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허브, 딸기잼, 포도잼
루틴은 목표 달성을 위한 의식적인 행동으로 안정감과 효율성을 위해 반복하는 반면 습관은 거의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여러 번 되풀이하며 저절로 익은 자동화된 행동이란다. 몸의 축적된 기억이 뇌의 지시와 무관하게 행동을 일으키는 건가?
일주일 이상 집을 비웠다가 도착하면 이런 순서로 해야지 생각해 둔 것처럼 자연스레 하는 행동이 있다. 의식하지 않고 하는 걸 보면 습관이 된 건가? 지난번에 이어 2주 간의 서울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1. 오랫동안 닫혀있던 공간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를 빼내기 위해 방마다 창문을 활짝 연다. 비가 와도 연다. 모기 입이 돌아간다는 처서에 이리 덥다니… 땀이 뚝뚝 떨어진다. 견딜만하면 가급적 안 트는데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켰다.
2. 짐 가방을 푼다. 이젠 어딜 가든 챙겨가야 하는 충전기, 세면용품(전기면도기), 간혹 들고 간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여행지에서 일정이 안 맞아 생긴 빨랫감을 챙겨 세탁기를 돌린다.
3. 삐죽하게 자란 코털이 없는지 확인하고, 코털 다듬고, 면도하고, 더부룩해진 머리칼을 가위로 대충 자르고 씻는다. 손발톱을 깎는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결국 미장원에 갔다.
4. 청소기를 돌리고 스팀 물청소기로 닦는다. 세워뒀던 매트리스를 눕힌다. 매번 청소할 때마다 신기한 건 출발 전에 청소기를 돌리고 창문을 꼭꼭 닫았뒀건만 먼지는 쌓이고, 머리카락은 어디에 숨어있다 나올까? 하기사 헤어지고 몇 달 뒤에 청소하다 나온 그의 머리칼에 울컥했었다. 떠남은 순간이어도 흔적은 남는다.
몇 달 전, 토마토 모종을 심었는데 모종 상태에서 큰 변화 없이 커지지 않았다. 이걸 뽑고 다른 걸 심어 하던 차에 먹지 못할 크기지만 작은 열매가 맺히기에 에구~ 그래도 살아있는데... 창 밖에 내놨는데 나무라도 될 듯 여보란듯이 자랐다. 별생각 없이 묻었던 아보카도 열매는 쑥쑥 자랐고, 한 촉으로 시작한 산세베리아는 무리를 이루며 푸른 잎인데, 허브는 새까맣게 변했다. 쓰윽 쓰다듬으면 손에 묻어나는 향이 좋아 다른 얘들에 비해 물 주기와 화분까지 신경 썼는데, 푹푹 찌는 폭염에 바람 통하지 않는 실내에 방치돼서 그런 듯하다. 정작 방치했던 얘들은 나름의 생존 전략을 세웠을 테고, 마음을 준 녀석은 마음이 전달되지 않자 자신이 살아날 방법을 못 찾았나 보다. 그나마 다행인건 허브가 살아있을 때 꺾꽂이했던 가지들이 아주 빈약한 상태지만 살아있다. 어떤 일을, 마음을 얻으려고 안달복달한다고 그 일과 마음이 오지 않듯, 안될 일은 안되고 될 일은 된다.
오랫동안 비웠던 집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기운이 돌자 배가 고프다. 바깥밥은 2주간 충분히 먹었는데 뭘 먹지? 지난번 대마도 여행에서 사 온 딸기잼, 포도잼 남은 게 생각났다. 냉동실에 있는 통밀 식빵을 꺼내서 토스트기에 굽고, 커피를 정성 들여 내린다. 출장지에서 마시려고 원두콩과 드립퍼는 챙겨놓고, 정작 핸드밀의 손잡이를 집에 두고 가는 얼척없는 짓을 했었다. 2주간 꽁꽁 얼려진 얼음도 있으니 찐한 아아를 마시자. 헉! 딸기잼 뚜껑을 열었는데 하얀 곰팡이가 폈다. 서둘러 포도잼 뚜껑을 열었는데 마찬가지다. 이래서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있구나. 어쩔 수 없다. 버렸다.
각자 스스로 자라고 사라진다. 어디에든 각자의 몫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