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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 Oct 27. 2022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기회가"

#.12 2019. 12. 결과

축구를 처음 시작 한 그날이 생각났다.


아빠: 아들, 아들도 한번 멋있게 해 봐야지. 선배들이 그러잖아. 인생에서 제일 멋있고 재밌는 시간이었다고. 너도 한번 잘해봐. 항상 엄마 아빠가 뒤에 서있으니까 자신 있게 하고.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는, 느지막이 13살짜리 꼬마 아이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아주 간절한 목표를 세웠던 그날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꿈은 정말로 꿈이 되어버렸다. 두 개의 대학 중 하나의 대학에서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 나머지 하나의 대학에서는 추가합격 예비 1번을 받았다. 예비 번호가 가지는 의미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3년 간 단 한 명도 예비 번호를 받고 합격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는, 진짜 허무한 인생. 19살 어린 나이에 맛볼 수 있는 인생 최고의 쓰라림이었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우리 엄마, 아빠였다. 7년이라는 긴 시간을 오직 아들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자신들의 인생은 뒤로 한 채 피 땀 흘려 노력해주신 부모님 앞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있는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이라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와 아빠의 주름이 한 겹 한 겹 짙어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내가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은 엄마와 아빠의 세월을 그 대가로 고스란히 가져가 버렸다. 그제야 나는 느꼈다. 오로지 나의 성장을 위해 엄마와 아빠는 그들의 소중한 인생을 나에게 반납한 것이었다. 그 순간 어떠한 생각도,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나: 나 괜찮아. 진짜로. 나 최선 다했잖아. 미안해.


 도저히 부모님 앞에 있을 수가 없었고, 가장 의지하던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위기 뒤에는 항상 기회가 있는 법.

올해 타 대학 동시 합격자가 발생해 대학 등록 당일 그 친구가 어느 학교에 등록하느냐에 따라 나의 합·불 여부가 결정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습니다." 딱 그 심정이었다. 절박했던 그 시간을 잊은 채 자신을 넘어선 자만으로 물들었던 마음가짐에 대한 쓰라린 벌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기회, 그 어느 때보다 잔인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운동장에 내 모든 정신을 쏟아부었다.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숙소에 머무르며 오전, 오후, 저녁으로 혼자 훈련했다. 뛰고, 또 뛰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도 모르고 계속 뛰었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거친 호흡이 시간이 지나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쩌면 나에게는 잠시 멈춤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과 발표 하루 전, 주말리그 권역 시상식을 마치고 오는 길에 학교 근처 자주 가던 고깃집에 들렸다.


아빠: 저녁이나 먹고 가자. 술 한잔 해야지 이거 영 시간이 너무 안 간다.


 금요일 저녁, 왁자지껄한 식당의 분위기와는 달리 우리 상에서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와 긴장감이 흘렀다.


아빠: 아들, 많이 먹어라. 오늘 엄마랑 감독님 고생하셨을 텐데 네가 술 한잔 따라드려.

나: (또르르르..) 고생하셨어요.


 다들 다소 긴장한 듯 의미 없는 대화가 오가며 무거운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거둬드리려는 순간 아빠가 말했다.


아빠: 오늘 우리 아들이 그동안 열심히 해줘서 이렇게 값진 상 받았는데... 참 안타까워요, 의미가 없다는 게.

감독님: 어휴 아니에요 아버님, 일단 내일까지 잘 기다려 봐야죠 뭘..


 나 역시 밥 맛이 있을 리가 있나. 고기 한 점을 가지고는 한참을 그릇 위에서 놀려 댔다.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순간 왠지 모르게 자꾸 핸드폰에 손이 갔다. 마치 누군가 나에게 지금 당장 결과를 확인해 보라고 되뇌는 것만 같았다. 그전에도 수 십 번 확인해봤던 터라 나는 능숙히 수험 번호를 치고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결과 확인을 확인하시겠습니까...?

……………


 새 빨간 글자가 내 눈에 쏙쏙 박혀왔다.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문구와 길어진 안내문...  '다른 사람의 페이지가 잘못 떴구나'라는 순간의 착각에서 헤어 나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 나 합격했어...


 그 순간 엄마와 아빠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힘들었던 것만큼 엄마 아빠도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나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겠지. 부모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일방적 희생과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는 커다란 부담감에 짓눌려 있던 응어리가 터진 듯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기쁨보다는 안도의 한숨이 먼저 나왔다.


 이제 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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