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스포일러를 알 수 있다면

by 이로

반전(反轉) 영화의 대명사였던 영화 ‘식스센스’. 이 영화는 충격적인 결말과 반전으로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있지만 잊지 못할 또 하나의 기억도 가지고 있다.

극장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향해 어떤 사람이 버스 창문을 열고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다”라고 외쳤다는 바로 그 사건.


중추신경을 타고 흐르는 짜릿한 전율과 신선한 충격을 기대했던 사람들의 표정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영화만큼 이나 충격적이었던 이 사건을 접하고 난 뒤, 나 역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꼭 저래야만 했을까?” 하고. 그 후 바늘 가는데 실 따라가듯,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그 사건은 내 기억을 졸졸 따라다녔다.





‘망쳐놓다’ 혹은 ‘망쳐버리는 사람’을 뜻하는 ‘스포일러’(spoiler)는 본래 항공기의 속도를 떨어뜨리거나 달리는 자동차에 다운포스를 발생시켜 지면과의 접지력을 향상할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였다. 그러다 줄거리나 결말을 미리 독자들에게 밝히는 행위를 뜻하게 되면서,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대중문화에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 된 이후, 세간의 이슈가 되는 영화가 나올 때마다 스토리나 결말에 대한 스포성 기사 및 댓글들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극장에서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스포일러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 현상은 최근 개봉한 히어로 영화에서 절정을 이룬 듯하다. 영화 개봉 첫날, 인터넷에서는 스포성 기사를 올리지 말자는 글과 함께 ‘스포’를 피하는 기발한 방법까지 소개되면서 그 피해를 보지 않으려는 마음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나 또한 영화를 보려면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 마음은 굴뚝같지만 일부러 검색조차 하지 않았고 관련 기사가 뜨면 일부러 눈의 초점을 맞추지 않는 등, 시집살이하는 며느리 마음으로 눈과 귀를 닫았다. 나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나 느낌 정도 올리는 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어 하는, 유난히 입이 근질근질한 몇몇 사람들이 입 대신 손으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어 또 한 번의 대량 ‘스포’를 당할까 걱정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린 알게 모르게 대량학살(?)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결말에 대한 대략적인 감을 잡고 있으면서도 눈앞에 펼쳐질 깜짝 놀랄만한 반전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너무 궁금하지만 미리 알게 되면 재미뿐만 아니라 정신 또한 멘붕이 돼버린다는 사실을.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항상 완벽한 타인의 시선을 가진 독자이자 관객이다.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삶을 바라보며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등 여러 감정을 함께 느끼며 이야기의 마지막 순간까지 차분히 따라가 본다. 그리고 알게 된다.

한 인생의 삶은 결말보다 흘러가는 이야기 즉 살아가는 과정 속에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인생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그 삶은 비단 인간의 상상 속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 바탕을 둔 내용으로써, 실제 우리의 삶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그리고 우리 곁으로 내려와 우리의 삶을 영화 보듯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스포’까지 알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전 몇 살까지 살까요?”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이 목을 타고 올라오지 않을까? 복채를 두둑이 준비해 점집에 찾아간 손님처럼 말이다.


그럼 신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이런 거 물어볼 시간에 지금 당장 하고 있는 거나 열심히 해. 됐지? 복채는 거기에 두고”.


굳이 신에게 물어보지 않았어도 누구나 다 말할 수 있는 사기꾼 같은 대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신이 보기에 우리 대부분은 그저 그렇고 그런 인간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전지전능한 자신의 능력에 비해 하잘것없어 보이는 인간의 삶이 부질없어 보였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자기 앞에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면 피하고 싶고,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렇다. 우린 신이 아니기에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게 보편적이고 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그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다. 설사 신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절대 가르쳐주지 않을 거다. 왜? 알게 되는 순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따로따로 분리된 어떤 이미지로만 기억하고 있다. 과거는 불행하고 후회되는 이미지로, 현재는 지금 내가 서 있는 모습으로, 미래는 장밋빛으로 화려한 모습의 이미지로 말이다.


물론 자신이 그리고 싶은 큰 그림이 있다면 거기에 맞는 종이나 물감 등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잘 그릴 수 있도록 스킬 또한 배워야 함은 물론이고.


하지만 거기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지금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을 지루해하거나 벗어나고 싶어 하는 대상으로 여긴 다면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요원할 것이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건 어떤 위치에 있건, 지금 하는 일 또는 해야 하는 일이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일상을 만들어 내고 그 위에 자신이 바라는 꿈 꾸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영화뿐 아니라 자신의 미래에 대한 지나친 스포일러는 자신의 삶에도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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