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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 Oct 27. 2022

"아니라고 할 때 갈 수 있는 용기"

#. 10 2019. 9. 갑작스러운 결심, 모 아니면 도

8월 마지막 대회를 끝으로 우리의 긴 여정은 끝이 났다. 대부분 고3 동료들은 "이제 끝났다"는 해방감에 표정들이 한 껏 밝아 있었다. 시합 장소가 제주도였던 터라 시간이 맞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하루 이틀 더 즐기고 가기로 했다.


나: 타이머 맞춰 놨다. 야야 빨리빨리 포즈 잡아.

     찍힌다~ 하나, 둘!

(찰칵)

친구들: 잘 나왔어? 단톡방에 올리자.

          바로 입수 가자!!

(우와 아아아 아아아!!)


고3 수험생들의 해방감. 결과와는 별개로 모두 활짝 웃고 있었다. 나 역시도 웃고 있었다. 이 웃음이 나에게는 이 친구들과의 마지막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휴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아빠에게 말했다.


나: 아빠, 나 서울대학교에 도전해보려고.

아빠: 이제 완전히 결심한 거야?


나: 응.

아빠: 너 믿어.

나: 고마워 아빠.


서울대학교는 다른 학교들과 달리 수능 최저 등급을 필요로 했다.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이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축구 성적과 학교 내신이 함께 좋아야 하면서 수능점수까지 잘 받아내야 도전 가능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매년 단 1명이라도 선발되는 인원이 있는 걸 보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축구 성적과 학교 성적은 마감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몸부림은 '수능 준비'뿐이었다.


과외선생님: 그래, 잘 선택했어.

                 선생님은 네가 빨리 결정했으면 했거든.

나: 저는요, 4등급이 아니라 2등급 맞을 겁니다. 선포하는 거예요!


나는 학교에 돌아가서 거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선포하듯 말했다. 2등급을 맞는 다고 해서 가산점을 받거나 하지 않는다. 근데 왜 4등급만 맞으면 되는데 굳이 그 고생을 하냐고?

스스로의 한계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운동선수도 하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저 수능 준비하기로 했는데 수학과 사회과목 둘 다 2등급 맞을 겁니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9월 모의고사가 수능성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2등급을 맞겠다고 결심한 때. 때는 9월이었다.


며칠 뒤 자신 있게 9월 정기 모의고사를 치렀다. 그동안 공부도 같이 병행해왔던 터라 빠르게 성적이 오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담임 선생님: 자 9월 모의고사 성적 나왔다.

                  19번 이수돈


수학... 수학... 7등급...

사회... 6등급...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 있게 떠들고 다녔건만 당장 90일 남았는데...


"포기해야 하나?"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야 하는 건가...?"  


.........



 문뜩 올해 겨울 전지훈련 때가 생각이 났다. 악을 지르며 간절히 버티려고 했던 시간들.

코치님: 너네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욕심이 없다고. 그딴 정신력으로 좋은 대학, 프로? 꿈 깨라.


사람은 참 간사하다. 조금만 잘하면 내가 최고인 줄 알고, 조금만 힘들면 스스로 고생했다고 합리화해버리고 편해지려고 한다. 부끄러웠다.

 이렇게 쉬운 사람이었나?

.......


당당히 7등급짜리 시험지를 들고 수학 선생님에게로 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선포했다. 선생님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2등급 맞을 겁니다. 틀린 것좀 물어보려고 왔어요.


수학선생님: 수돈아, 아마 네가 지금 4등급만 맞아도 아마 앞으로 못할 일이 없을 거다.

: 아니요. 할 수 있습니다!


사회 선생님: 2등급 받으려면 처음부터 차근히 다시 해야 되는데 시간이 부족하니까 속성으로 하는 수밖에 없겠는걸...


무모한 도전, 그렇게 3개월 간의 나의 무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나: 감독님, 저 남은 3개월 동안 공부에 올인하겠습니다.

감독님: 그래. 이제 시합 다 끝났으니까 너 맘대로 해라.


13시간씩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했다. 과외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수업실에 상주를 하며 모르는 부분이 생기면 바로바로 질문을 개념을 익혔다. 

생각보다 시간이 부족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수학책 1권, 사회책 1권을 통째로 외워버렸다.


읽고 -  쓰고 - 풀고 - 외우고의 무한 반복.

누구보다 간절했고, 스스로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너무나 간절해 베개 밑에 그날 못 외운 부분의 페이지를 펴놓고 잠들기 직전까지 생각했다. 

놀랍게도 꿈에서도 문제를 풀고 있었다.

·

·

·

나도 어이가 없었는 듯 양치를 하며 거울을 보고 바보같이 웃었다.

한쪽도 아니고 양쪽에서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렀다.


시험이 2주밖에 남지 않으니 마음이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똑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틀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쳐갔다. 지금껏 운동에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던 나로서 하루 온종일 앉아서 머리를 굴리는 일이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선생님, 너무 불안하고 몸도 지쳐가는 것 같아요... 저 4등급은 맞을 수 있겠죠...?

과외 선생님: 선생님이 왜 고3 진학 부담을 안고 너 수능 시험을 도와준다고 한 줄 아니?

나:...

과외선생님:  선생님이 널 오랫동안 가르쳐 왔지만, 넌 힘들다는 핑계로 단 한 번도 수업에 빠진 적이 없었어.

 그 더운 여름날에 시합 뛰고 와서는 새빨개진 얼굴로 잘 몰라도 따라가려고 하는 모습 보고 확신이 들었거든.


그리고는 내 마음을 불태우는 한 마디를 던졌다.


과외선생님: 아마 이번 수능은 어렵게 나올 거야. 그럼 애매하게 잘하는 애들은 다 떠내려 갈 거라고.

"넌 남들이 떠내려갈 때 그냥 그 자리에서 버티면 돼"


과외 선생님: 나는 운동선수 학생들이 공부하면 잘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런 줄 아니?  운동선수들은 한 가지 동작을 익히기 위해서 똑같은 동작을 수천번 반복한다고. 그 기술이 몸에 완전히 익어서 생각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몸에서 나오게 한단 말이야. 그 이치를 안단 말이야.


과외 선생님: 공부도 똑같아. 될 때까지 하는 거야. 생각하면서 하는 게 아니라고. 자동적으로 나와야 돼. 더 많이 앉아 있고, 더 많이 풀면서 지겨움을 이겨낼 줄 아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야. 아마 다른 사람들도 다 지쳤을 걸? 그 애들은 너보다 훨씬 더 오래 했기 때문에 피로함이 더 심하다고. 근데 마지막 순간이 제일 중요하거든. 지금 넌 더 몰아쳐야 돼. 몰아칠 수 있어. 이제 역전할 준비가 된 거라고.


문제를 어떻게 아무 생각 없이 풀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난 선생님이 말하는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다시 펜을 잡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

·

·


-수능 당일 


아빠: 아들, 긴장하지 말고. 침착하게 해.

엄마: 아들, 파이팅!!

드디어 짧고 굵었던 나의 무모한 도전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감독관: 자 시험지 배부하겠습니다. (2교시 수학)

나: (일단 아는 문제부터 정확하게 풀자. 쉬운 문제로 다시 돌아가면 시간이 부족할 거야)


맙소사. 모르는 문제가 나왔다. 분명히 어떠한 공식을 이용해서 푸는 문제인데 도무지 모르겠다. 근데 손은 이미 문제를 풀고 있었다.



수학 과외 선생님: 방금 풀었던 문제 다시 풀어봐.

나: 네? 100가지 대입하는 걸 또 해요?

수학 과외 선생님: 그게 집중력이야. 한번 삐끗하면 다 틀리는 거야. 오늘 이거 똑같은 답 나올 때까지 다시.

나: 하...


선생님이 그동안 일일이 대입해서 풀어봐야 하는 문제를 강제 반복시켰던 이유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선생님의 큰 그림은 부족한 시간으로 모든 공식과 문제를 완벽히 알고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 겁먹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만들어 주고자 한 것이었다. 그래서 편하게 갈 수 있는 문제도 직접 대입해보고 답을 구해보도록 훈련을 시켰던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30개 정도의 숫자를 다 대입해서 답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 찾았다...!!

·

·

·


"자 시험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나: 휴... 끝났다...


아빠: 잘 봤어? 잘 본 것 같아??

나: 아 모르겠다고!

엄마: 아들, 고생했어...

극도로 예민해졌다. 차 안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수능 공식 답안지가 발표되었고, 가족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혼자 방문을 잠그고 떨리는 손으로 답안을 체크했다.


나: 아빠!!! 엄마!!! 나 수학 72점!! 사회과목도 한 개 답을 잘못 체크한 것 같긴 한데 점수 넘긴 것 같아!

아빠: 진짜? 다시 확인해봐!! 2번... 4번... 3번... 와! 다 맞네!

        잘했다.. 잘했어...


수학 선생님 말이 맞았다. 보통 90점 정도를 맞아야 1등급이었던 수학은 80점 초반대로 내려왔고 사회과목도 작년보다 훨씬 어렵게 나왔다.


결과는 2등급, 3등급, 3등급.

3과목 모두 2등급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충분히 멋있는 도전이었다.

학교에 가니 모든 선생님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9월 달, 7등급 시험지를 들고 2등급을 외쳤던 아이를 누가 믿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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