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봉側鋒의 불경스러움
"아니, 붓을 그렇게 기울이면 어떡해요!? 그건 서예가 아니잖아요!"
대학생 시절
인사동 길거리에 앉아 있으면 이런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죄다 서예를 전공했다는 사람들이었다. 매번 왜 저러나 싶었지만 어딘가 외로워 보여 차갑게 대하진 않았던 기억이 난다.
"가격은 손님 맘? 차암 나. 제 맘대로 드리면 되죠? 저도 하나 써 주세요!"
그녀는 화난 얼굴로 ‘얼마나 잘 쓰나 보자!’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녀를 저토록 화나게 한 것이 무엇일까... 강남에서 뺨을 맞고 인사동에서 화풀이 중인가... 내심 궁금해하며 그녀를 위한 글씨를 천천히 적었다. 글씨를 받아 든 그녀는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내가 앉아있던 돌 위에 던졌다.
그녀는 고통 속에 있었다. 세상이 그녀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던진 천 원을 주워 곱게 접으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붓을 기울이면 안 되는 이유를 알고 싶어요.
가르쳐 주세요."
물론 나는 측봉側鋒도 중봉中鋒도 어떤 운필運筆도 다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측봉에 대한 그녀의 의견이 딱히 궁금하진 않았다. 그저 생면부지 타인에게 저렇게 못된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에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매우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눈에 걸려있던 빗장을 스르륵 풀더니 자신이 아는 서예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고, 늘 그렇듯 개인적 이야기로 흘러갔다. 사람 목소리에 민감한 나는(뭔들 안 민감하냐만) 그녀의 톤이 듣기 힘들었지만 최대한 감추려 애썼다. 누군가 자신의 얘기를 오랜만에 들어줘서 신난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화가 끝날 무렵 그녀는 내 글씨를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내 글씨가 독특하다느니 이런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어야 한다느니 한참을 떠들어대고는 살며시 사라졌다.
그녀가 가고 선한 기운의 사람들이 연속적으로 찾아와 말을 걸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길에 앉아있다 보면 흔한 일이었다. 탁해진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로 한참 희석이 되고 있는데 내 눈앞에 누군가 커피를 내밀었다.
"아깐 미안했어요. 뭣도 모르고 지껄였어요."
서예전공녀는 그렇게 안국역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비난도 사과도 화끈했다.
앞으로 계속 변하겠지만
지금 시점까지 내가 붓을 쥐고 글씨를 쓰는 행위는 결국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스물에서 마흔까지
붓이 나에게 가져다준 인연들로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지금의 나라는 것이
대단할 것 하나 없지만
그저 내가 나임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