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점심값 아끼다 친구를 만났습니다

세르게이라는 친구가 생겼습니다.

by 크바스

2009년 9월, 연출과 1학년으로 입학한 우리 반에는 현지 러시아 친구들과 핀란드, 중국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다. 새학기 설렘도 가득하지만 두려움도 가득했다. 새로운 친구들과 잘 지내야 했지만 나와 마음이 맞는 친구는 없어보였다. 유독 러시아 친구들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내 외형 때문인지,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반면, 같은 반 러시아 친구들끼리는 고작 한 달 만에 허물없이 잘 지냈다. 그들의 서스럼없이 친한 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지만, 내성적이고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억지로 관계를 맺는 일이 불편했다. 친구없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어쨌건 힘든 학교 생활을 버텨내려면 마음이 맞는 친구가 필요했다.


아침 아홉 시부터 밤 열두 시까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같은반 친구들과 나는 늘 함께였다. 가장 많은 시간을 반 친구들과 보냈지만 그들 무리에 자연스럽게 끼어들기는 쉽지 않았다. 나의 러시아어 실력은 부족했고, 연기나 연출적 재능도 두드러 지는것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관심을 갖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작품에 대해 토론할 때면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 질문했을 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답답함이 밀려왔다. 친구들은 내 러시아어 실력으로는 대화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느꼈던 것 같다. 처음에 친구들은 나에게 영어로 말하려는 배려를 보였지만 내 영어 실력도 별반 다르지 않자 어려운 소통을 포기한 듯했다. 때로는 작품의 연출가로서 명확한 연기 지시를 해야 할 상황에서 아무 말도 못 하니 나의 부족함이 부끄러웠다.


학교는 학업 성적과 성과를 기준으로 분기별로 낙오자를 정해 퇴학 처리를 했다. 100: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했지만 졸업은 소수만 가능했다. 유학생인 내가 더 많은 학비를 냈다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해주진 않았다. 그들과 동일하게 실력이 부족하면 퇴학처리를 받게 된다. 러시아 친구들은 나를 불쌍한 외국인 친구로 여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경쟁자로 대했다.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그들에게 나를 챙길 여유는 없었다.


힘들고 치열한 환경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복이었다. 혼자 고비를 넘는 것보다 함께하는 이가 있다면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러시아 친구들 사이에 소속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보았다. 수업 후 밤늦게 이어지는 술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친해지려 노력 했고, 끊었던 술도 다시 시작해 꼰약과 보드카를 마셨다. 술기운으로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어색함이 감돌았다. 술로 얻은 관계는 진짜가 아니었다.


학교 춤 연습실.jpg 학교 발레 및 춤 연습 강의실. 이곳에서 정말 호되게 혼나가면서 춤을 배웠다.

나는 맨정신으로 대화하며 공감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 물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두 달 만에 친한 친구가 생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만 빼고 이미 러시아 친구들은 각자의 그룹을 만들어 삼삼오오 모이고 있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나로서는 낯선 환경에 친한 친구 없이 지내는 것이 어색하고 두려웠다. 그렇다고 친해지는 노력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함께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어차피 매일 밥은 먹어야 하니, 같이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정이 쌓일 거라 믿었다. 점심시간마다 구내식당으로 가서 반 친구가 있으면 옆에 앉아 조용히 밥을 먹었다.


대화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침묵 속에서 식사가 이어졌다. 침묵은 나에게 무척 불편했지만, 친구들은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 이미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나 싶었다. 한 달을 반복했지만 함께 점심을 먹는다고 해서 더 친해지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계획에 없던 돈을 쓰는 게 속상했다.


그런데 구내식당 밥은 꽤 맛있었다. 인생에서 먹어보지 못했던 다양한 음식들을 맛봤다. 러시아식으로 구성된 메뉴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골라 먹는 방식이었다. 수프는 70루블, 메인 요리는 120루블, 샐러드는 50루블, 음료는 25루블, 빵 한 조각은 5루블 정도였다. 기본 구성으로 한 끼를 먹으려면 약 250루블(약 만 원)이 필요했지만, 생활비가 부족한 나는 샐러드, 빵 두 조각, 그리고 수프 정도로 150루블 안팎의 식사를 해야 했다.


결국,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억지로 돈을 써가며 먹는 점심은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대신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집에 있는 재료를 활용하면 추가로 쓰는돈 없이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더라도 돈을 아끼는 게 나에게는 최우선이었다.


혼자 밥을 먹는 일은 어색했다. 학교 내에서는 특별히 밥먹을 곳이 없었다. 결국 분장실 위층 탈의실 옆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아 밥을 먹었다. 구석진 곳에서 외로움을 들킬까봐 숨어서 밥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비슷하게 도시락을 싸 온 친구가 있었다. 동갑내기 세르게이는 빵과 햄을 얹은 샌드위치, 물 한 통, 가끔은 살로(소금에 절인 돼지 비계)와 같은 간단한 메뉴로 점심을 해결했다. 가끔 내가 싸온 음식을 나눠주곤 했는데, 세르게이는 내 도시락을 무척 좋아했다. 덕분에 나도 세르게이가 싸온 러시아 가정식을 맛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점심시간마다 분장실 2층 구석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우연히 도시락 점심 메이트가 되어버린 우리는 많이 친해 졌다.


215b30265d2f8955c31785d9a3ee79ed (1).jpg 학교 극장 분장실. 공연이 있을때면 이곳에서 분장하곤 했다. 여기서 밥을 먹진 않았다.


세르게이는 매우 똑똑했고 예술적 재능이 풍부한 친구 였다. 게다가 키도 크고 잘생겼다. 그런데 집안 형편이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다. 학교에서 필수로 준비해야 하는 운동복 조차 종종 구매하지 못하고 올때도 있었다.

외동아들로 홀로 아프신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학업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세르게이는 고심끝에 결국 자퇴를 결정했다. 내가 도와 줄 수 있는 일이라곤 기도와 도시락을 나눠주는 것이 전부였다. 세르게이가 자퇴한 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매일 점심시간을 함께하며 내 부족한 러시아어를 들어주던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우리는 밥만 같이 먹은게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함께 숙제를 하고, 작품을 만들기도하고, 강의실을 이동할때면 함께 걸어갔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한다는것은 큰 복이었다. 힘들고 팍팍한 학교생활에 친구는 한줄기 숨통이 트이는 통로 같은 존재였다. 고작 3개월 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지만 세르게이의 따뜻한 배려는 아직 기억한다.


당시 세르게이의 따뜻함과 유쾌한 웃음소리는 아직도 기억한다. 별거 없는 도시락을 나누고 부족한 언어로도 진심을 나누었던 그 분장실 2층 구석이 나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러시아라는 낯선 땅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세르게이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러시아 아가씨들에게 둘러쌓였다.