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2018. 12. 겨울 전지훈련
코치님: 다 나왔냐? 내려가자.
악명 높은 겨울 전지훈련 시즌이 시작되었다. 보통 다니던 학교의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훈련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올해는 한 달 일찍 전지훈련이 시작되었다.
축구 특기생으로 좋은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전국 대회와 주말마다 진행되는 리그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만 했다. 운동선수들의 한 해 농사라고 불리는 겨울 전지훈련이 고3 진학을 앞둔 우리들 앞에 찾아왔다.
코치님: 오늘 3km 언덕 1개 뛰고, 70m 언덕 전력 질주 10개, 계단 오르기 (내 기억으로 64개쯤이었던 것 같다.) 10개 하고 새벽 운동 마무리할 거야.
뒤에 쳐지는 사람 없게 잘해라.
우리 팀의 숙소는 산골짜기 맨 윗자락에 위치해 있다. 기다랗고 구불구불한 언덕은 마치 스키장 중급 코스를 연상시킬 정도의 포스를 풍겼다. 길이는 자그마치 3km.
나: 내려오다 도망 간 애들 없지? 인원 체크하고 출발하자.
어두컴컴한 새벽 시간에 40여 명이 모여 있는 것이라곤 전혀 믿을 수 없을 만큼 주변은 고요했고,
바로 옆 군부대 숙소의 기상 사이렌은 항상 훈련의 시작을 알리는 코치님의 휘슬 소리보다 늦었다.
코치님: (맨 뒤에서 차를 타고 올라가시며 크락션을 누른다) 야, 뒤에 빨리 안 붙냐? 어떻게 뒤에 있는 애들은 맨날 뒤에 있어? 초에 못 들어오기만 해 봐
모두: …
코치님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이 목부터 코까지 꽉 막아버리는 느낌,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다. 단순히 숨만 차서 힘들 다기 보단 아직 반 밖에 올라오지 못했다는 점, 앞으로 이 고통을 20번이나 더 느껴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더 옥죄여 왔다.
코치님: 이번에는 70m 전력 질주할 거고, 11초에 끊는다. 3인 1조로 10개 뛸 거고, 그 조에 못 들어오는 인원 있으면 카운트 안 셀 거야.
40여 명이 얽히고설켜 있어 주변은 혼란스러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렇지 않게 모두가 정열을 맞춰 각자의 위치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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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야, 코치님 한테 좀만 줄여달라고 하면 안 되냐..(헉헉)
나: 코치님, 죽을 거 같아요. 진짜 좀만 줄여주시면 안 돼요?
코치님: 그래, 파이팅 외치는 거 한번 보자.
우리가 전력 질주를 시작하기 전 출발할 때 외치는 구호는 "나가자"였다. 언제부터 이런 구호를 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전쟁터에서 죽을 각오로 싸우러 가는 전사들의 간절한 마음과 똑같지 않았을까?
1조: 나가자!!!!!!!!!
2조: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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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팀이 출발할 때마다 "나가자"라는 우리들의 포효는 산 정상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어떻게든 한 개라도 줄여보겠다는 그 간절함. 단순히 큰 목소리가 아닌 '악'이 터져 나왔다. 호흡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가파랐고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이 짧지만 강한 외침이 우리 팀원 모두를 '악'이라는 강한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코치님: 목소리가 작다. 이래 놓고 뭔 개수를 줄여 달라는 거야!!
7조: 으아아아아앜!!! 나가자!!!
.........
코치님: 오케이. 마지막 계단 뛰기로 넘어가자.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팀원 중 멀쩡해 보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점은 모두 64개나 되는 지옥의 계단을 또 뛰고 있다는 것이었다.
코치님: 이번에도 파이팅 한번 보겠어.
1조: (헉헉) 나가자!!
2조: 나가자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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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님: 야, 아까랑 왜 이렇게 달라. 목소리 작아졌다. 더 크게 안 해?
목소리 보고 이걸로 끝낼 수도 있고 10개 다 할 수도 있다.
8조: 으아아아앜 나가자!!!!!!!!
9조: 나가자!!!!!!!!!!!!!
코치님: 야, 봐라. 너네 목소리 낼 수 있는데 안 한 거지? 주변에서 좀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아는데, 너넨 항상 똑같아. 욕심이 없다고. 그딴 정신력으로 좋은 대학? 프로?
니들이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너네는 너네 스스로 끊임없이 타협하고 합리화하면서 최선을 다 안 하고 있는 거라고. 알아?
다음부터는 봐주는 거 없다. 알겠냐?
코치님: 으휴. 마무리해라
눈이 풀린 채 차가운 돌바닥에 모두가 주저앉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쓰러진 것이다.
알 수 없음: 하아... 시... X... 힘들다
제정신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이 욕은 진심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이렇게 한다고 바뀌긴 할까?"
"왜 하는 거지?'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당장 올해 있을 대학입시에서 내가 원하는 대학교에 지원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이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축구 특기자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해당 학교에서 요구하는 일정 성적 이상이 되어야 지원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1년에 딱 3번 있는 전국대회, 그리고 리그전을 위해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모두가 살기 위해 우리는 뛰었던 것이다.
결국 축구는 '팀'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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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선생님: 자 수업 시작하자. 우리 축구부 친구들은 선생님이 얼굴 좀 봐야지. 얼굴 까먹겠어.
이제 마지막 기말고사 얼마 안 남은 거 알고 있지?
학교 선생님: 오늘 시험에 나오는 거 많이 할 거야.
지옥 맛 새벽훈련의 끝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 9시, 학교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