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한 불가지론자
사람들은 나에게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같은 딱지를 붙이고 바라보는 걸 좋아하지만 나만큼 신의 존재에 관심 기울이고 사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스스로 독실하다고 자부하는 모든 유일신 추종자들도 신이 자신을 '구원해 주는 것'에 대해 독실한 모습은 보았지만 신 자체에 대한 관심, 신의 존재 성립이나 존재 양식에 대한 그만큼의 고찰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이는 마치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 그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그 사람으로부터 뭘 얻어낼지 관심을 갖는 것과 비슷한데, 후자 성향의 사람들은 그 친구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상을 그 친구에게 덮어 씌우고, 자기 혼자 기대하고 실망한다. 이런 사람들은 미안하지만 신과의 관계도 비슷하게 절망적인 경우가 많다.
신이 어떤 존재론적 상태에 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고 구원만 보장된다면 얼마든지 찬양하고 숭배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신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런 스타일의 신앙을 양산하는 시스템 하에서도 구원이라는 이해관계보다는 신과의 관계 자체에 관심 갖고 사는 인간들도 많이 보았는데,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이 속한 종교의 한계적 속성을 스스로 검열하고 차단할 줄 아는 내면의 힘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힘에 의지하여 해당 종교의 심층적 부분, 원형적 가르침만 취한다는 것이다. 즉 신앙 체계의 본말 구분이 가능하다.
나는 친구를 사귈 때 그 사람 자체가 관심이요 목적이기에 교우 관계가 좋은 편이고, 인간들끼리 우정과 사랑을 나눈다는 것의 신성한 의미를 알고 있다. 나는 신과의 관계도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아직 신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해서 그렇지 나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최소한의 데이터만 성립되어도 두 팔 벌려 신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우주가 존재하는 양상을 관찰하면서 신이 있겠거니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런 지레짐작을 바탕으로 아무런 결론도 내리고 싶지 않고 나의 지레짐작을 신에게 덮어 씌우고 싶지도 않다. 신과 아무런 이해관계에 있고 싶지 않다. 나는 천문을 연구하는 과학자이고 우주에 대해서 보통사람들보다 많이 알지만 아직 우주에 대한 앎이 지극히 부족하다는 것만 겨우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이런 내가 무슨 신의 영역을 넘보겠는가. 나는 정말이지 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서 아직 불가지론자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유사과학이 너무 싫다. 내가 유사과학을 싫어하는 이유는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sophist)들을 싫어했던 이유와 비슷하다. 예수가 위선자를 책망했던 이유와 비슷하고 맹자가 향원(鄕愿)을 경멸했던 것과 비슷하다. 소피스트들이 철학에 진심인 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그들의 이해관계에 충실하여 수사학을 써먹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사과학은 그게 어떤 이해관계에 얽혀있든 간에 '과학적'이고 조잡한 방법을 사용하여 그들의 임무를 수행할 프랑켄슈타인을 생성해낸다. 슬프게도 보통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을 판별해 낼 과학적 안목이 없다. 그들은 사는 게 바쁘고 삶이 녹록지 않기에 부지불식간에 이런 프랑켄슈타인들의 희생양이 된다. 이런 것들은 나를 정말 화나게 한다.
내가 과학자로 살아오면서 흐뭇한 부분은 내가 얻게 된 과학적 지식이나 업적보다는 과학자적 태도가 그나마 몸에 좀 익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학자적 태도란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함'이다. 이것이야 말로 내 인생 최대의 성취다. 참된 과학자는 자신이 믿는 바를 증명하기 위해 논리를 펼치지 않는다. 그 어떤 아전인수적 발상도 '믿는 바'도 없다. 그저 세상과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소생득(所生得)적 수행을 해나가는 것이다. 과학 분야에도 종교적 신앙처럼 각자 '믿는 바'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이 유사과학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고, 특수 이해관계를 반영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우리가 지구에 붙어있는 삶은 너무 짧고 소중하다. 인류세(anthroposcene)가 끝나고 지구가 더 이상 '창백하고 푸른 점'이 아닌 날이 올지라도, 보이저호에 있는 골든레코드는 우주를 유영하며 한 때 우리가 지구라는 곳에 존재했다고 다른 누군가에게 말을 걸지 모른다. 이 얼마나 아득하리만치 아름다운 '지금'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