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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08. 2017

괴짜 뮤지션이라는 편견 깨기

<송창식에서 일주일을>, 가쎄(gasse)


이 책은 소설 ‘당신만 모르는 이야기’를 쓴 박재현이 어린 시절 들은 “헬륨을 반 모금 정도 마신 듯한 무당 같던 여성 보컬”들이 선배라고 불렀던 한 가수에 빠진 끝에 세상 빛을 볼 수 있었다. 그 가수는 송창식이었고 그래서인지 책 곳곳에는 송창식을 향한 저자의 팬심이 묻어나는 글귀들로 빼곡하다.


특이한 것은 책 제목이 송창식과 일주일을, 이 아니라 송창식'에서' 일주일을, 이라는 것이다. 이는 세계 유명 지역들을 주제로 펴온 출판사 가쎄(gasse)의 '일주일을' 시리즈를 장소가 아닌 사람으로 옮겨온 것인데, 박재현에게 송창식은 가요계 빼어난 인물을 넘어 그 자체 하나의 섬 같은 존재였기에 붙은 제목이었다. 인터뷰 형식을 띤 이 책의 주제는 단 하나. 세상이 괴짜라 부르는 싱어송라이터 송창식을 향한 편견 어린 시선을 당사자의 말과 팩트로 하나둘 해체해나가는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겪어보고 이야기를 나누어봐야 아는 법. 우린 아직 송창식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송창식은 한국전쟁 즈음에 태어났다. 말보다 소리를 먼저 배웠다는 그는 4학년 때 음악책에서 음계를 터득, 채보와 작곡까지 가능했다고 하는데 세간이 탄복한 천재성은 꽤 오래 전부터 송창식이라는 아이를 감싸고 있었던 듯 보인다. 지금도 하루 몇 시간씩 기타의 기본 박자를 연습한다는 그에게 노래는 음악을 넘어 신성한 학문이다. 학문이라는 것은 감상이 아닌 연구 대상이므로, 타고난 연구 본능에 기댄 그만의 탐구생활은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작업하던 습관을 바탕으로 이후 분야를 묻지 않고 적용되기 시작한다. 가령 변기에 앉아 1시간 동안 뭐라도 닥치는대로 읽는다거나, 매일 두 시간 두 팔 벌려 방안을 뱅글뱅글 도는 '자전 공전' 운동, 본인이 손수 디자인 해 입는 개량 한복, 그리고 5년간 건축 공부를 해 직접 설계한 집 등은 모두 도전과 배움을 향한 그의 집념을 보여주는 대목들이겠다.


그리고 음악이다. 익히 알려진대로 뮤지션 송창식의 뿌리는 서양 클래식이다. 살을 붙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바흐를 좋아하는 그. 하지만 클래식은 뿌리일 뿐이지, 송창식의 전부는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선택한 대중음악 안에서 그는 재즈와 트로트, 록과 팝, 포크와 국악을 클래식과 함께 그야말로 가지고 놀았다. "가장 오래, 길게, 크게 갈 수 있는" 클래식 발성을 기본으로, 그런 서양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형태가 트로트라고 말하는 송창식은 한국말 자체가 서양의 12음계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 음악과 자기 안의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천생 한국형 뮤지션이다. 윤도현이 ‘시가렛 걸’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부른 ‘담배가게 아가씨’보다 ‘가나다라’가 미국 현지에서 더 인기 있었을 거라 그가 확신한 이유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서양음악을 제대로 할 거면 ‘내가 틀렸다’라는 개념에서 시작해야 해요 (…) 그런데 정작 최고라는 아이들은 남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연습만 하면 잘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개념을 먼저 만들고 연습하는 것과 연습하다가 개념이 생기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거든요. 서로의 다름을 알고 시작한다면, 어쩌면 그들을 이길 수도 있어요. 또 자신의 일 앞에선 펑펑 울며 스스로에게 신랄하게 해야 해요. 그 분야에서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는 각오로요.” 



그 외 얇지만 꽉찬 이 노란 인터뷰집은 윤형주와 함께 했던 쎄시봉/트윈폴리오 시절과 70년대 대마초 파동 때 썼던 누명, ‘푸르른 날’ 서정주 시인을 향한 동경, 자신을 롤모델로 삼는 이선희, 함춘호와 자신이 인정하는 조용필, 정훈희에 대한 생각, 한때 연인이었던 주미옥(루비 시스터즈)과 인연, 지독한 가난 끝에 겪은 노숙 생활과 그 때 배운 명상 테크닉(단전호흡), 그의 일생을 바꾼 40일간 부산 무전 여행, 그리고 1천 곡이 넘는(모두 완성곡은 아니다)미발표곡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 십 년간 그가 새 앨범을 발표하지 않은 속사연까지, 사람들이 몰랐거나 또 알고 싶어한 송창식에 관한 내용을 제법 폭넓게 그리고 성실하게 다루고 있다.


다만 문장 곳곳에서 감지되는 송창식을 향한 저자의 맹목적인 존경심이 자칫 훌륭한 재능을 갖춘 한 싱어송라이터를 지나치게 신격화, 우상화 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분명 있다. 세상의 나쁜 것은 모두 좋은 것이라는 송창식의 긍정은 좋지만 괴짜라는 편견을 없애려는 책이 저자의 편애에 사무친 것은 살짝 아쉽다는 얘기다.



“절대 그만두지 말라는 거죠. 계속하는 게 힘들면 하면 안 돼요. 그러나 ‘이것은 힘든 일이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 일은 세상에 없어요. 내가 좋아하느냐 안 좋아하느냐 그거만 있지. 그러니깐 좋아하면 그만이에요. 한 우물이 아니어도 돼요. 사는 거 자체가 한 우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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