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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30. 2021

영화로 듣는 6070 팝 플레이리스트

<크루엘라> OST


‘영화음악’과 ‘음악영화’는 비슷해 보여도 엄연히 다른 말이다. 전자는 영화에 들어간 음악을 뜻하는 반면, 후자는 그 영화를 있게 한 음악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음악영화’는 거칠게 세 가지 정도로 분류되는데 마틴 스코세이지의 <좋은 친구들>처럼 음악이 영화를 이끄는 경우와 <레이(Ray)>처럼 뮤지션의 일대기나 <레미제라블> 마냥 뮤지컬 원작 등 영화 자체가 음악을 전제하는 경우, 그리고 <아이 앰 샘>(비틀즈)이나 <스쿨 오브 록>(AC/DC) 등 영화가 아예 특정 아이콘에게 헌정되는 경우가 있다.  

   

영화 <크루엘라>는 그런 면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경우에 해당하는 완벽한 ‘음악영화’다. 아니, 꼭 표면적인 스타일을 떠나서라도 <크루엘라>는 이미 구상에서부터 음악영화였다. 감독 크레이그 길레스피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무려 2천여 곡을 들었고 거기에서 50곡 정도를 추려내 영화에 담았다. 감독이 호주 출신이어서 그런지 영화 속엔 미국과 영국의 60~70년대 대중음악이 엇비슷한 비율로 삽입됐는데, 이 음악들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들의 귀를 한 순간도 쉬게 하지 않는다.


크레이그는 1970년대와 런던, 펑크록이 <크루엘라>의 시대적 배경이 될 것임을 알았다. 비록 영화를 두고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이미지는 블론디의 데뷔 앨범(블론디는 미국 펑크/뉴웨이브 밴드다)이었지만, 감독의 뇌리엔 70년대 영국을 들썩였던 록 장르(펑크)가 다른 어떤 것들보다 깊이 자리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70년대 영국 펑크록 영화 사운드트랙 전반을 주무르고 있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영화에서 들을  있는 영국 펑크록은 클래쉬의 ‘Should I Stay Or Should I Go’ 정도 밖에 없다. 비슷한 성향의 스투지스(영화에선  맥크레가 "허무주의적 의기양양함"으로 무장한 이들의  ‘I Wanna Be Your Dog’ 불러 작품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를 꾸민다) 수지 쿼트로는 모두 미국 출신이다. 그러니까 감독이 밑줄 쳐둔 시대 배경이란 결국 영화의 시공간(70년대 런던)  시대에 유행한 음악 장르의 태도(또는 정신) 주목한 결과이지, 음악 자체를 특정 장르에 한정 짓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음악에서만 따지자면 <크루엘라> OST는 장르로나 시대로나 그 폭이 꽤 넓다. 앞서 말했듯 로큰롤과 훵크, 포크와 컨트리, 알앤비와 솔(Soul), 하드록과 글램록, 디스코가 동시다발로 인기를 얻었던 60~70년대 영미권 대중음악이 핵심에 있고 조지아 깁스나 토니 마틴 같은 50년대 이지리스닝/어덜트 컨템포러리도 그 언저리에 양념처럼 뿌려져 있다. 사실 말이 60년대이지, 니나 시몬과 도리스 데이의 1964년 곡들과 영화 <멕시칸> <풀 메탈 재킷>에도 들어갔던 낸시 시나트라의 ‘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g’ 등 대여섯 곡 정도를 빼면 66년 애니멀스의 ‘Inside - Looking Out’을 비롯해 68년 좀비스의 ‘Time Of The Season’과 ‘도어스의 ‘Five To One’, 딥 퍼플의 ‘Hush’, 69년 비지스의 ‘Whisper Whisper’는 그 아성과 영향력이 70년대로 자연스레 이어지거나 더 폭발할 뮤지션들의 것이어서 사실상 <크루엘라> OST는 70년대 팝록 메들리라 해도 무방한 것이다.     



그렇게 모타운 뮤직과 디스코가 공존한 영미권의 60년대 후반~70년대는 이른바 ‘3J(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가 거의 동시에 사라졌음에도 흔히 ‘록의 시대’로 분류되는 만큼, 록 음악의 존재감은 이 영화에서도 남다르다. 가령 자동차 추격 장면에 더할 나위 없는 배경 음악이 되어준 퀸의 ‘Stone Cold Crazy’, 부분 줄거리에 음악으로 주석을 단 블랙 사바스의 ‘The Wizard’와 이엘오의 ‘Livin’ Thing’, 아예 제목에 크루엘라의 성(De Vil)이 녹아있는 롤링 스톤스의 명곡 ‘The Sympathy For The Devil’은 그 시절 록 음악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겐 가슴 뭉클한 무엇으로 전해졌을 법 하다. 그럼에도, 그 시대를 록에게만 넘겨줄 수 없는 이유인 훵크/솔의 그루브 역시 영화 곳곳에 숨 쉬고 있기에 이는 아이크 앤 티타 터너가 리메이크 한 ‘Whole Lotta Love’(레드 제플린)와 ‘Come Together’(비틀즈)를 통해 적절히 중재되고 있다. 이것들과 별개로 수록곡 ‘Boys Keep Swinging’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보위의 글램록 향수를 패션 디자이너 아티(존 맥크레)로부터 찾아보는 것은 영화를 보는 또 하나 재미일 수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유심히 봐도 좋겠다.     


혹자는 <크루엘라>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조커>와 만난 것 같”은 영화라고 했다.(한 가지 재밌는 건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1936)에 삽입된 ‘Smile’이 다른 버전으로 <조커>와 <크루엘라>에서 똑같이 흐른다는 점이다.) 공감한다. 영국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을 깊게 참고한 크루엘라의 성정과 본질은 분명 저 영화들 사이 어딘가에 있다. 또 크레이그 감독이 <아이, 토냐>에서 함께 한 니콜라스 카라카차니스의 렌즈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의상을 맡았던 제니 비번의 안목은 확실히 영화의 플롯과 연출을 압도했다. 특히 바로니스(엠마 톰슨)의 패션쇼 현장을 구석구석 누빈 니콜라스의 롱테이크 트래킹 숏이나 난동에 가까운 크루엘라의 패션쇼를 지휘한 제니의 현란한 감각은 눈여겨 볼만 하다. 연기에선 <헬프>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이 다소 작위적인 설정과 흐름에 내던져진 모양새라면, <센스 앤 센서빌리티> <아버지의 이름으로>의 엠마 톰슨은 비교적 자신에게 어울리는 캐릭터 안에서 마음껏 실력을 펼친 느낌이다. 적어도 이 영화에선 주연(엠마 스톤)이 조연(엠마 톰슨)에 뒤졌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크루엘라>는 어디까지나 음악에 의한 음악을 위한 영화다. 감독도 고백했듯 이 영화에서 “음악은 또 하나의 캐릭터”였다. 그는 이 캐릭터와 다른 캐릭터들을 거머쥐고 마치 인디 영화처럼 신나게 찍었다고 말했는데, 이는 70년대 대중음악에서 펑크록과 훵크가 인디(Indie Music)에 속했던 점을 은연 중 포함하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디즈니가 만든 인디 영화. 이 참신한 모순은 엔딩 곡 ‘Call Me Cruella’를 런던 출신 인디록 밴드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이 불렀다는 사실에서 더 진정성을 얻는다.


*참고자료

<미국대중음악> (래리 스타/크리스토퍼 워터먼, 한울)

<씨네21> 2021년 5월 26일자 "'크루엘라'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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