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콩쿠르는 어느 정도 성공을 보증하는 등용문이 되었기에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문을 두드린다. 미술이나 서예에서도 국전의 입선은 상당한 보증수표가 된다.
공신력 있는 대회의 입상이 그 실력을 보증해주는 면은 부인할 수 없기에 한국의 예술영재들은 끊임없이 세계무대의 콩쿠를 노코하며 개가를 올리고 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영재들이 국위를 선양했다고 흥분하는 와중에도 예술의 본질은 경쟁보다는 각자의 개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버릴 수가 없다.
바흐 해석의 권위자이자 피아니스트들의 교과서로 알려진 헝가리 출신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가 내한
인터뷰에서 쏟아내는 음악에 대한 소신은 경청할 만하다.
수차례 내한한 바 있는 쉬프는 당일 공연장의 음향, 피아노 상황, 관중을 고려하여 연주 직전 현장에서 선택한 레퍼토리를 구두로 소개하며 공연하는 연주자로 경직된 형식의 연주 틀에 변화를 주는 연주자다. 그는 “청중에게 더 나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방식”이나 “놀라움도 공연의 한 요소”라는 소신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큰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콩쿠르에 대해서는 “콩쿠르 출전을 멈춰라. 경쟁을 그만두라”며 “음악은 위대한 예술의 영역이지, 스포츠가 아니다. 속도와 힘, 스태미나와 정확도 등은 측정할 수 있지만, 그건 스포츠다. 예술은 측정이 불가능한 요소들로 이루어졌고 고도의 주관적인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쉬프 또한 내로라하는 콩쿠르 입상경력이 있지만 일흔에 이른 대가의 음악의 본질을 생각하라는 말이 음악팬이나 음악가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최근 만난 서예가 한 분도 예술의 콘테스트에 비판적이었다. 일종의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대회에 자신은 목매달고 나가지 않았고 자신만의 개성으로 작품 활동을 해나간다고 했다. 예술가가 평생을 콩쿠르 입상에 매달리며 살 수는 없다. 젊은 시절 비록 입상에는 실패했지만 꾸준히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며 작품 활동이나 연주를 하는 이들이 다수다.
수십 년씩이나 자신의 예술세계를 만들어 왔다면 이들의 작품이나 연주가 콩쿠르의 메달이 없다고 빛이 바랠 수는 없다. 우리의 귀와 눈은 선입견이나 편견 같은 몹쓸 개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스포트라이트가 비켜간 예술가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낼 아량과 안목은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기회가 되면 작은 연주회나 화랑에서 만나는 예술가들의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것 또한 예술 애호가들의 몫이 아닐까.
세계 미술사 최고의 문제작을 꼽으라면 아마도 맨 앞자리를 다툴 작품이 마르셀 뒤샹의 소변기 <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