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종목 Sep 29. 2021

회복일기

퇴원 후 회복을 위한 시간, 떠오르는 생각들

#회복 일기 1 9. 27. 월요일. 퇴원


퇴원을 했다.

위치와 상태가 안 좋아서 장을 많이 잘라냈는데

다행히 큰 문제는 없는가 보다.


굳이 오겠다는 아내를 말렸다.

혼자 수속을 마치고 조심조심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반가운 얼굴들을 보니 집에 온 기분이 든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알레르기 때문에 항생제를 두 번 교체했다.

세 번째 항생제의 주된 부작용이 설사라는데, 정확히 내 몸에도 해당 반응을 야기했다.


당분간 통원 치료하면서 온라인 일정만 소화할 예정이다.


퇴원 전에 비교적 쌩쌩하게 페북도 하고 티브이도 보던 나는

지속되는 설사로 인하여 기력이 없는 상태가 되어

병든 닭처럼 하루 종일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회복 일기 2 9.28. 화요일 첫 통원치료.


입원 시기보다 더 기운이 없다.

오전 내내 정신을 못 차리다가 겨우 힘을 내어 병원에 갔다.


젊고 친절한 의사 선생님은 항생제를 끊어보자 하신다.

염증반응이 아직 있긴 하지만 젊으니까 괜찮을 거라며.

기력 회복을 해야 염증도 관리될 것 같아서 동의했다.


돌아오는 길, 배가 쑤셔 구부정하게 걷다 보니

평소라면 10분이 걸릴 거리를 20분이 넘도록 걷고 있다.

살아갈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누군가에겐 당연할 일이 당연하지 않은 경우를 너무 많이 마주했다.

건강히, 오래 살고 싶다.


#회복 일기 3. 9.29. 수요일. 어떻게 살아야 할까?


평생 잘 잠을 몰아 자는 기분이다.

약에도 졸린 성분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기력이 없어서 그런지 하루에 서너 번을 자고 있다.

항생제를 뺐으니 이제 설사를 안 하겠지. 아직까지는 속이 편치 않다.


엊저녁에도 밥 먹고 버티다가 8시쯤 잠이 들어서 2시간을 잤다.

아내와 대화하고 12시쯤 다시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기력이 조금은 붙은 걸까. 머리만 대면 잠들었는데 어제는 세시까지 깨어 있었다.


나의 새벽은 대개 생산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 생각이 자리 잡는다.

후회나 원망, 자책, 불안 등의 수많은 생각들에 눌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애먼 휴대폰만 계속 들여다본다.

몸이라도 성하면 책을 보거나 게임이라도 할 텐데, 지금은 그러지도 못하고 불편한 몸을 소파에 의지한 채 머리를 비울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아 헤맨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30대, 좋은 동료와 직업을 가지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결혼을 했고, 아내와 함께 작은 터전을 만들었다.

아이가 금방 생겼고, 혈우병에 잔뜩 겁먹긴 했지만 열심히 육아를 하며 잘 키웠다.

여행도 많이 다니며 행복한 시절이었다.


다행히 크게 아픈 적 없이 10년을 지냈다.

결혼 직전 대장에 있던 유암종을 제거하며 건강에 대한 불안함을 가졌지만 그게 다였다.

중간중간 대소사를 겪긴 했지만 대체로 무난하게 지내왔다.

좋은 인연들도 많았고, 주변에 해로움 보단 이로움을 준 편이었다.


서른을 거진 다 보냈다.

코로나로 훌쩍 흘러버린 후반부에서 나는 속앓이만 잔뜩 한 것 같다.

버틴 게 용하다고 생각하는 편이 스스로에게 이로울 것 같다.

나이라는 게 숫자에 불과하지만,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니까.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기에 대한 대비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지금이다.


몸의 건강.

건강할 수 있을까?

지독한 염증과의 싸움에 진다면 나 또한 어머니와 누나처럼 종양을 몸속에 키워낼 것 같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 극단적 키토 제닉 식단도 2년을 유지해 봤지만 결국 임시방편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반작용으로 맹장수술까지 하게 된 거라 생각하니 더더욱 불안하다.


마음의 건강.

걱정, 분노. 끊어낼 수 있을까?

돈이라는 가치에 매몰되기 싫었지만 어쨌든 내 상황에 큰 영향을 주는 그 일에서 나는 심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어쩌면 개인주의적인 결정이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 내 건강을 위해서.

나는 가족을 지켜야 하니까.


일.

당시 막 시작하는 수준의 작은 기업이었던 내 조직은 이제 다음 단계로 진입했다.

나의 다음 10년은 이곳과 함께일까?

누구보다 애정 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왔지만, 한편으로는 늘 아쉽고 서운하면서 한숨 쉬게 되기도 한다.


몸과 마음의 건강, 일.

내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나 적어도 올바른 방향 설정이 필요한 시기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동료가 있다.   


뭘 위한 삶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영원한 휴식을 떠올리니 시간이 아주 많은 것 같지만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투병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