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 경기 침체는 시애틀에 큰 타격을 주었다. 당시 시애틀에는 보잉 밖에 없었는데, 70년대에 몇 가지 문제를 겪고 있던 보잉은 문을 닫겠다 위협했고 그에 맞춰 시애틀 곳곳엔 ‘시애틀을 떠나는 마지막 사람은 불을 꺼주시겠습니까?’라는 광고판이 걸렸다. 그때 시애틀은 정말 문을 닫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83년 즈음 헤로인이 그 황량했던 도시에 스며들어 유행하기 시작했다.
더프 맥케이건
중독의 가장 큰 문제는 중독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제리 캔트렐(Jerry Cantrell,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 기타/보컬)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을 통치한 1986년은 냉전이 격화되던 시기였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표현대로 레이건의 통치는 ‘환상의 통치’였다. 미국은 레이건의 이미지 속에서 캘리포니아가 되었다. 즉 전직 배우이자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레이건은 북미 서부의 인공 낙원에 대한 행복하고 영화 같은, 외향적인 광고 비전을 나라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햇살 가득하고 화창한 미국. 이것이 레이건 대통령이 일궈낸 신기루였다.
80년대 중반은 워런트Warrant,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 밴 헤일런Van Halen 같은 밴드들 공연이 경기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음악을 귀에서 눈으로 데려갈 MTV도 개국 한 지 5년 밖에 지나지 않은 당시였다. 그런 레이건 통치 기간 동안 대중음악계 언더그라운드는 주류와 정확히 상반되는 곳에 존재했다. “80년대 미국 펑크는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이 된 후 더욱 강경해졌다”는 말은 빈말이 아닌 듯 했다.
주류와 비주류 차이의 가시화, 정치적 신기루와 냉전, 헤어메탈의 전성기가 공존하던 1986년 3월. 크리스와 셸리는 일자리를 찾아 애리조나 주 피닉스로 이사했다. 하지만 그들은 기존에 살던 100달러 월세 아파트로 곧 돌아왔다. 답답하고 지독한 더위와 강성 공화당원들에 지쳐서였다. 둘은 반년 간 그곳에 머물다 인근 호퀴엄에 있는 차고 위 아파트로 집을 옮겼다. 이어 연인은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도축되는 모든 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채식주의는 정말 좋은 일처럼 보였죠.”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전기도 수도도 쓰지 않는 노인이던 드와이트 코비Dwight Covey라는 크리스의 직장 동료에게 받은 영향이었다.
앞서 더프 맥케이건이 말한 시애틀의 절망적 상황은 이 시기 애버딘까지 뻗친 걸로 보인다. 커트가 그런트Grunt라는 마약상과 어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커트에 따르면 그런트는 판매 뿐 아니라 스스로도 심각한 마약 중독자였다. 약국을 털며 마약을 구한 그런트는 한없이 비열한 인물이었지만 사람들이 그와 어울렸던 이유는 단 하나, 어떤 마약이든 그에게서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트는 마약이 자신의 운명인양 아제라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무서웠어요. 하지만 늘 해보고 싶었고, 언젠가는 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트는 마약성 진통제인 펄코단Percodan 한 줌을 작은 호일 또는 플라스틱 파우치에 담아 커트에게 가져다주며 단돈 1달러만 청구했다. 커트가 펄코단을 좋아했던 이유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AK-47 소총을 학교에 가져와 모두를 날려버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커트 코베인
사람들이 그런 커트를 멀리하는 사이, 펄코단은 커트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펄코단을 먹으면 사람들이 그렇게 미워지지 않았어요. 마치 잠을 자지 않고도 잠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달까요. 최고의 행복감을 느꼈죠.” 커트는 마약에 대해 너무 순진해서 펄코단이 중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하루 10개까지 복용하는 등 자신도 모르게 중독되어 갔다. 두 달 뒤 그런트가 약을 대주지 않으면서 커트는 펄코단을 끊어야 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며 커트는 대수로워 않아 했지만, 복용을 멈춘 뒤 설사를 하고 에릭 실링거의 침대에 누워 며칠 동안 식은땀을 흘렸다. 1986년 여름 어느 날 밤, 커트는 끝내 그런트와 함께 헤로인에 손을 댄다. 그는 87년 애버딘에서 처음 헤로인을 했다고 일기에 썼는데, 아무래도 이 즈음인 듯싶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약을 먹으면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이 커트에게는 신앙처럼 강했어요.” 숙모 비벌리 코베인Beverly Cobain의 증언은 커트의 마약 의존을 예고했다. 크리스가 채식주의에 심취했을 때 커트는 마약에 빠져들고 있었다.
헤로인의 매력이란 결국 키스 리처즈Keith Richards나 이기 팝 같은 로커들을 통해 마약이 얻은 ‘퇴폐적이고 무법자적인’ 매력이었다. 이기 팝을 우상으로 여긴 커트에게 그 매력이 침투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까. 애버딘에서 헤로인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커트. 그는 애버딘에서 헤로인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마약에 손을 대도 중독될 가능성은 없으리라는 안이한 생각을 했다.
마약의 영향인지 커트는 고등학교 때부터 주변 환경이 못마땅해 주먹을 쥐고 얼굴을 긁거나 강박적으로 머리를 뒤집는 등 신경성 틱Tic 증상을 보였다. 눈도 경련을 일으켰다. 심지어 모든 지인이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고 상상하기까지 했다. 커트의 내면에선 이때부터 ‘외부인’에 대한 불신이 커갔다. 그는 스스로 정신분열증에 걸린 게 아닌가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 에릭 실링거와 피자를 놓고 “유혈이 낭자한” 주먹다짐을 한 뒤 커트는 그 집을 나왔다. 커트는 스티브 실링거에게 10달러를 주며 자신의 짐을 데일 크로버의 집으로 옮겨 달라 부탁하고, 며칠간 버즈 오스본의 집에 머물다 다시 엄마 집으로 들어갔다. 스티브는 커트에게 돌아오라고 했지만 커트는 이를 거절하고 “다리<Something in the Way>에 등장하는 영 스트리트 다리Young Street Bridge를 가리킨다로 돌아가 누군가 물고기에 독이 있다고 말하기 전까지 물고기를 잡아먹었다”고 마이클 아제라드에게 말했다. 커트는 종종 크리스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마리야 헤어 디자인’ 2층에서도 잤다.
1986년 9월, 커트는 엄마에게 집에서 몇 백 야드 떨어진 이스트 애버딘 2번가에 있는 낡고 작은 판잣집을 얻어달라고 했다. 집 앞 현관이 떨어져 나간 탓인지 월세는 100달러에 불과했다. 새로운 룸메이트는 숙련된 목수였던 멜빈스의 베이시스트 맷 루킨. 맷과 함께 사는 건 멜빈스와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실제 커트와 맷의 집에 버즈, 데일이 자주 찾아와 즉석 연주를 하곤 했다. 집에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음식은 낡은 아이스박스에 넣어 뒤 베란다에 보관했다. 커트는 한날 거북이 여섯 마리를 사서 거실 한가운데 있는 욕조에 넣었다.
거북이에게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매력이 있다. 거북이는 기본적으로 ‘나는 수조에 갇혀 있고 비참하고, 당신을 싫어하고, 당신의 장난감이 되지 않겠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지. 그들에겐 보호막(등껍질)도 있는데, 사실 그건 사람들이 생각하듯 보호용 덮개가 아니야. 저들에게 등껍질은 돌출된 척추와 같아서 예민하고, 두드리면 다칠 수도 있어.” - 커트 코베인
어느 때부터 커트와 맷의 집은 제시 리드까지 합류해 ‘중독자들의 소굴’이 되어 갔다. 비행의 온상이 된 그곳에서 셋은 기침약, 면도 크림 캔 등을 남용하며 환각을 경험했다. 그렇게 맷과 함께 산 지 5개월. 커트는 테이프를 바닥에 붙이더니 “선을 넘어오지 말라”며 친구를 밀어냈다. 화장실이 커트 쪽에 있었기에 맷은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커트는 맷이 이사 간 뒤에도 두 달 동안 판잣집에 머물며 밀린 집세를 내기 위해 오션 쇼어스Ocean Shores 인근 콘도 리조트에서 수리공으로 일했다. 이 시기 커트는 “가장 극단적이고 오랫동안” 마약을 했다. 목격자 스티브 실링거의 말이다. “커트는 늘 마약을 샀고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양을 했어요. 환각에서 깨어나기가 무섭게 해댔죠.” 커트가 세상을 등질 때까지 이어질 마약 남용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버트 잰시Bert Jansch의 <Needle of Death>가 묘사했듯, “피로 녹아드는 새하얀 눈” 속에서 커트는 언젠간 질식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