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치유하는 예술

눈물을 닦아주는 선율

by 호림

행복은 비교에서 벗어난 상태임을 많은 현자들이 얘기했습니다. 신체의 결핍과 아픔, 궁핍, 처절한 슬픔과 외로움...


극도로 불행해 보이는 조건이지만 웃음을 머금은 사람들을 보면서 대체 그 많은 불평 덩어리들을 왜 달고 살았는지 반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거나 가족의 상실은 누구에게나 큰 아픔입니다. 최근 지인의 아들이 20대의 안타까운 나이에 저세상으로 갔다는 비보를 받고 손을 잡아드렸습니다. 애지중지한 자식을 잃은 그 쓸쓸한 눈빛을 보고 뭐라 위로의 말을 드리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자녀를 잃는 아픔을 무려 세 번이나 겪은 안토닌 드보드작이 떠오릅니다. 드보르작은 체코에서 부유한 후원자 덕분에 신세계를 찾아 미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생존 당시에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작곡활동을 해나갔습니다. 남은 자녀 없이 세 자녀를 다 잃고 나서도 그 슬픔을 예술로 승화한 이가 드보르작이었습니다. 그 작품이 <로망스 바단조>(작품번호. 11)입니다.

슬픔에 굴복하고 절망의 골짜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더 높은 경지의 예술을 만들어낸 이들도 있습니다. 화가 로트렉은 소아마비를 앓았고 외모는 볼품이 없었지만 파리의 사교계를 헤집고 다니며 많은 시인,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회화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결코 자신의 내적인 매력을 외적인 면으로 압도당하지 않았던 거인이었습니다.


베토벤은 독신으로 살았고 자식이 없었지만, 조카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아이 아빠인 동생이 사망한 후 친자로 들이기 위해 제수씨와 양육권을 놓고 소송을 벌일 정도였습니다. 조카가 실은 자신의 핏줄이라는 얘기부터 확인되지 않은 픽션도 베토벤의 유명세에 붙어있습니다. 가혹한 운명 앞에 그토록 당당했던 베토벤도 자신의 피붙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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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본 예술가들 마음속에는 어린이가 계속 살아있는 듯합니다. 정말 눈에 보이는 효용을 주는 스마트폰이나 음식처럼 그것이 없어도 살 수는 있을 듯한 것이 예술입니다. 예술은 그저 한가한 사람들의 놀이하고 해도 그만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가는 선 위에는 아마도 예술이 있을 것입니다.


명화를 보고 스탕달처럼 쓰러지지 않아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선율을 듣고 눈물을 흘릴 때도 있을 것입니다.

예술은 때로 상처받은 현실의 아픔에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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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의 로망스가 화창한 5월의 들뜬 기분을 살짝 가라앉혔으면 합니다. 아이를 잃은 아픔에 절규하는 드보르작을 생각해봅니다. 당신 곁에 소중한 어린이가 있다면 어린이날 기분에 들뜬 아이를 꼭 안아주며 사랑을 듬뿍 주는 날이 되었으면 어떨까 합니다.


(31) Gil Shaham: Dvorák - Romance in F minor, Op. 11 (Naoko Tanaka, Orpheus Orchestra)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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