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탄광마을』
탄광하면 태백이 떠오릅니다. 임길택의 시집 『탄광마을 아이들』 도 떠오릅니다. 황제성의 태백 풍경 그림도요. 검은 가루가 날립니다. 눈 덮인 거리 인적은 드물고 찬바람만 쌩 붑니다. 생명을 걸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 집의 가장과, 불안함을 같이 안고 사는 가족, 진폐증으로 고통 받는 아버지, 그 옆에서도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놀고 자라납니다.
대부분 탄광은 검은색과 함께 어둠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바다 옆에 탄광이 있습니다. 바다와 탄광이라, 어딘가 매치되지 않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탄광이 있는 바다가 눈이 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책은 바닷가 탄광마을에 사는 가족의 하루를 보여줍니다. 그 하루는 어제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습니다. 거의 비슷하게 반복되지요. 일상이 반복이듯 책에도 아이의 일상과 탄광에서 일하는 아빠의 일상이 교차, 반복해 등장합니다. 온통 검은 색으로 칠해진 탄광 속 풍경이 가로로 긴 판형에 두 페이지에 걸쳐 펼쳐집니다. 좁은 공간에서 아빠는 등을 굽히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아빠가 있는 공간은 점점 더 좁아집니다. 검은 천장, 검은 벽이 점점 아빠를 짓눌러옵니다. 아, 뭔가 불길합니다. 아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어쩌지?
아빠가 탄광에서 아빠의 하루를 살 듯 아이는 아이의 일상을 삽니다. 친구와 낡은 그네를 타러 가고 엄마 심부름도 다녀옵니다. 역시나 광부였던 할아버지 묘지에도 가고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거리는 바다도 바라봅니다. 그렇게 아이의 하루도 저뭅니다. 드디어 저녁, 문 밖으로 아빠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빠가 오늘도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이제 가족이 함께 하는 저녁이 시작됩니다. 아빠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모두 둘러 앉아 저녁을 먹습니다. 식사 후 가족 모두 테라스에 나와 차를 마시며 지는 해와 바다를 바라봅니다. 이렇게 또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글은 시종일관 담담합니다. 아이는 특별한 감정의 고조 없이 하루의 일상을 하나씩 또박또박 읊조립니다. 글에 그림 또한 차분하고 부드럽게 조응합니다. 검은색이 주조를 이루고 그림도 검은 테두리가 쳐져 있지만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는 녹색과 옥색, 금색으로 물듭니다. 연두색 풀들과 저녁의 은은한 노란 햇빛도 검은색 윤곽선 안에서 조금 더 부드럽고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그림 작가는 두 페이지씩 펼쳐지는 책의 지면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글의 흐름을 이어줍니다.
글의 울림을 높입니다.
바다는 두 페이지 가득 찹니다. 아름답습니다.
탄광 또한 두 페이지 검게 가득 찹니다. 힘겹습니다.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편안히 의자에 몸을 누이고 바다를 바라보는 네 식구의 모습 또한 두 페이지에 걸쳐 클로즈업 되어 있습니다. 탄광에서 돌아온 아빠가 아이를 꼬옥 껴안는 모습에서, 클로즈업되어 보이는 찻잔 두 개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는 가족의 모습에서 감사한 마음과 안도감이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이렇게 두 페이지 전체에 걸쳐 펼쳐지는 그림도 있지만 때로는 몇 개로 나뉜 칸이 시간과 감정을 흐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이가 친구와 함께 그네를 타는 장면은 6개의 칸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 칸 안에서 아이들이 탄 그네는 ‘삐그덕’ ‘삐그덕’ 조용히 왔다 갔다 움직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녁 해의 그림자가 집안으로 조금씩, 깊숙이 들어옵니다. 이 모습은 4개의 칸으로 나뉘어 그려져 있습니다. 따라가 보면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생각도 큰 칸, 작은 칸으로 나뉘어 소개됩니다. 화창한 여름날, 깜깜한 땅굴, 바다, 아빠.
할아버지와 아빠처럼 자신도 광부가 될 거라고 이야기하는 아이의 말이 담담하게 다가옵니다.
그 아이의 삶이 보잘 것 없다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힘들고 고단한 삶일 거라고
그래서 힘겹고 암울하고 불행할 거라고
누구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을 겁니다.
아이와 가족이 영위하는 일상은 단단합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하루하루를 사는 아이의 마음도 단단합니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일 수 있지만 그 일상이 하나씩 모여 우리 삶을 만듭니다.
하루가 끝나갈 때 이렇게 편안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음은 축복입니다.
허리를 펼 수 없다.
등을 구부릴 수밖에 없다.
아빠는 묵묵히 한 발자국씩 나아간다.
검은 천장이 아빠를 점점 더 짓누른다.
아빠는 더, 더 몸을 낮춘다.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 위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바다가 있다.
초록과 흰 빛이 섞인 바다
끝없이 넓은 바다
그림인데도 바다는 참으로 아름답다.
눈부시게 황홀하다.
탄광이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가족은 ‘단단한 일상’을 살아 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항상 ‘일상의 단단함’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요 몇 달간 코로나 19로 제대로 된 일상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 첫 번째 소개 그림책으로 이 책을 선택한 이유도 그래서이다. 일상이 단단해야 모두가 제 자리에서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며 굳건히 삶을 살아낼 수 있는데 그 일상이 헝클어지고 들쑥날쑥하다. 언제 끝날지 모를 불안감과 막막함 속에 다가오는 하루를 그냥 어찌 어찌 살아내고 있는 날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누렸던 일상이 소중했음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