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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Oct 16. 2024

한 그루의 사과나무 #5

- 단편소설 -

[작가의 말]

얼마전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조회수 5,000을 넘었다는 메시지에 조금 의아했다.

무엇이 이 글을 클릭하게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중요한건 내 글에 독자분들이 관심을 기울여 주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작가로서 보답해야 하는것이 인지상정! ^^


<한 그루의 사과나무>는 기존에 썼던 단편을 최대한 더 짧게 재구성한 스마트 소설이었다.

소설집 <흐린날엔 바로크 그리고 사이폰커피>가 출간되어 스마트 소설 몇 편을 브런치에서 삭제했었다.

나의 단편들이 브런치에 올린 스마트 소설의 일부였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조치였다.

그런데 <한 그루의 사과나무는> 소설집에서 제외했었다. 그덕분에 아직 브런치에 살아있다.

관심을 기울여 준 고마운 독자들을 위해 <한 그루의 사과 나무> 원래 단편 그대로를 순차적으로 올려본다.


“나는 그거 못하도록 제한해 놓았어. 아무도 내 폰에 접근해서 멋대로 전환 못하도록 말이야. 그래서 사망신고 되면 내 메신저 프로필은 완전히 사라지고 ‘알 수 없음’으로 표시되겠지? 그게 좋아. 누가 날 기억하는 게 불편해. 그냥 죽어서도 난 바람이 되고 싶어.”


잠시 말없이 윈드가 쏟아지는 분수를 바라보며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살며시 나를 쳐다보며 “오빠는 어떤데? 누군가에게 오래 기억되길 원해?”라고 물었다.


“글쎄…. 여태 난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 무슨 말을 남겨야 할지 당장 생각이 안 나네….”


내가 계속 골머리 앓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뭘 그런 걸로 고민씩이나.”라며 미소 지었다.


“남겨질 자들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건 말이야, 그래서 그들을 위해 편지나 글을 주저리주저리 남길 수 있다는 건 참 대단한 축복 같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거나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지 않았다면 결코 그런 걸 할 수 없을 거야. 그런데 오빠가 고민한다면 아마 나와 같은 불행한 삶을 살았던 건 아닌지 모르겠어.”


강 위에 있는 유람선 한 척에서 수십 발의 불꽃이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듯 다발로 터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불꽃들이 나의 가슴속으로 뜨끔하게 벌침을 쏘듯 내려앉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윈드를 몇 차례 더 만났다.

여느 연인들처럼 특별할 것 없이 영화를 보거나 예쁜 카페를 찾아다녔다.

혼자 가기 껄끄러운 고깃집에 가서 불판에 실컷 고기도 구워 먹었다.

혼자였다면 할 수 없거나 조금 눈치가 보이는 일들을 그야말로 정신없이 바쁘게 그녀를 만나 ‘도장 깨기’하듯이 그렇게 하나씩 해치우곤 했다.

그리고 내가 연락을 끊은 건 나의 몸 상태가 급속하게 안 좋아졌던 바로 그 시점부터였다.  

    

윈드가 회신을 보내온 건 내가 문자를 보내고 하루 지난 그다음 날이었다.

예약 문의가 너무 많아 순차적으로 회신하느라 늦었다면서 가장 빠른 예약 가능 일자는 삼 개월 후라 했다.

매력적인 그녀를 만나고 싶은 남자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예약하겠다고 회신을 보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되었다.

내 삶의 일정에 맞추어 달라고 하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조금 전 하얀 백지의 유언장을 앞에 두고 생각을 정리하던 가운데 불현듯 내게 없는 아내가 생각난 것이다.

윈드에게 다른 고객과의 단발성 계약을 모두 취소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상결혼을 부탁하여 내 아내가 되어달라고 의뢰하고 싶었다. 얼마 되지 않은 내 재산이지만 일부를 부모님께 남기고 나머지 전부를 그녀에게 주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얼마의 기간을 그녀와 계약하느냐는 질문이 생긴다.

또한 지금 내 상황을 그녀에게 숨김없이 고백해야 할지 말지도 고민이 됐다.


솔직히 내 삶의 끝자락을 그녀에게 숨길 자신이 없다.

건강한 상태가 아니기에 겉으로 티가 날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내 제안이 슬픈 영화나 드라마 속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 내 시신을 거둬달라는 부탁으로 변하지나 않을까 솔직히 그것이 염려된다.


‘다 관두고 그냥 호스피스 병동으로 내 발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가?’


그렇게 생각하자 ‘휴- 우-’하고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어느 순간 한동안 잊고 있었던 윈드의 말이 방안의 무거운 공기를 타고 내 잠든 기억을 깨웠다.


‘그래, 나 역시 윈드처럼 불행한 삶을 산 존재였을지도 몰라.’


나도 바람 같은 존재인 건지 스스로 되물어 보았지만 들려오는 울림은 전혀 없었다.

벙벙한 표정으로 한참을 흰 종이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안의 침묵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 심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는지 정말 몰랐다.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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