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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 Oct 24. 2022

"흉터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니다"

#.7  2018.10. 부상 복귀 후

재활만 잘 해내면 다시 예전 같은 가벼운 몸놀림을 보일 수 있을 것이란 나의 믿음은 큰 착각이었다. 막상 운동장에 들어가니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조금만 뛰어도 호흡이 가팔라졌다. 정신은 이미 '또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부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치열한 경기장 안에서 상대를 보고 두려워하는 건 나뿐이었다. '또 다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수비가 뒤에 있으면 무서웠고, 공이 높이 떠 헤딩이 필요한 순간 나는 도망가버렸다. 넘어지기가 싫어서 부딪치지 않기를 발악했다.


55분, 복귀 후 출전한 전국 대회에서 매 경기 딱 55분 뛰었다. 그나마 이만큼 뛸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팀에서 주장이었고, 자신감을 되찾아 가라는 감독님의 배려 덕분이었다.

예선 마지막 경기, 0:0으로 팽팽하게 맞서던 상황 역시나 교체판에 적힌 번호는 10번이었다.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고 답답했다. 손에 쥐고 있었던 물병을 던져버리고 고개를 숙인 채 남은 경기를 보지 않았다. 결과는 1:0 승, 우리는 16강에 올랐다.


그날 밤 역시 핸드폰 메시지는 숫자 2를 가리켰다.


아빠: 지금 감독님이랑 얘기하고 오는 길인데, 감독님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더라. 대회 정리하고 집 가서 결판을 내자. 너 벌써 몇 개월 지나면 고3이다?


아빠: 선택해. 이렇게 할 거면 때려치우고 대학 가지 마. 빨리 기술 배워가지고 사회 나가서 돈 버는 게 훨씬 나아. 감독 코치님도 한숨 쉬더 라.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대.


 '만약에 내가 그만두면 뭘 할 수 있지? 대학은 갈 수 있을까? 친구들은 축구로 잘 나가는데 나만 그만두고 다른 길을 가면 배 아파서 보고 있을 수 있을까?'


시샘, 걱정, 두려움, 질투라는 낫 부끄러운 감정과 동시에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무수히 쏟아졌다. 결론은 아직 '포기할 수 없다’였다. 지금 그만둔다면 나의 축구인생은 영원히 패배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일말의 성공 경험이나 죽을 만큼 노력해보았다는 자신감 같은 좋은 기억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나:  다시 한번 열심히 해서 이번에는 꼭 바뀌어 볼게요...



 이번 한 번만 한 번만, 노력해볼게. 나는 그동안 거짓말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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