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고 70년대를 보낸 커트는 1981년 9월, 몬테사노 고등학교 신입생이 된다. 커트에게 고등학교란 사교적인 유형, 수학에 빠진 너드nerd, 그리고 마약을 가까이 하는 ‘약쟁이’까지 크게 세 계급으로 구성된 10대의 황무지였다. 커트는 그런 곳에서 친구가 되고 싶었던 이는 단 두 명 뿐이었다고 했다. 그 둘은 LA 출신 뉴웨이브 밴드 오잉고 보잉고Oingo Boingo를 좋아할 만큼 쿨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걔들은 정말 괴짜들이었어요. 풋볼 경기장에서 얼굴에 페인트칠을 하는 그런 녀석들이었죠.” 그래서 커트는 컴퓨터나 체스를 좋아하는 너드들과 어울려볼까도 했지만, 그들은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커트 주위엔 공원에서 그네를 타며 휘파람을 불고 있던 자기에게 마약의 세계를 알려준 트레버Trevor Briggs를 포함, 마리화나를 피우는 친구들만 남게 된다. “난 걔들을 싫어했지만, 적어도 그 아이들은 로큰롤을 좋아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희열을 주던 로큰롤이 마약이라는 파멸의 문턱에 커트를 데려다 놓은 셈이다.
커트의 첫 기타는 외삼촌 척이 사줬다. 조카의 열네 번째 생일 때 제안한 자전거와 기타 중 고른 선물이다. 카피 밴드 팻-챈스Fat-Chance의 멤버이기도 했던 척은 125달러짜리 린델Lindell 중고 일렉트릭 기타와 작고 낡은 10와트 앰프를 커트에게 안겨준다. 중학교 밴드부에서 큰북을 치던 커트는 외삼촌의 생일 선물에 이어 같은 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엘튼 존Elton John,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Grand Funk Railroad, 보스턴Boston 등의 앨범들커트는 이 중 저니Journey의 《Evolution》을 가장 좋아했다을 통해 록 음악의 마력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커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기타는 정말 좋은 안식처였어요. 기타 치는 일이 직업처럼 느껴졌죠. 그건 내가 할 일이었습니다. 린델을 갖자마자 그것에 사로잡히고 말았어요.” 산타나Carlos Santana에게 기타가 그랬듯 커트에게도 기타는 반항과 해방, 표현의 자유가 될 터였다.
커트는 82년 3월 아빠와 새엄마의 집을 나왔다. 이후 4년 동안 그레이스 하버 카운티 내에서만 거처를 열 곳 이상 옮겨 다니며 그는 처음으로 방랑자 신세가 된다. 커트가 머문 곳엔 많은 음반들을 소장하고 있던 삼촌 짐Jim의 집부터 이모 메리, 외삼촌 척의 집이 모두 포함됐다. 그 시기 척의 집에 살면서 커트는 기타도 배우기 시작했다. 척과 밴드를 하던 워렌 메이슨Warren Mason이 30분당 5달러 레슨비를 받고 커트에게 기타를 가르친 것이다. 워렌은 제자가 가장 목말라 한 레드 제플린의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부터 이끌어주었다. 커트의 손가락은 곧 AC/DC의 <Back in Black>으로 자연스레 넘어갔고, 이후 카스The Cars의 <My Best Friend’s Girl>, 킹스멘The Kingsmen의 「Louie Louie」, 퀸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 등을 차례로 섭렵했다. 자신감이 붙은 커트는 이때부터 기타 레슨을 '지옥'으로 여기며 조금씩 오리지널 곡을 만들기 시작한다. 기교 훈련보다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게 더 낫다고 직감한 것이다. 워렌은 제자를 이렇게 기억했다. “커트는 세상에서 기타를 가장 잘 치는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박자나 프레이즈phrase-멜로디 단위를 이루는 짧은 악구에 천재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Smells Like Teen Spirit」 메인 기타 리프에 짙은 그늘을 드리운 킹스멘의 「Louie Louie」를 얘기하고 싶다. 이유는 이후의 10대 문화와 미래의 DIY 언더그라운드 펑크 신scene에 이 곡이 미친 영향 때문이다. 그 영향력은 무려 1천 5백 개 이상으로 추산되는 커버 버전과 ‘로큰롤 진화의 시금석’이라는 평단의 평가가 대변한다. 잭 엘리Jack Ely의 노래가 너무 거칠고 알아들을 수 없어 일부 보수적인 청취자들은 가사가 외설적이라 여겼다는데, 때문에 방송국들에서 이 노래는 금지곡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FBI가 수사에 착수했다는 일화도 있다. 흥미로운 건 이 모든 일이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 1963년 말 차트에서 급부상 한 노래의 인기에 더 불을 붙인 사실이다. 「Louie Louie」는 그렇게 너바나의 커트를 비롯해 소닉스The Sonics, 스투지스The Stooges, 모터헤드Motörhead, 엠씨파이브MC5, 뉴욕 돌스The New York Dolls, 패티 스미스Patti Smith, 클래시The Clash, 블랙 플래그Black Flag 등 이후 전설들이 될 다소 ‘삐딱한’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강력한 영감을 주었다.
학교 친구 대신 기타라는 친구에 빠진 커트는 매일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악기를 익혔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S. E. 힌턴S. E. Hinton의 『럼블피쉬』와 『아웃사이더』를 몰래 읽던 커트의 학교 성적이 떨어진 걸 안 웬디가 척에게 기타 레슨을 멈추게 한다. 레슨은 석 달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조카의 재능을 본 것일까. 척은 웬디 몰래 커트에게 돈을 주며 애버딘 번화가에 있던 로즈비어스 뮤직 센터Rosevear’s Music Center라는 악기점에서 기타 연습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엄마의 간섭에 반항심이 생겨 이때부터 마리화나를 상용하기 시작한 커트는 LSD까지 접하며 마약에 빠지기 시작했다. 가족에게 버림 받았다고 느낀 사춘기 커트는 일탈과 함께 자신도 가족을 버렸다.
2학년이 되고 두 달 뒤, 커트는 몬테사노 고등학교에서 엄마와 아빠가 졸업한 애버딘 고등학교Aberdeen High School로 전학했다. 그러면서 엄마 집에 다시 살게 된다. 애버딘 고등학교는 미술 교육 프로그램이 훌륭했던 곳으로,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던 커트에겐 최적의 학교였다. 여기서 만난 미술 선생님 로버트 헌터Robert Hunter가 캐리커처 숙제를 내줬을 때 커트는 9년 뒤 자신의 밴드가 빌보드 차트에서 꺾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쭈글쭈글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의 얼굴을 그렸고, 발달하고 있는 사물을 표현해보라는 과제 때는 수정란이 되어 가는 정자를 그렸다. 이 즈음 남자 친구 프랭크와 헤어진 웬디는 술을 많이 마셨는데, 그런 엄마와 자주 싸우던 커트는 얼마 안 가 그 집을 나왔다. 웬디는 다시 스물두 살 연하였던 마이크 메닥Mike Medak과 연애를 시작, 커트는 친구 존 필즈John Fields에게 엄마가 자신보다 겨우 일곱 살 많은 남자를 사귄다며 웬디를 매춘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커트는 애버딘 고등학교에서 미남 친구 마이어 로프틴Myer Loftin을 사귄다. 미술 수업에서 만난 둘은 AC/DC, 에어로스미스Aerosmith, 레드 제플린에서 공통 취향을 발견하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 로프틴의 기억이다. “커트는 예의 바르고 조용한 아이였어요. 또 착하고 성실했죠.” 둘이 어울리기 시작한 얼마 뒤 로프틴은 커트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혔다. 커트는 “그래도 괜찮아. 넌 여전히 내 친구야. 아무 문제 없어”라며 로프틴을 안아주었다. 커트는 착하고 성실한데다 상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80년대에 동성애자 친구와 공개적으로 어울리는 건 커트가 생각한 것보다 위험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평소보다 나를 더 이상하게 바라본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친구들은 커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체육 시간에 모두가 옷을 입고 나면 누군가가 커트를 ‘호모’라 부르며 사물함 쪽으로 밀어붙이곤 했다. “그 아이들은 옷을 갈아입는 중에 내가 동성애자일 거란 이유로 위협을 느낀 거였어요. 그러곤 자신들의 성기를 가리거나 나를 때리거나, 아예 둘 다를 하더군요.” 어느 날 커트는 눈에 띄게 화가 난 모습으로 로프틴에게 다가가 더 이상 함께 어울릴 수 없다고 말했다. 동성애자의 친구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학대를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프틴은 커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고, 둘은 멀어졌다. 이는 죽는 날까지 동성애를 옹호하게 될 커트가 겪은 동성애와 관련한 첫 번째 에피소드였다.
1982년 크리스마스 때 TV 프로그램 『H.R. Pufnstuf』 사운드트랙과 알이오 스피드왜건REO Speedwagon의 《High Fidelity》, 오잉고 보잉고의 《Nothing to Fear》를 갖고 싶어 한 커트. 메리는 그해 크리스마스 파티 때 조카가 저 앨범들을 들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커트는 그런 이모에게 본조 도그 밴드Bonzo Dog Band의 《Tadpoles》를 선물 받았는데, 이 앨범에 있는 <Hunting Tigers Out in Indiah>를 좋아한 그는 따로 기타 연습까지 했다. 커트는 크리스마스 선물들로 음악 듣는 폭을 더 넓힌 열다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마리화나를 피웠다. “마리화나를 피우며 편집증이 심해져 가뜩이나 예민한 성격이 더 예민해졌다.” 스스로 문제라는 걸 깨닫고서도 그는 해가 질 때까지 거의 마리화나에 취해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