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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 존슨과 K 레코드

by 김성대
처음엔 너바나가 ‘올림피아 밴드가 되고 싶은 애버딘 밴드’인 줄 알았다.

리치 젠슨, Rich Jensen 서브 팝 총괄 매니저


K 레코드K Records와 캘빈 존슨은 내 어린 시절과 젊음, 순수함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일깨워주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고, 난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

커트 코베인


커트는 언젠가부터 멜빈스와 함께 애버딘에서 동쪽으로 50마일 가량 떨어진 올림피아에 자주 갔다. 올림피아는 보헤미안과 다양한 취향을 가진 부적응자들misfits의 안식처이자, 모험적 인디 음악의 온상인 에버그린 주립대학The Evergreen State College이 있는 곳이었다. 80년대 중반 올림피아 신scene은 에버그린 주립대학 기숙사, 하우스 파티, 대여회관rental halls, 지역 펑크 공연장인 올림피아 트로피카나The Olympia Tropicana, 대학 라디오 방송국 KAOS-FM 등으로 활기를 띠었다. 커트는 이 시기 대부분 주말에 올림피아 밴드들을 보러 다녔다. 당시 올림피아의 젊은 문화는 하드록을 꺼렸다. 대신 재드 페어Jad Fair나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가 옴브레스The Hombres, 위 더 피플We The People, 아웃사이더스The Outsiders 등과 비교하며 60년대 개러지 펑크를 재창조했다고 평가한 비트 해프닝Beat Happening을 선호했다.


비트 해프닝의 대표작 《Jamboree》. 커트도 매우 좋아했던 작품이다.


클래시 풍 기타 리프와 조나단 리치먼Jonathan Richman 식 가사를 결합한 윔프스The Wimps는 영 파이오니어스The Young Pioneers, 비트 해프닝 등과 함께 대립이나 공격성보단 10대들의 좌절과 재미를 강조했다. 이는 80년대 이래 캘빈 존슨의 K 레코드를 통해 증폭돼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비롯한 수많은 밴드, 음악가, 팬들에게 영향을 준 올림피아 신의 특징이 되었다.

사이먼 레이놀즈

얼터너티브 록 밴드 스크리밍 트리스Screaming Trees의 기타리스트 개리 리 코너Gary Lee Conner는 애니메이션 『스누피 -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에서 ‘아이들이 춤을 추고 슈로더Schroeder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 비트 해프닝의 퍼포먼스를 빗댔다. 뭔가 어설프고 순수하다는 뉘앙스인데, 90년대 펑크 록 밴드 팀 드레시Team Dresch의 도나 드레시Donna Dresch, 기타/베이스는 본인이 직접 본 비트 해프닝 공연을 이렇게 묘사했다. “기타 한 대에 플로어 톰과 스네어만 갖춘 드럼, 캘빈은 초현실적인 아카펠라 스타일 노래와 춤을 펑크 쇼에서 펼치고 있었죠. 라디오에서 비트 해프닝을 들으며 ‘저 사람들은 악기를 못 다루는구나’ 생각했는데, 공연을 보고서야 그들 연주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캘빈 존슨의 K 레코드는 비트 해프닝을 비롯해 슈프림 쿨 비잉스Supreme Cool Beings, 존 포스터스 팝 필로소퍼스John Foster’s Pop Philosophers, 영 파이오니어스 등이 활약한 현장을 카세트테이프에 기록했다. 또한 캘빈은 공동 운영자인 캔디스 피터슨Candice Peterson과 함께 영 마블 자이언츠Young Marble Giants, 클리넥스Kleenex, 바셀린스The Vaselines 등 자신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해외 밴드들의 앨범도 유통했는데 평론가 에버렛 트루는 슈퍼청크Superchunk, 폴보Polvo, 세바도Sebadoh, 쇼넨 나이프Shonen Knife, 호주 팝 밴드 캔나네스The Cannanes 같은 비주류 밴드들을 캘빈에게서 습득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캘빈이 이끈 80년대 초 올림피아 신은 레이블 디스코드Dischord Records를 운영한 이언 맥케이Ian MacKaye의 워싱턴 DC와 자매 도시에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닮은 비전을 가진 두 인디 레이블의 운영자는 각자 밴드인 푸가지Fugazi와 비트 해프닝의 합동 투어를 열어 우정을 더 돈독히 다졌다.


'올림피아와 워싱턴DC의 우정' 이언 맥케이(왼쪽)와 캘빈 존슨. 펑크 팬진 『플립사이드』에 싣기 위해 KRK 도밍게스KRK Dominguez가 찍은 것이다.


10대 때부터 올림피아에서 음악을 했어요. 그러다 라디오 방송국 KAOS에서 일하며 잡지에 글을 썼고, 밴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음반사 설립까지 같은 맥락으로 보였죠.

캘빈 존슨


베이시스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올림피아 밴드들은 코러스와 버스 사이에서 악기 솔로 대신 리듬을 강조했다. 간간이 한 줄짜리 기타 연주가 있었지만 ‘솔로’라 부르기엔 민망했다. 캘빈은 이 상황을 장악했고 올림피아 음악 신을 지배했다. 장악력과 지배력의 정도는 캘빈과 똑같이 말하고 옷을 입으면서 아이 같은 순수한 상태를 동경한 캘빈주의자들The Calvinists이 대변해 주었다. 그들은 마약을 하지 않았고, 헤어 메탈의 유행을 비웃듯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다. 또 서로의 밴드에서 연주했으며, 자신들만의 커피숍과 레코드 가게를 운영했다. 한때 리키 리 존스Rickie Lee Jones가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한 KAOS는 사실상 그들만의 라디오 방송국이었다.


K 레코드 로고. 커트는 이 로고를 왼쪽 팔뚝에 새겼다.

커트는 저 ‘K 집단’의 음악과 메시지를 좋아했다. 특히 캘빈이 소개한 밴드 중 바셀린스를 향한 커트의 사랑은 세상을 등질 때까지 계속되는데, 그는 그 음악에 대해 “이전까지 들어본 적 없는, 음악에 대한 새로운 문이 열렸다”라고 말했다. 좋은 추억, 그리고 너바나의 일부가 될 'K 음악'을 통해 커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캘빈과 K 레코드를 향한 흠모의 표시였을까. 한날 커트는 올림피아 문신 가게에 가 캔디스 피터슨의 도움으로 왼쪽 팔뚝에 K 레코드 로고를 새겼다. 커트는 문신 한 이유를 “내가 어린아이임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커트가 ‘K의 정신’을 모조리 받아들인 건 아니다. 그는 머리 기르길 좋아했고 마약도 좋아했다. 사실 저 문신을 새길 때도 커트는 마약에 취해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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