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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Mar 18. 2024

식세기를 만나고 열린 새 세계

난 좋아하는 청소와 싫어하는 청소가 명확하다.


청소의 분류를 걸레질, 설거지 등 윤을 내는 ‘닦기’ 그리고 침구 정리, 분리수거 등 ‘정리하기’로 나눌 수 있다면, 나는 ‘닦기’를 선호한다. 이 중에서도 나의 최애 항목은 단연 설거지.


그래서인지 밥을 먹고 나면 그릇들을 개수통에 담가 놓지 않고 바로 처리하는 편이다. 사실 둘이 먹은 후의 설거지 양은 재미를 즐기기에는 다소 적다. 그렇기에 손님을 치르고 난 뒤 가득 쌓인 그릇을 부실 때면 마음이 더 좋다. 잔뜩 쌓인 그릇을 하나하나 부시다 보면, 사이사이 끼어 있던 마음속의 먼지들마저 씻겨 나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지난 연말 어머님께서 식기세척기를 선물해 주셨다. 세정력과 소독력, 물 절약성…. 모든 영역에서 나보다 뛰어나다. 그릇을 부시다 가끔 귀퉁이를 깨는 일이 있었는데 나처럼 실수할 일도 없다. 이제는 큰 냄비나 프라이팬을 제외하고는 설거지할 일이 없다.


'난 설거지 진짜 좋아해'


라고 외치고 다녔던 내가 무색할 정도로 이 효율적인 상황에 나는 빠르게 적응해 버렸다.

하지만 이 안에도 나의 역할은 있다. 자르지 말고 한 알씩 쓰라고 맞춤형 고체 세제가 나왔지만, 우리는 설거지 양이 적어 반 개면 충분하다. 종이컵 안에 고체 세제를 1/2로 잘라두어 꺼내 쓰기 쉽게 한다. 기름이 많이 나온 그릇을 씻을 때는 중간에 EM 발효액을 넣는다. 이렇게 하면 미끌미끌한 기름때가 사라지고, 유리병에 남는 손자국도 없다.


"와, 식기세척기는 미쳤어. 최고야. 짜릿해!"


주위에 식기세척기의 장점을 열변하기 시작한 나의 모습에 내가 놀란다. 물샤워를 마치고 뽀득뽀득해진 그릇을 보며 상쾌함을 느낀다. 식사를 마치고 5분도 안되어 개인시간을 가지고 있는 현실을 보며 ‘레버리지의 위대함’을 느끼기도 한다.


식기세척기를 통해 새 세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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