한다. 붉으락푸르락이 맞단다.
그치만 내 얼굴은 울긋불긋했기에
푸르락하지 않았기에 울그락붉으락으로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